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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외과의사 삶 정진" 형제의 분투
여천전남병원 정웅길·여수전남병원 정종길 원장
[ 2021년 05월 25일 05시 47분 ]
대한외과학회-데일리메디 공동기획

대한민국 필수의료 책임지는 지방 외과병원을 가다여천여수전남병원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필수과이지만 기피과이기도 한 대한민국 외과. 암울한 상황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외과의 위기는 대한민국 의료의 위기라는 경고가 무색할 정도다. 세계적 수준의 술기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처우에 지원자까지 줄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수 십년 동안 묵묵하게 수술외길을 걷고 있는 병원들이 적잖다. 데일리메디는 대한외과학회와 함께 힘겨운 저수가, 인력난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외과의 뚝심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 병원들을 발굴, 조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익만을 좇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숭고한 고행(苦行)을 알림으로써 외과 중요성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보다 많은 외과병원들이 술기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울림의 시작이기를 고대한다. ‘대한민국 필수의료 책임지는 지방 외과병원을 가다세 번째 행선지는 밤바다의 낭만이 넘실대는 전라남도 여수다. 특이하게도 이 곳에는 외과의사 형제가 나란히 종합병원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 건강과 함께 필수의료를 사수 중이다. 여천전남병원과 여수전남병원, 두 형제병원의 의미있는 고군분투와 환자 사랑과 애정은 수려한 여수 밤바다가 잠든 시각에도 계속된다. [편집자주]

 

검소, 청렴 대명사 아버지 권유로 의학 문(門) 들어선 형제

 

여천전남병원과 여수전남병원의 태생과 역할을 조명하기에 앞서 두 병원장의 아버지인 정명민 선생 얘기부터 짚어야 한다.

 

정명민 선생은 미 군정 하에 초대 여수시장을 역임하는 등 20여년 간 공직생활에 몸담으면서 검소와 청렴한 생활로 지역에서 명망이 높았다.

 

슬하에 7남매를 둔 그는 유독 자식들에게 의료인의 길을 권유했다. 탄탄한 진로나 여유로운 생활을 염두한 권유가 아니었다.

 

당신이 품은 평생의 한()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국내에 창궐한 콜레라로 무려 3명의 형제를 잃은 슬픔이 의료에 대한 열의로 승화된 탓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역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격리돼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쓰러져 가는 형제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아픔은 형용이 힘들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 바람대로 아들 4명은 의사, 3명은 약사가 됐다. 7남매 모두 의약사로 키운 부친의 유일한 당부는 환자였다.

 

아무리 가난한 환자라도 무조건 치료하고 보살펴야 한다는 말을 의과대학을 다니는 내내 들었고, 그 당부를 말을 전하던 당신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환자를 위한 정명민 선생의 애착은 7남매 교육 신화로 그치지 않았다. 큰병원을 찾아 광주로 가는 도중에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수 많은 응급환자들을 보면서 통탄했다.

 

의사 아들 4명을 불러모아 여수에 응급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제대로된 병원을 설립해야겠다는 의지를 전하고 즉각 실행에 들어갔다.

 

미나리밭 부지에 몇 년 후 여수 지역 최초의 종합병원인 여수전남병원이 들어섰다. 당시가 1983년이었다.

 

큰아들인 정웅길 원장이 초대 병원장을 맡았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외과의사로 꽃길을 걷고 있던 그를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도 아버지였다.

 

국립의대에서 배운 의술인 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을 거역하기 힘들었고, 모교인 전남대병원으로 돌아와 수술에 몰두했다.

 

대학병원 교수 생활 3년 남짓이 됐을 무렵 이번에는 고향인 여수 지역민을 위한 아버지의 호출이 있었고, 그 숭고한 뜻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번에도 순순히 여수행을 택했다.

 

외과, 산부인과를 전공한 아우들과 본격적인 개원 준비를 시작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여수전남병원이 문을 열었다. 그렇게 전남 여수 지역 필수의료의 역사는 시작됐다.

 

병원 존재 이유는 환자" 신념 새기며 평생 헌신해온 형제 원장

 

역시나 아버지의 판단은 옳았다. 개원과 동시에 여수는 물론 주변 섬 주민들이 몰렸다. 개선된 병원 접근성만으로도 지역민들에게는 시혜였다.

 

우리 지역에도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술환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정웅길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료와 수술에 매달렸야 했다.

 

그렇게 10년 넘는 세월 쉼 없이 의업(醫業)을 수행하던 중 지금은 여수시로 통합된 여천지역에서 병원 설립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흘려들었지만 여천시장을 비롯해 지역민들의 부탁이 간곡했다. 여수전남병원은 이미 안정궤도에 올라와 있는 만큼 또 다른 의미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 개원을 결심했다.

 

1999년 아우에게 바통을 넘기고 여천전남병원의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여천전남병원은 연간 외래환자 238000, 입원환자 94000명이 이용하는 지역 거점병원으로 성장했다.

