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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의국 풍경 변화시키는 ‘전공의특별법’
복지부 “4년차 전공의 근무 열외 불인정” 공지···주요 수련병원, 지침 개선 실시
[ 2019년 01월 02일 05시 57분 ]

# 가정의학과 3년차 전공의 A씨는 얼마 전 일본으로 떠나는 항공권을 구입했다. 전문의 시험 대비를 위해 휴가를 받게 된 것이다. 치프들에게 인수인계를 마치면 ‘재충전’을 위한 일주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에 들어갈 생각이다.

# 전문의 시험 몇 달을 앞두고 영상의학과 전공의 B씨는 고민에 빠졌다. 시험 준비 중에도 틈틈이 당직을 서야 하는 4년차 전공의들을 위해 병원에서 별관에 ‘공부방’을 마련해 줬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독서실을 다녔었다는 선배나 통근을 하겠다는 동기들을 보면 빨리 결정을 내리고 공부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걱정이 앞선다.

# 지방에서 수련 중인 내과 전공의 C씨는 곧 서울로 떠난다. 전문의 시험 대비 합숙을 위해서다. C씨 뿐만 아니라 지역 내 다른 병원 4년차 전공의들도 함께 한다. 선배들이 가르쳐 준 대로 1년차 때부터 동기들과 월급 일부를 조금씩 모아 숙박비도 마련했다. 꼭 만나지 않아도 족보는 공유할 수 있지만 같은 과끼리 친목도 다질 겸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연말이 되면 전문의 시험 대비를 위해 분주해졌던 의국 풍경이 달라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4년차 전공의의 연말 근무를 의례적으로 줄여 주던 관행을 없앨 것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전공의 특별법 이후 각종 ‘수련 적폐’를 지우려 하고 있는 당국의 노력에 현장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전문의 시험 합숙이 사라진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전문의 자격시험을 앞둔 4년차 전공의의 근무 열외 관행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공식적인 수련 종료 시점인 2월보다 앞당겨 치러지는 전문의 시험 준비를 위해 지금까지 4년차 전공의는 암묵적으로 2~3개월 정도 근무를 면제받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관행이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각 수련병원 의국에서는 2018년부터 이를 적용하고 있다.

서울 소재 A대학병원은 “복지부 결정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전공의들 사이에 큰 불만은 없다”고 전했다.

몇몇 수련병원은 “지침이 내려온 것은 맞지만 내부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며 난감함을 표하기도 했다.

그 이유를 묻자 한 병원은 “과마다 분위기가 달라 민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해당 관계자는 “과장님까지 당직에 매달리고 있는 과에서는 한 달 휴가도 사실상 쓰기 어렵다. 그렇지 않았던 과들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지방 소재 B대학병원은 “연차 휴가가 쌓이기 때문에 4년차 말미에 한꺼번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시험 준비 시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며 “근무 종료 시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병원에 안 나와도 암묵적으로 넘어가 주는 등의 관행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C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법 시행 이후로 장기간 결근을 용인하는 분위기는 조금씩 줄고 있었다”며 “관행을 없애는 대신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휴가 일수를 최대한 맞춰서 전공의들의 불만을 줄이려고 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합숙 문화가 성행하지 않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족보 공유나 스터디 그룹이 없으면 시험 대비가 어려운 것은 요즘도 마찬가지이지만 굳이 합숙까지 하진 않는 분위기가 있다”며 “예전처럼 의무적으로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수련 질(質)의 문제인데···”

실제 전공의들의 반응은 어떨까.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원칙을 지키자는 데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승우 회장은 “시행 초기에는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잘못된 관행을 고쳐나가는 게 맞다는 데 동의한다”며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수련 질(質)의 향상”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병원에서 단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공의가 근무해야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업무량을 조절하면서 공부를 통해 모르는 케이스를 익히는 것도 수련이다. 과연 11월, 12월까지 격무에 시달리는 것만 수련이라고 할 수 있나”며 의문을 던졌다.

이어 “현실적으로 병원에서 전문의 시험을 위해 책을 들춰 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며 “무단 결근을 허용하지 않는 원칙은 지키되 공부를 위한 배려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수련 환경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일규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빅5 병원 가운데 수련규칙을 지키는 병원은 단 한 군데도 없으며, 전체 수련병원의 35.6%가 수련규칙을 준수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은 7개 항목 52건, 세브란스병원은 6개 항목 12건, 삼성서울병원은 6개 항목 81건, 서울아산병원 7개 항목 59건, 서울성모병원은 4개 항목 19건의 미준수로 밝혀졌다.

구체적으로 보면 미준수 항목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휴일 미준수 현황이었으며(전체 621건 중 203건), 주당 최대 수련시간 미준수 현황이 123건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아직도 수많은 전공의들이 주80시간 이상 일하며, 1주일에 24시간도 채 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윤 의원은 "복지부는 전공의법 수련규칙을 미준수한 병원에 과태료를 부과하라"며 "시정명령에 따라 시정하지 않는 병원의 경우, 수련병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며 단호한 처분을 촉구했다. 

‘갑질 문화’도 여전하다. 일부 병원이 전임의 과정을 의무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관습이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협이 밝힌 사례에 따르면 모 병원의 경우 전임의 과정을 하지 않으면 의국 연보 명단에서 이름이 삭제되고 암암리에 ‘왕따’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임의를 하지 않으면 병원에 3억을 내야 한다든가, 전공의 TO확보를 위해 의무 전임의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병원도 있었다.

좁혀지지 않는 온도차

작년 11월말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안전한 의료환경 구축을 위한 준법진료’를 선언했다. 교수와 봉직의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52시간 근무를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전공의는 전공의특별법에 따라 최대 88시간만 근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준법진료 선언을 통해 병원에서 근로기준법 및 전공의특별법 준수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당시 최 회장은 “관련 당사자들이 준법진료 선언을 함께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논의할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겠다”며 “특히 의료기관 경영진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병원 협회 관계자는 “지금도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준법진료 도입에 따라 환자 대기시간이 늘어나고 불편이 커질 우려가 있다”며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 중소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88시간보다 봉직의 52시간 근무 준수가 더 어렵다”며 “준법진료가 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법 준수로 인해 발생하는 병원 내 의료인력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꾸준히 제안되는 입원전담전문의 운영도 만만치 않다.

보건복지부 측은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발표한 후 병원에서도 입원전담전문의 확대에 노력하고 있지만 지원자가 많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전공의법 도입 후에도 전반적인 교육의 질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복지부와 수련병원, 전문과목 학회에서 개선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hjhan@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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