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려 루비콘강 건너는 병원들
박대진 데일리메디 취재부장
2021.04.10 05:00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데스크 칼럼] 이탈리아 북동부를 동류(東流)해 아드리아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루비콘강. 로마 공화정 말기 이탈리아와 갈리아주의 경계를 이룬 아주 작디 작은 강이었다.

폼페이우스의 사주를 받은 원로원이 갈리아에 있던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리자 카이사르는 내란을 일으켜 로마로 진격했다.

이 때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을 외치고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고사로 유명하다. 이후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말은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진행된 상황 묘사에 왕왕 인용된다.

국내 병원들의 대표단체인 대한병원협회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내홍 수준을 넘어 심각한 상황
에 직면했다.
 
지난해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관련한 대한병원협회 행보에 극도의 반감을 표출했던 대학병원들이 최근 별도 단체를 설립했다.
 
국립대학병원협회, 사립대의료원협의회, 대한사립대학병원협회 등 3개 단체가 최근 ‘대한대학병원협의회’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적인 출범을 알렸다.

대한대학병원협의회 출범이 던지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여느 이익단체에서 연출되는 집행부에 대한 반발 차원이 아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 동조한 정영호 병협회장의 행보가 결정적 단초로 작용한 듯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뿌리깊은 반목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병원협회 내부적으로는 오랜기간 대학병원과 중소병원의 갈등이 지속돼 왔다. 
 
1959년 전국 68명 병원장들이 친목 성격의 대한병원협회를 창립한 이래 40년 세월을 별 탈 없이 운영됐지만 급격한 의료환경 변화에 병원협회 역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회장 선출방식이었다. 29대 회장까지 줄곧 추대 형식으로 회장을 선출했던 병협은 30대 회장부터 경선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후 매번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 회장이 선출됐다. 회장 추대 미덕을 상실한 결과는 참혹했다. 각 경선 과정에서 직능과 직역의 반목은 심화됐다.
 
무엇보다 경선방식 도입 이후 연거푸 4번을 중소병원장들이 회장에 오르면서 대학병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4번 모두 중소병원과 대학병원 간 경선이었던 만큼 상처는 더 컸다.
 
대학병원들은 중소병원에 치중된 대한병원협회 운영에 강한 반감을 나타냈고, 갈등 봉합 차원에서 중소병원과 대학병원이 번갈아 가며 회장을 맡는 ‘교차출마’ 선거 방식이 도입됐다.
 
회장 교차출마 이후 봉합된 듯 보였던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갈등은 그럼에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 결은 확연히 달랐다. 기존 갈등이 ‘패권 다툼’ 성격이 짙었다면 교차출마 이후에는 ‘이해 상충’으로 전개되는 양상이 또렷했다.
 
의료정책의 절대적 영향권에 놓여 있는 병원들은 규모와 직능, 직역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들이 속출했다.
 
중소병원들은 간호등급 차등제 시행 이후 간호사를 싹쓸이하는 대학병원을 원망했다. 반면 대학병원들은 그들 나름대로 PA 제도화에 반대하는 중소병원들의 행보가 마뜩치 않았다.

때문에 이번 대한대학병원협의회 출범은 그동안의 갈등이 곪아 터진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학병원들은 여차하면 병협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회비로 운영되는 대한병원협회에서 대학병원들의 회비 비중은 80%에 육박한다. 상징성 측면에서도 대학병원들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이를 감안하면 대학병원들 탈퇴는 병협으로서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62년 역사의 대한병원협회가 설립 이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작금의 상황은 어쩌면 이미 오래 전 예견돼 있었는지 모른다. 의료정책이 직능과 직역 갈등을 초래했고, 병원들 역시 그 정책에 휘둘리면서 자연스레 반목 구도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단일조직이던 대한병원협회는 대한중소병원협회, 대한요양병원협회, 대한전문병원협회, 대한의료법인연합회, 대한수련병원협회 등 다양한 특별병원회를 아우르고 있다.
 
여기에 국립대병원협회, 사립대의료원장협의회, 지방의료원연합회, 대한정신병원협의회 등까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수 많은 직역과 직능단체를 살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직역과 직능의 세분화는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위정자들의 의료정책이 그리 만들 것이고, 생존을 위한 병원들 몸부림은 이 같은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게 될 공산이 다분하다.
 
병원계에 놓여진 루비콘강을 만든 정부가 대한병원협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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