 

주목할 점은 종합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외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18개 진료과 44명의 의사 중 외과의사가 4명이다. 비율로는 12%.

 

여기에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이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지키고 있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 치료는 물론 갑상선, 위암, 대장암, 유방암 수술까지 도맡아 수행 중이다.

 

여수를 비롯해 고흥, 보성, 순천, 광양주민들이 수술을 위해 여천전남병원을 찾는다. 특히 해양경찰청과 연계한 원격진료 시스템을 통해 섬 지역민의 건강까지 관리하고 있다.

 

효율성 측면에서 기피하기 십상인 외과와 응급의학과를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정웅길 원장의 경영철학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는 병원의 존재 이유는 환자라는 소신을 여전히 고수 중이다. 산수(傘壽)의 나이에도 집도를 하고, 한밤 중에도 응급콜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병실을 늘리는 대신 화재시 환자안전을 위해 중앙경사로를 크게 설치하고, 개원 당시부터 병원장실을 두지 않고 진료실을 사용하는 것도 그의 철저한 환자중심 철학의 발로다.

 

정웅길 원장은 지금까지 지역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으로 병원을 운영해 오고 있다외과 수술의 불모지였던 여수에 나름 의미 있는 행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가치와 보람 느낄 수 있다면 힘들어도 환자중심 의료 지향

 

큰형과 둘째형에 이어 여수전남병원을 이끌고 있는 정종길 원장 역시 외과의사다. 개원 당시 레지던트 4년차였던 그는 군 제대 이후부터 줄곧 여수전남병원과 함께였다.

 

가장 근거리에서 두 형님의 경영철학을 전수받은 그는 진정한 환자중심 의료를 위한 의료진의 부단한 노력을 강조한다.

 

정종길 원장은 의사는 신이 아니지만 100점짜리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은 절대 게을리 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는 모름지기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인 만큼 100점짜리 실력을 갖춘다는 각오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38이란 세월 동안 쌓아온 신뢰와 최상의 의료를 지향하는 정종길 원장의 소신은 다방면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여수지역 외상환자 40%가 가장 먼저 여수전남병원으로 이송된다. 119 구급대도 인정하는 수술 잘하는 병원이라는 수식어가 과언이 아닌 이유다.

 

또한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의 유기적 협업으로 응급실 내원부터 수술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176분이다. 이는 우리나라 평균에 비해 월등히 빠른 시스템이다.

 

외상 및 응급환자의 수술이 빠르게 결정되고 시행되다 보니 환자의 치료 경과도 좋다. 워낙 다양한 사례의 환자가 내원하다 보니 의료진 실력 향상은 덤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필수의료에 대한 여수전남병원 뚝심이 있기에 가능하다. 실제 정종길 원장을 위시해 4명의 외과 전문의, 5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생명권 사수 최전선에 배치돼 있다.

 

여수전남병원은 술기 면에서도 다른 병원과 비교 우위를 자랑한다. 국내에 1990년에 정착된 복강경수술을 이듬해인 1991년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장암, 위암, 유방암, 등 난이도 높은 수술을 비롯해 복막염 등 평이한 수술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수술이 복강경으로 이뤄진다.

 

물론 로봇수술 등 최첨단 장비를 들일 수도 있었지만 복강경 대비 대등한 치료결과를 보이면서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일찍이 마음을 접었다.

 

정종길 원장은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아무리 험로라도 기꺼이 감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외과의사가 수술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의료환경 절실

 

형제는 이구동성으로 다시 태어나도 외과의사로 살겠다고 했다. ‘운명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외과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수술한 환자가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 희열을 느끼고, “선생님 덕분에 살았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에 장시간 수술로 녹초가 됐던 몸에 전율이 흐른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들 외과의사 형제들의 고민도 맞닿아 있었다. 날로 심해지는 칼잡이 구인난과 외과병원으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외과의사 기근현상이 심화되면서 여느 병원과 마찬가지로 의사 구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지방이다 보니 지원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어렵사리 외과의사를 채용한다고 하더라도 시스템에 최적화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나마 그 때까지라도 버텨주면 감지덕지다.

 

편한 삶을 추구하고자 했다면 외과를 택하지 않았다는 말로 설득되는 시대가 아님을 절감해야 하는 상황이 사무치게 마음 아프다.

 

때문에 두 형제 공히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의 반복 속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수가 타령을 하고 싶지도 않다. 뼛속까지 외과의사인 이들에게 생명을 다루는 외과 술기를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게 영 마뜩찮다.

 

외과의사가 제대로 수술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이야말로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외과의사의 자긍심을 되찾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웅길 원장은 작금의 외과는 악순환의 반복이라며 외과의사들이 오롯이 수술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그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것이라고 설파했다.

 

정종길 원장 역시 고단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묵묵히 수행하고는 있지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현실과 추구하는 이상의 괴리가 너무 크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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