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을 환자에게 직접 건네지 않고 제3자에게 전달한 의사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이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정용석)는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면허자격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시 송파구 소재 산부인과에 근무하는 의사 A씨는 지난 2018년 3월 1일 한 신생아에 대한 처방전을 부모가 아닌 간호사 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산후조리원 감염관리 실장에게 발급했다.
처방전을 전달받은 실장은 약국에서 의약품을 대신 구매해 신생아의 부모에게 전달했다.
이에 보건복지부장관은 A씨가 의료법 제18조를 위반해 처방전을 환자에게 직접 발급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15일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의료법 제18조 제1항은 ‘의사나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의약품을 투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내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사가 처방전을 발급해야 할 상대방은 환자임이 원칙인 것이다.
“산모 배려 위한 행동으로 약국 유착관계 등 전혀 없어” 항변했지만 기각
이에 A씨는 “처방전을 신생아 보호자인 산모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은 것은 단순 환자 배려 차원”이라고 항변했다.
A씨는 “보호자 요청에 따라 신생아를 진단 및 처방하고 그 내용을 산모에게 충분히 설명했다”며 “처방전은 환자에게 직접 건네주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당시 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RS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인해 산모 역시 격리돼 직접 약국을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다가 인근 약국이 문을 닫아 처방전을 전달받은 실장은 상당히 먼 거리의 약국까지 가서 약을 지어왔다”며 이는 산모를 배려하기 위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참작할만한 사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처방전을 환자에게 직접 전달토록 규정하는 의료법은 환자 권리보호와 약국과 유착관계 방지 등에 입법취지가 있다”며 “이 사건에서 입법취지가 훼손되는 부분이 없고 오히려 환자와 산모를 배려한 담당직원의 과잉 친절에서 야기된 문제에 불과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료법 제18조는 의약분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함과 동시에 환자의 약국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며 “의사가 제3자에게 처방전을 발급하는 경우는 처방전이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처방전에는 개인 성명 및 주민등록번호 뿐 아니라 질병분류 기호, 의약품 명칭 등 민감정보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돼 제3자에게 함부로 전달되지 않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처방전이 결과적으로 환자를 위해 사용됐다고 하더라도 의료법 제18조를 위반한 행위는 적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면허정지 15일은 단기간에 불과해 보호해야 할 공익보다 크다고 볼 수 없어 적법하다”고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