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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존엄한 죽음, 현실과 괴리 심각하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 연명의료결정법 실시 우려감 피력
[ 2018년 02월 15일 07시 00분 ]
임종을 앞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내달 4일 전면 시행된다. 생명윤리를 둘러싼 논란의 엄청난 파고를 넘어 천신만고 끝에 시행에 들어간다. 지난한 노력으로 이 법의 산파 역할을 자청했던 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의 감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관련법 시행을 일주일 앞두고 만난 그는 기대보다 우려를 먼저 얘기했다. ‘존엄한 임종의 자기결정권이 법으로 보장된다는 명제는 고무적이지만 실제 임상현장에서는 지나친 제재로 실효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허대석 교수는 보다 적극적인 연명의료중단 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적어도 의료진과 환자가 법을 이해하지 못해 어렵게 마련된 연명의료결정법이 사문화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범사업 사실상 실패
 
1년 동안 의료기관에서 질병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대략 20만명. 365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500명이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을 받게 되는 셈이다.
 
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내달 4일부터는 원치 않으면 연명치료의 늪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시행된 시범사업은 이러한 기대와는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범사업 기간 동안 연명의료계획서 107건이 보고됐고, 이 중 54명의 환자에게 실제 연명치료가 중단됐다.
 
허대석 교수는 이 결과의 맹점을 지적했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서울대학교병원을 포함해 총 10개 의료기관이 참여했고, 830명 정도가 시범사업 기간에 사망했다.
 
830명 중 107명만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는 얘기다. 수치상으로는 13%에 불과하다. 서울대병원 역시 계획서 작성 비율이 6% 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상 실패라고 봐야 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모순은 뒤로한 채 법 시행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수치만을 부각시키려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일까? 허 교수는 당초 입법 취지와 달리 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나치게 많은 규제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환자 본인이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경우에야 문제될 게 없지만 스스로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본인 작성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판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연명의료중단 결정 이행서를 모두 제출하고 심사를 기다려야 한다.
 
혹여나 발생할지 모를 분쟁 소지를 최소화 하기 위한 장치라고는 하지만 임상현장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상당하다.
 
법에서 명시하는 모든 서류를 준비하고 절차를 준수해 연명의료 중단이 시행되는 비율은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자기결정권 보장인지 짚어봐야 합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국회의원 203명 중 202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비율은 고통스러운 임종을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의미한다.
 
허대석 교수는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면 연명의료를 원한다고 봐야 한다는 게 이 법의 시각이라며 이런 식의 접근의 당초 입법취지에도 위배된다고 일침했다.
 
차라리 인공호흡기 다는 게 편해요
 
의료진 역시 부담은 마찬가지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의사 2명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임상현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다.
 
야간이나 주말에 전공의가 당직을 서고 있는 상황에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위해 담당교수를 호출하라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의사가 적은 지방병원이나 요양병원은 부연이 사치다.
 
보호자들에게 가족증명서를 요구하는 것도 의료진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갈등 역시 오롯이 의료진이 감내해야 한다.
 
전공의들도 법의 난해함을 호소합니다. 대부분이 권유가 아닌 요청에 의해 계획서를 작성합니다. 복잡한 절차를 거치느니 인공호흡기를 착용하는 게 낫다고 얘기합니다. 일종의 방어진료임 셈이죠.”
 
고통스럽게 돌아가시지 않게 하고자 법을 만들었지만 실제는 연명의료를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모법은 나쁘지 않았는데 시행령 시행규칙이 복잡해진 게 문제입니다.”
 
실제 이번에 시행되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총 43페이지로 이뤄졌다. 일본은 1페이지, 미국은 2페이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해 임상현장의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법이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연명의료법에는 전체를 흐르는 큰 철학은 없고, 의무규정, 처벌규정 등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 최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우리나라도 전향적인 대리결정을 허용해야 합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 보호자들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해야 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연명의료결정, 말기 암환자만 가능?”
 
허대석 교수는 호스피스 관련법과 연명의료결정법의 혼선에 대해서도 우려감을 표했다.
 
, 에이즈(AIDS),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COPD), 만성간경화 등으로 대상을 제한하고 있는 호스피스와 연명의료를 혼동하는 탓에 자칫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실제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경우 대상질환이 정해져 있지만 연명의료결정은 기저질환 제한이 없이 모든 환자에게 적용된다.
 
연명의료에서 제한하는 행위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투석기 항암제 등 구체적인 연명의료를 의미한다.
 
이러한 혼선은 법에서 말기와 임종기를 별도로 구분한 탓이다. 연명의료 판단은 임종기에서만, 호스피스 보험급여는 말기부터 적용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세계 어느나라도 말기와 임종기를 법으로 구분한 곳은 없다. 보수적인 접근에서도 굉장히 제한적인 접근을 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암 이외의 질환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임종에 이르는 만큼 말기와 임종기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환자가 아닌 정책 편의에 의해 초래된 상황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네요.”
 
환자나 보호자는 물론 의료진도 이 두 영역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찌됐든 호스피스와의 혼동으로 연명의료 결정에 영향을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한편 허대석 교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화를 위해 1998년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창립에 기여했으며, 회장으로 활동했다.
 
1990년대 초반 말기 암 환자 가족상담 모임을 시작해 등불모임이라는 봉사 조직으로 발전시켰고, 서울대학교병원 호스피스실 실장, 암센터 소장, 대한종양내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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