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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대한민국 외상외과의사'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 2017년 01월 02일 05시 43분 ]

"10년 내다보고 국제기준 정착 못하면 답(答) 없어" 

의사들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VIP 환자’ 편의가 의료법보다 우선이다.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국정농단 사건의 청문회에 의사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불려나갔다. ‘외인사’를 ‘병사’라 적은 사망진단서는 사회적 질타의 대상이 됐다.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의료계 내부에서도 나온다.
 

환자에게 필요한 ‘진짜’ 의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제 잇속보다 환자 목숨이 먼저인, 불이익이 뒤따라도 칼 같이 신념을 지키는 의사는 드라마 속 판타지에 불과할까. 존재 이유에 충실한 의사를 조명하고 싶었다. 데일리메디가 ‘의사 이국종’을 만난 이유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의 ‘믿는 구석’이다. 살리기 위해서라면 물 불 안 가리는 '미친' 의사다.[편집자주]

비루한 현실에 '낭만'은 없었다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월드 스탠더드에 맞는 중증외상환자치료시스템을 국내에 구축하는 게 신기루를 쫓는 기분이라 방향성을 상실한 것 같아요.”
 
헬기를 타고 미군 오산공군기지에 2명의 환자를 이송하고 돌아온 이국종[사진]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장(아주의대 교수)은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한 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중증외상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덴만의 영웅’를 구한 ‘국민 외상외과의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는 등 떠밀려 외상외과의사가 됐다. 2002년 몸 담았던 간담췌외과가 아니라 외상외과로 전임강사 발령을 받아 전공을 바꿨다. 공명심 때문에 선택한 게 아니었다.


국내에는 중증외상치료를 가르쳐 줄 스승이 없었다. 환자는 살려야겠기에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병원으로 연수를 떠났다.


해군 대령 출신 외과의사에게 전문적으로 배운 뒤 한국으로 돌아와 주한미군 중증외상환자 치료를 도맡았다. 중증외상분야 지원 목소리를 냈지만 듣는 사람은 없었다. 2005년 ‘중증외상센터 설립방안’을 제출했지만 다른 현안에 밀렸다.


병원에서도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목숨 걸고 헬기로 환자를 실어와 살려도 반기지 않았다. 1년에 적자가 8억원이 났다. 사직서를 품고 다니던 그를 살린 건 석해균 선장이다.


이국종 센터장은 2011년 1월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6발의 총상을 입고 생명이 위태로웠던 석 선장을 구했다. 4억원이 넘는 스위스 ‘에어 엠뷸런스(Air Abmulance)’를 확보해 오만으로 날아갔다.
 
이후 중증외상치료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요원하던 권역외상센터 설립이 앞당겨졌다. 보건복지부는 2017년까지 전국 각 거점에 17개 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해 ‘2살배기 중증외상소아 사망 사건’으로 권역외상센터 무용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故 김민건 군은 ‘수술실이 없다’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13곳 병원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이 중 6곳이 권역외상센터였다.  
 

비일비재한 환자 전원 

 

2016년 12월 26일 이국종 센터장과 인터뷰를 하는 도중 건물에서 추락한 50대 여성 환자가 실려 왔다. 다른 대학병원에서 전원 된 환자였다. 지역 내에 권역외상센터가 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성형외과 의사들은 자기 환자 안 뺏기려고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데 외상외과는 다른 병원에 환자를 그냥 내 줍니다. 역할을 할수록 적자인 구조니까 책임지고 치료하겠다는 의지가 없어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국민의당)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2015년 10개 권역외상센터에 3526명의 중증외상환자 가운데 85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부당하게 다른 기관으로 전원 됐다.


모 센터의 경우 4명의 의사가 지난해 1~5월 외상환자보다 일반 환자를 더 많이 진료했다. 외상환자 전담 명목으로 지원되는 국고 보조금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의사 1인당 1억2000만원의 인건비가 지원된다. 전담 전문의를 채용하지 않고 당직기록을 허위로 작성한 곳도 있었다. 


“지금 상태로 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저 조차도 예산 낭비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의 앞선 모델을 이를 악물고 뿌리를 내리겠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가망이 없어요.”


환자가 ‘트라우마 베이(소생실)’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전문의와 간호사 10명으로 구성된 전담 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국종 센터장의 지휘에 따라 각자 맡은 검사와 처치를 동시에 진행했다.


