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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봉침→환자 위급→도와준 의사→환자 사망
유족, 두명 모두 소송 제기···'선한 사마리아인 법' 개정 필요성 제기
[ 2020년 01월 28일 06시 20분 ]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지난해 5월 허리 통증으로 한의원을 방문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봉침 시술을 받았다. 시술을 받던 중 A씨는 돌연 쇼크 반응을 일으켰다. 벌에 있는 독(毒) 성분이 원인이 되는 아낙필라시스 쇼크였다. 

A씨를 시술한 한의사는 같은 층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에게 응급처치를 도와달라고 했다. 쇼크상태인 A씨를 본 이 전문의는 심폐소생술과 강심제 투여 등 응급처치를 했다.

그러나 쇼크 반응은 진정되지 않았고 이를 지켜보던 한의사는 119 구급대를 부르자고 했다. A씨는 곧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A씨는 당시 신혼 6개월이었다.
 

유족들은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민사 소송 대상은 봉침을 놓은 한의사와 가정의학과 전문의 모두였다.

유족들은 “119가 도착했을 당시 A씨는 심정지한지 49분이 지난 후였다”며 “한의사는 제대된 응급처치를 하지 않았으며,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응급키트를 늦게 들고 오며 골든타임 내 구급대에 이송되지 못했고 결국 A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유족이 이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규모는 9억원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의료계에선 거센 반발이 초래됐다. 봉침을 놓은 당사자인 한의사가 아닌 응급처치를 도와주려한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부당한 송사에 휘말렸단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선의(善意)로 나선 의사에게 돌아온 것은 수억원의 민사소송이라며 “앞으로 의사들은 비행기 등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자발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한 의지에서 비롯된 행위’는 민사책임 감면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미국의 모든 주를 포함해 캐나다, 호주, 영미법권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구조 의무 없는 자가 응급상황에 놓인 타인에게 선의로 구조행위를 한 경우 이를 보호하는 법을 갖고 있다. 영미법상 오래된 법리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리'에 기반한 것이다.
 

미국 미네소타 주의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전문의료 처치가 가능한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력 및 응급처치를 한 사람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게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의료인의 조력행위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온타리오주의 선한 사마리아인법은 의료전문가가 적절한 의료시설이 아닌 곳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응급조치를 한 경우, 과실로 인한 손해에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한다.
 

아일랜드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조력자가 민사적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을 명시한다. 물론 의료전문가가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구조행위를 했을 때는 예외다.
 

국내법에서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2항(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이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담고 있다.
 

이 법은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를 처치했을 때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게 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
 

응급의료종사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감면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료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면허 범위에서 한 응급의료 행위는 감면 대상이 된다.

김천수 교수 "중요 쟁점 누락, 민사책임 면책조항 마련돼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선한 사마리아인법’에는 중요한 쟁점이 빠져 있다.
 

최근 의료전문지 법원출입기자단과 만난 김천수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우리나라 법의 경우 ‘무상으로 응급처치가 이뤄졌는가’, ‘전문의료인의 근무 중에 이뤄진 응급처치인가’에 대한 조문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한의원 봉침 아낙필라시스 쇼크 사망 사고’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두고 법리다툼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같은 건물에서 병원을 영업하고 있다가 연락을 받고 온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당시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봐야 할지가 중요한 쟁점”이라고 말했다.
 

응급처치가 면허범위 내에서 이뤄진 것인지도 면밀히 따질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간호사가 의료시설 외 응급상황에서 면허범위 밖인 삽관시술을 했다면 이는 민간인의 행위로 간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경우 강심제(에피네프린)을 투여했다. 아낙필라시스 쇼크 환자에 대한 강심제 투여가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영역인지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해외 입법사례에서 명시돼 있는 ‘대가를 바라지 않았는가’에 대해, 이사건의 경우 요양급여 신청을 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명료하다고 말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선의에서 비롯된 호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한의사 의무를 이행, 혹은 대행했는지 여부도 판단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현행법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막연한 측면이 있다”며 “법조문에 대해 전반적인 손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재판부는 오는 2월 12일 ‘한의원 봉침 아낙필라시스 쇼크 사망 사고’의 1심 판결을 내린다.
 

앞서 지난 1월 15일 진행된 최종변론에서 유가족은 “한의사는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얼음찜질만 했을 뿐,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곧바로 119를 불러서 큰 병원으로 이송했으면 사망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mut@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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