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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의·병협 치킨게임
정승원기자
[ 2018년 02월 08일 12시 20분 ]

최근 수원 아주대학교 인근 PC방의 '현수막 전쟁'이 화제다. 2016년부터 도로변에서 PC방 영업을 해오던 A씨와 같은 건물에서 PC방을 확장한 B씨가 서로 현수막을 내걸면서 경쟁을 했다는 내용이다.
 

기존에 PC방을 해오던 B씨가 사업확장을 하면서 알고 지내던 A씨와의 충돌이 우려됐고, 둘은 매장 인수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렬됐다. 그리고 이 때부터 ‘너 죽고 나 죽자’식의 한치의 물러섬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B씨가 시간당 요금 500원에 라면 500원 행사를 시작하자 A씨가 시간당 300원 행사로 맞섰고, 이후는 감정싸움이 이어졌다. A씨가 ‘B씨가 죽기 전까지 PC방 요금 무료’라는 현수막을 내걸자 B씨가 ‘와이프 갈비뼈 부러뜨리고 만든 PC방, 성범죄자도 PC방 차리나요?’라는 현수막으로 맞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비관적으로 흘러갔다. 두 PC방 경쟁으로 손님은 많이 몰려들었지만 적자 역시 쌓여갔다. 누구 하나 끝장날 때까지 해보자던 경쟁은 결국 두 업장 모두에게 타격이 된 것이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둘러싼 의료계와 병원계의 갈등도 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 보인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은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로 국내 보건의료체계가 휘청거린 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출범했다. 의원이 경증 환자를 보도록 하고 병원은 입원을,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환자를 진료하도록 권고문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결국 불발됐다. 우선 의료계 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각과 의사회와 학회들은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각론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일차의료기관의 단기입원실 문제나 재정중립 등의 문구가 문제가 된 것이다.


또한, 추무진 회장이 임기 막판에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졸속 추진한다며 차기 집행부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로부터 나왔다.


여기에 의료전달체계 협상 당사자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간 입장차가 극적 타결을 가로 막았다. 병협은 지난 5일 긴급 이사회에서 잠정 합의된 권고문 최종안에 반대하기로 정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불발 기류에 의협과 병협은 네 탓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의협 측은 “의원과 병원이 무한경쟁을 하면 모두 상급종합병원으로 가게 된다. 그럼 누가 손해일 것 같나”라며 “의원은 직원들 해고하고 병실 없애버려도 된다. 병원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라고 비난했다.


이에 병협 측은 “우리가 안 받아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깨진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된다”며 “같은 의사로서 의협이 너무 한 거 아닌가 싶다. 병원들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데 떨어뜨리려고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물론 앞으로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추진될 것이다. 경증 환자 누구든 대형병원 응급실을 손쉽게 드나드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데는 모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의를 통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작업은 일단 물 건너갔다. 의협과 병협은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길 수 있던 기회를 제 발로 차버렸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 실패 후 의협 관계자는 “10년 뒤 의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망했다면 이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금 의료계의 상황을 보면 이런 호소가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에 벌벌 떠는 의원이나 중소병원 모두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권고문 최종안에서 논의가 진행됐던 개방형병원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개방형병원에 대해 "이미 실패한 제도"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현재 무한경쟁 시대에서 병원의 장비를 의원에서 이용하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의원은 장비 부담을 덜고 병원은 의원의 인력을 활용하는 개방형병원은 의료계와 병원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는 데 매력적이다. 이미 실패한 제도라면 시범사업을 통해 수정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 될 수 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는 권고문 채택을 위해 2년 여의 기간을 노력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권고문 채택이 불발됐다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된다. 시간이 걸리고 내부 갈등이 있더라도 논의는 진행돼야 한다. 개방형병원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생을 위한 접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처럼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치킨게임은 무한경쟁 후 '공멸(共滅)'로 갈 뿐이다.

정승원기자 origin@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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