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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에 써 내려간 투박한 손글씨 편지 한 통의 행복
김정환 교수(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 2018년 01월 20일 08시 15분 ]

벌써 7~8년이 지났다. 환자는 75세 여자 분이었다. 평소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지만, 매운 것을 먹으면 속이 쓰리다는 증상으로 외부 병원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암인 것 같다”는 얘길 듣고 조직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채 바로 내 외래를 방문했다.
 

내시경 사진을 보니 위체부 소만쪽으로 약 2cm 크기의 불규칙한 모양의 궤양이 관찰되었다. 내시경 육안적 소견으로는 위암을 의심할 수 있는 소견이다.

3~4년 전에 위내시경 검사 후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를 받았고, 외부병원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좀 기다려 보자고 하며 약을 처방했다.
 

환자 본인은 담담했으나 보호자로 온 아들이 오히려 너무 속상해하며 “어머니를 꼭 살려달라, 자신이 어머니를 챙기지 못해서 어머니가 병에 걸린 게 아니냐”고 하면서 다소 과한 감정 표현을 했던 듯하다.
 

일주일 후 외부병원 조직검사에서 특별한 소견은 없었다. 지난 번과는 반대로 너무 좋아하며 기뻐하는 보호자에게 의사로서 하고 싶지 않지만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는 한마디. “이전 내시경 소견이 위암 가능성이 있으니 바로 내시경 재검을 하세요.”
 

보호자 및 환자는 매우 실망했으나 확실하고 냉정하게, 뒤를 돌아볼 여유도 안 주고 바로 예약을 하도록 했다. 직접 확인한 위내시경 소견은 이전보다 더 비전형적인 궤양 모습을 보였다. 내시경 소견으로는 거의 위암으로 판정할 만 했다.
 

5일 후 조직검사 결과가 위암으로 나왔다. 위암 의심 소견이라 했다가 조직검사 결과 정상으로, 재검에서 다시 위암으로 나온 결과를 차례차례 설명했다.

너무 낙담한 보호자에게, 최근 위암 치료법 중 조기 위암 중에서도 초기인 경우에는 내시경 치료가 가능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위암이 점막층이나 점막하층에만 국한되어 있는 경우를 초기 위암이라고 한다. 수면내시경을 이용해 조기 위암을 제거하는 것을 내시경점막하박리술이라고 한다.

내시경으로 시술이 시행되므로 복부에 상처가 남지 않고 위를 그대로 남겨 놓게 되어 시술 후 생활 및 음식 섭취 등에 전혀 지장이 없다. 회복 및 입원 기간이 매우 짧고 위장관 기능이 보존되어 치료 후 삶의 질이 우수하다.
 

이 방법은 2000년대 초반에 소개되어 점차 기술적으로 발전해 기존의 방법으로 일괄 절제가 불가능했던 큰 병변은 물론, 궤양 반흔이 있는 병변에서도 기술적으로 일괄절제가 가능하게 됐다.

매우 좋은 방법임에는 분명하나, 수술적 치료와 대등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 위암의 내시경점막하박리술의 절대적 적응증으로 분화암이면서 궤양이 없어야 하고 병변의 크기가 2cm 이로 규정돼 있다.
 

본 환자는 궤양 소견이 있으므로 절대적 적응증이 아닌 확장된 적응증에 의한 내시경 절제술이 필요함을 설명하였고, 대략 25%에서는 다시 외과 수술을 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의사는 치료의 성공을 확률로 얘기하며 환자 및 보호자에게 할지 말지를 결정하도록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에게는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확률 얘기가 아니라 담당 주치의의 확신에 따른 권유가 중요하리라 평소 생각하지만, 역시 확률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지금은 확장된 적응증에 따라 내시경 절제술을 하고 있지만 2000년대 중 후반인 당시만 하더라도 확장된 적응증에 해당되는 궤양이 있는 소견에 대해서는 (그리고 위암의 위치도 상당히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내시경 치료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도 다소 긴장됐던 게 사실이었다.
 

환자가 입원 후 오후 회진에서 다음 날의 시술에 대해 설명하던 중, 기존에 복용하던 아스피린을 그날 아침까지 복용했음을 알게 됐다. 외래 등에서 두세 차례 이상 의사 및 간호사가 주의를 주었건만.
 

일주일 후 다시 입원해 내시경점막하박리술을 시행했다. 대략 1시간이 걸렸는데 시술은 잘 마무리됐다. 금식 및 약물치료 기간이 지나고, 별다른 문제 없이 퇴원했다.
 

다시 일주일 후 외래에서 조기위암은 완전 절제되었으며 절제표면은 깨끗하다는 최종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해 주었다. 보호자인 아들은 “어머니를 살려주셔서 감사하다”며, 두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겸연쩍어 멋쩍은 웃음을 보였던 듯하다.
 

보통 위암 치료 후 5년 정도 추적관찰을 하게 되는데, 추적관찰 기간인 5년이 지나면서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보호자는 마치 작별할 수는 없다는 듯 연신 감사하며, 어디 다른 데 가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

많은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특히 조기위암과 조기대장암 절제를 전문으로 하는 소화기내과 내시경 의사로서 꽤 기분 좋은 순간이며, 나름 미소를 짓게 하는 상황이다.

이 맛에 한 시간씩, 때로는 두세시간씩 힘들게 내시경 시술을 해도, 기분은 상쾌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날은 꽤 기분 좋은 날이다. 이후 환자는 1년에 한 번 정도 내시경 검사를 검진 차원에서 하고 있다.
 

최근에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백지에 까만 색 펜으로 직접 쓴 투박한 글씨의 편지.
 

“의사 김정환 교수님께. 벌써 7년 전인가 더 오래됐을 것 같은데요, 저희 어머님 암 판정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중략) 선생님 사랑합니다. 5월 9일 OOO 올림”

데일리메디 dailymed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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