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의 전조' 간경화, 주범은 담즙산의 간 적체
간세포 MCRS 1 결핍→담즙산 적체→섬유모세포 활성화→간 섬유증
2022.01.19 18:09 댓글쓰기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간경화(학술명 '간경변증')는 간염 등으로 인해 장기간 간세포 손상이 지속할 때 생긴다.
 

간세포 손상은 간에 흉터가 축적되는 간 섬유증으로 진행되고, 이런 간 섬유증이 전체에 퍼지면 간경화가 된다.

간경화는 그 자체로도 매우 위험한 병이지만, 치명적인 간암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간경화는 의학적 연구가 부족한 질병으로 꼽힌다. 질병의 특성상 실험에 쓸 만한 동물 모델이 부족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스페인 국립 암 연구 센터(CNIO) 과학자들이 간경화가 발생하는 분자 메커니즘을 처음 밝혀냈다. 간경화 발생엔 MCRS 1이라는 간세포 단백질과 담즙산이 핵심 역할을 했다.

이 발견은 효과적인 간경화 치료법을 개발하고, 어떻게 간경화가 간암으로 진행하는지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로 보인다.
 

관련 논문은 유럽 간(肝) 학회(EASL)가 발행하는 '간장학 저널(Journal of Hepatology)'에 최근 실렸다.
 

19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간 조직의 섬유화는 섬유모세포(fibroblast)의 활성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는 섬유모세포가 어떻게 섬유화 과정에 개입하는지를 밝혀냈다.
 

간세포(hepatocytes)가 MCRS 1이라는 단백질을 생성하지 못하는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되면 쓸개에 저장돼야 할 담즙산이 간에 쌓여 섬유모세포를 활성화하고 이것이 섬유증을 유발했다.
 

CNIO의 '성장인자, 영양분, 암 연구 그룹'은 몇 년 전 MCRS 1 단백질이 대사 작용에 관여하고 몇몇 유형의 암과도 연관돼 있다는 걸 발견했다.
 

당장 이 단백질이 간세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인체 대사 작용에 관여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 간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MCRS 1 단백질이 발현하지 않게 유전자를 조작한 생쥐에 실험해, 인간의 간경화와 비슷한 간 조직의 섬유화가 진행된다는 걸 확인했다.
 

논문 제1 저자인 아만다 가리도 박사후연구원은 "간세포의 MCRS 1 결핍이 어떻게 간경화를 유발하는지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약물학적 전략을 개발하는 문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간 섬유증은 간 성상세포(hepatic stellate cells)의 변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간 성상세포가 섬유모세포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흉터 조직을 형성하는 물질이 합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 성상세포의 변형과 섬유모세포의 활성화를 촉발하는 메커니즘은 알지 못했다. 이번 연구에서 담즙산이 핵심 고리라는 게 드러났다. 

간세포가 MCRS 1을 만들지 못하면 담즙산의 흐름이 바뀌어 섬유모세포의 FXR 분자 수용체를 활성화했다. FXR 수용체는 간경화 발생 과정에 시동을 거는 스위치 역할을 했다. 이 분자 경로는 간경화 치료법 개발의 중요한 표적이 될 수 있다.
 

아울러 간세포 유전자를 제어하고 간의 정상 기능을 유지하는 MCRS 1의 알려지지 않았던 역할도 이번에 확인됐다. 
 

이 FXR 수용체는 이미 몇몇 간 질환 치료제의 표적으로 쓰이고 있다. 미국에서 임상 시험 중인 반합성(semi-synthetic) 담즙산 제제 '오칼리바(Ocaliva)'가 그런 경우다.
 

그런데 오칼리바의 잠정적 부작용 위험이 최근 미국 FDA(식품의약국)에 보고됐다. 오칼리바는 일부 환자에게 심한 섬유증과 전격적인 간 손상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CNIO 연구팀이 이번에 발표한 실험 결과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우리 데이터는 섬유증 활성화에 담즙산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시사한다"라면서 "이건 미래의 간경화 치료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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