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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후 사인(死因) 변경과 서울대병원 신뢰
한해진 기자
[ 2017년 06월 27일 05시 36분 ]
매일 아침 혜화역 3번출구에서는 어르신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줄지어 한 방향으로 부지런히 걷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길다랗게 늘어선 줄은 오래된 의과대학 건물을 지나 서울대학교병원 본관이 위치해 있는 오르막길까지 이어진다. 모두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을 방문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다.
 
빅5병원의 하루 내원객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계단 하나 오르기 어려워하는 어르신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경사 급한 오르막길을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 풍경을 지켜보게 되면 누구나 서울대병원의 위상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병원. 세계 최초로 B형간염바이러스 항원 분리 성공. 국내 최초 시험관아기 탄생과 인공심장 개발. 외과 논문 수 세계 12위. 의료기술의 첨단을 걷고 있는 서울대병원 앞에는 늘 최초 혹은 최고의 수식어가 붙는다.
 
물론 최고 국립대학병원이라는 타이틀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산업 쪽에 조금이라도 눈을 돌리면 영리화 논란에 시달렸고 정부 당국으로부터 하달되는 각종 정책 시범의 장(場)이 돼 취재진들의 눈길을 피할 새가 없었다. 수많은 잡음에도 서울대병원은 국립 의료기관으로서의 명성과 최고 의료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지켜왔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이 그간 쌓아온 위상에 흠집이 가게 된 원인은 새로운 의료기술 개발이나 논문 작성, 치료한 환자 수 같은 것보다 훨씬 단순한 곳에서 비롯됐다. 사인(死因) 변경. 故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정정한 그 한 가지 이유로 서울대병원은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 사망진단서 정정 사태를 비판하는 이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 왔다. 대한의사협회는 “故백남기씨 사망진단서에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재하고 직접사인을 '심폐 정지'로 기록한 점은 의협의 진단서 등 작성·교부지침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울의대생들도 102명 합동 성명서를 통해 “직접 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은 국가고시 문제에도 출제될 정도로 기본 원칙”이라며 “사망진단서에 심폐정지가 버젓이 기재돼 있고 사망 종류가 병사로 표기돼 있던 오류는 의학적, 법적으로 명백했던 고인의 사인을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던 서울대병원이 새 정부가 들어서자 비로소 기자회견을 통해 사인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기자회견이 있었던 지난 6월15일은 공교롭게도 감사원의 기관운영 감사가 시작된 다음날이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측은 사망진단서 작성 당시는 물론이고 의견이 바뀐 지금에도 사인 결정은 의료적 사실에 기인한 것일 뿐 외부 요인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이 이를 믿어줄지는 의문이다. 지금껏 해명할 수 있었던 많은 기회들을 지나치고 부정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는 국정농단 주범인 최순실과 연루된 정황까지 겹쳐 신뢰도에 큰 손상이 갔다.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꿋꿋이 유지하던 입장을 정권교체 후에야 번복하는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며 “대외적인 결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 등을 고려했을 때 외부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우리 사회는 의사와 병원에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높은 윤리적 규범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정치적 성향이나 이윤을 따지는 얘기가 개입되면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병원이 늘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고고하게 존재할 수 있기만 한 것은 아님을 국민들도 알고 있다. 여론은 의료기관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 하길 요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의무를 다한 이들에게 더 큰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관리 예산이 늘어났고 소규모 지방의료원까지 격리병실이 확보됐다. 2세 유아가 위급한 상황에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고 나자 전국의 권역응급의료센터 운영체계 개선이 재논의됐다. 의료문제는 의료체계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번 서울대병원 사태는 과연 의학에만 국한돼 있는 문제일까. 혹은 복잡하게 얽힌 외부 요인들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안일까.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서울대병원은 무엇이 근본인지 심사숙고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해진기자 hjhan@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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