천장에 달린 X-Ray장비가 이동해 골절 의심 부위를 촬영하는 동시에 장기 손상 확인을 위한 초음파 검사가 이뤄졌다. 저혈량성 쇼크에 대비한 혈액 샘플 6개가 항상 구비돼 있다. 모든 검사와 처치는 1시간을 넘지 않는다.

 
적정 볼륨 유지 못하면 무용지물


센터 전체 의료진은 외상외과 5명, 응급의학과 1명, 정형외과 3명, 신경외과 1명, 마취과 1명, 영상의학과 1명 등 12명의 교수와 20여명의 전문간호사로 꾸려졌다. 외상전담 전문의들이 365일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총 100병상 중 중환자실이 40병상이다. 중증외상환자 전용 수술실도 갖추고 있다. 예방가능사망률이 2% 미만인 미국 샌디에이고 외상센터 모델을 그대로 따랐다.

2015년 아주대병원이 맡은 중증외상환자(중증도계수 15이상)는 505명이다. 1년에 헬기로 이송되는 환자 수만 200여명이다.


“국제 기준과 비교하면 우리 센터는 중하위 수준밖에 안됩니다. 2007년 연수한 영국 로열런던병원의 경우 매일 4~5번씩 1년에 1000번 넘게 출동해요. 권역 내에서 발생한 환자는 반드시 지정 센터가 담당합니다. ”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려면 의사 1인 당 적정 환자 수가 유지돼야 한다. 환자가 너무 많으면 적절한 치료가 어렵다. 환자가 적으면 수백억원의 국고보조금이 투입된 센터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
 

“환자가 센터로 집중돼야 전담인력 트레이닝도 할 수 있습니다. 중증외상환자를 구경도 못 해봤는데 어떻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어요. 한 달에 10명 조차도 보지 않으면 오히려 생존률이 떨어집니다. 권역 환자를 있는 힘껏 끌어와서 치료해야지 빈 수술방에서 암 수술해서 되겠습니까”    


이 센터장은 매일 故 김민건군과 유사한 사례를 경험한다고 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골든아워가 지나서야 적절한 치료를 받는 환자가 절반이 넘는다. 각 센터가 적정 환자 볼륨을 유지하고 진료 역량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제2의 민건이’ 사태는 불 보듯 하다.

국내에 영‧미권의 선진 시스템을 보고 배운 의사들도 드물다. 지금의 이국종이 있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그는 “10년을 내다보고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이국종 센터장은 대한민국 외상외과의사인 자신의 처지가 “비루하다”고 했다. 환자를 살려낼수록 적자만 쌓이
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에서 외상외과 의사들이 병원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외압도 감수해야 한다.  

“제 자신이 몸 담은 기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어요. 외상센터 때문에 병원 운영이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억지로 이 조직을 이끌고 나가면서 계속 유지해야 되는지조차 확신이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것도 고통이다. 외상팀은 지나친 노동강도 탓에 삶이 피폐하다. 목숨을 걸고 헬기에 탑승할 때마다 ‘이번 출동으로 추락해 사망할 경우 국가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쓴다.

돌아오는 건 ‘시끄럽다’는 민원이다. 그는 “보석 같은 사람들을 모았는데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괴롭다”고 토로했다.   

 

이국종 센터장은 작년 5월 말 왼쪽 망막 신경이 손상됐다. 왼쪽 무릎에도 자꾸 물이 차올라 계단을 오를때 불편하다. 세월호 사고 때 구조 활동을 하다가 왼쪽 어깨가 부러졌다. 

외상외과를 전공하겠다는 후배들이 찾아오면 만류부터 한다. 웬만한 각오 없으면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기 미래가 중증외상환자 치료하는 데 있지 않다면 전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증외상은 어차피 계속 힘들 겁니다. 장밋빛을 기대하는 건 무리에요.”

그는 국내 중증외상치료시스템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면서도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권역외상센터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은 놓지 않았다.

"경기남부센터가 월드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진료 볼륨과 진료 역량 발휘하지 못한다면 단 하루도 더 할 마음이 없습니다. 구성원 간 내부 갈등과 반목이 심해지고, 다른 조직에서 일어나는 구태적 행태가 벌어지면 제 손으로 이 조직을 해체할 겁니다.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 봐야죠." 

김성미기자 ksm6740@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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