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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갑상선암환자의 평생 동반자가 되고자 한다"
남상은 교수(건국대병원 유방암센터)
[ 2018년 10월 01일 05시 25분 ]
외과는 힘이 들어서 항상 정원 미달인 진료과다. 거기다 나는 여자 외과의사다. 왜 이렇게 힘든 과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을 항상 받게 된다.

그래도 다른 파트와 달리 여성 환자가 대부분인 유방암 및 갑상선암 환자들에게 여성으로서 환자의 고민에 더욱 깊이 공감하면서 치료하려고 노력한다. 단순한 환자와 의사 관계가 아닌 평생 함께 가는 동반자로써 그들의 마음까지 함께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은 게 내 목표다.
 
내 마음 속에 있는 환자는 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막 따고 임상강사로써 유방암 환자를 보기 시작할 무렵에 만났다. 그 당시 경험이 아직 부족해 내 환자를 치료하기 보다는 주임교수 환자의 치료를 돕던 때였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왜소한 체격의 65세 여성분은 누가 봐도 만성병으로 인해 건강 불량상태를 의심할 만했다. 일찍 결혼해 시집간 딸과 함께 내원했다. 1년 전부터 가슴에 멍울이 생겼지만 병원에 오기가 두려워 병변 부위를 꽁꽁싸매고 지냈고, 딸에게 조차 말하지 못했다며 펑펑 울었다.
 
셔츠를 벌리자 유방암세포가 이미 피부를 뚫고 나와 돌출돼 있었다. 주위 조직의 괴사로 멈추지 않는 진물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휴지 조각들이 뜯긴 채로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서 이러한 환자가 오더라도 마음은 항상 안타깝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일찍 내원하지 않고 병변부위를 숨겼던 환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환자는 일단 다른 장기로의 전이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바로 입원을 했고 신속히 전신 PET검사 및 유방암에 필요한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는 이미 폐, 간 그리고 뇌에까지 전이가 되어 있는 유방암 4기로 진단됐다. 그 중에서도 예후가 가장 좋지 않은 삼중음성의 유방암으로 진단됐다.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루 2번씩 괴사된 피부병변을 소독하러 병실에 갔다. 당시 나는 첫째 아이 임신 중이라 냄새에 민감해 병실 문을 여는 것조차도 두려웠다. 처음에는 단순 의무감에 말 한마디 없이 ‘어서 일을 끝내고 나와야지’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의 따뜻한 마음에 가까워지게 됐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자는 항상 나한테 미안해하면서 환부를 보여줬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의사 가운 밖으로 살짝 튀어나온 내 배를 보고는 예쁜 아기가 태어날 거라는 축복의 말을 건넸다. 환자뿐만 아니라 지극정성으로 본인의 어머니를 보필하는 환자의 딸을 보면서도 감동을 받게 됐다. “네, 어머님 따님 같이 효녀였으면 좋겠어요.”
 
환자는 수술적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괴사된 환부는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7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외래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환자와 딸의 연락도 끊기고 말았다. 아직 치료가 남았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치료를 미루게 됐다고 했다. 지속되는 약물치료비와 입원비가 행여나 딸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했던 어머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시집간 외동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마음을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비로소 헤아릴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외래에서 종적을 감춘 지 3개월쯤 되었을까. 어느 날 밤늦게 전공의에게 연락이 왔다. 그 환자가 폐전이가 심해져 호흡이 힘든 상태로 응급실로 내원했다. 본원에 호스피스 병동이 없다고 설명해도 다른데 갈만한 곳이 없다고만 했다. 입원을 했지만 다음날 오전, 환자는 결국 호흡저하로 임종했다.
 
레지던트 이후 사망선고를 많이 경험했음에도 이상하리 만큼 가슴이 시리고 떨리던 내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환자의 죽음 앞에서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건 딸의 손을 한 번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3주 정도가 지났을까. 외래 앞에 앉아 있던 딸을 만나게 됐다. 어머니 임종 때와 달리 비교적 안정되고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해왔다. 딸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예전부터 저희 엄마가 선생님께 전해드리고 싶어 하셨어요”라며 작은 선물을 건넸다. 직접 만든 작고 귀여운 아기 양말이었다.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감동적이고 감사했다.
 
단순히 치료만이 아닌 누군가의 어머니, 또 누군가에는 자식이 될 수 있는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의사가 되리라고 다짐을 해본다. 수술 중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환자의 생명에 심장이 뛰고 긴장 상태에 빠지지만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그들에게 평생의 동반자가 되고 싶다.
dailymed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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