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응급실, 참 좋은 직장" 말했던 환자
조민애 와이산부인과 전문의(한국여자의사회 ‘청의예찬’ 대상 수상자)
2023.05.08 05:40 댓글쓰기

“너 의사면 돈 잘 벌어서 좋겠네.”


고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맥주잔을 집어들며 무신경하게 말했다. 그 당시 나는 겨우 20대 초반 의예과생이었으니 의사도 아니었고 돈을 벌 시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넉살이 좋거나 말주변이 있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동창이 대뜸 꺼낸 불편한 주제에 당황한 나는 어색하게 마치 변명하듯 말했다. 


“글쎄, 나는 아직 의대생이야. 의사도 아니고···”, 


하지만 돌아온 답은 “그거나 그거나. 나도 의대나 갈걸” 이었다. 


나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틈을 봐서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때쯤이었다. 나는 의사와 예비의사들이 사람들에게 미움받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의사 집단이 상당히 폐쇄적인 것은 맞는 것 같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 시선이 지나치게 가혹한 것 같았다. 잘난척 한다는 둥, 돈만 밝힌다는 둥. 


"세간 편견보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은 직종이 의사인데 안타까움"


막상 내가 경험한 주변 의대생이나 의사들은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사람이 훨씬 많아 보였기에 세간의 편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의대를 졸업할 즈음에는 그런 막연한 장벽 때문에 의료계 분야가 아닌 사람들과는 교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의사들은 ‘이기적인 고소득 기득권층’이라는 날선 반응에 내가 의사가 되기 위해 쏟아부은 고된 노력은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 속상했다.


대학병원 인턴으로 진짜 의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극단적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악의 없는 이야기마저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그해 여름, 직장인 친구들이 ‘퇴근길이 너무 덥다’고 호소할 때 마저 나는 굳이 거기다 대고 신경질이 잔뜩 섞인 비아냥을 던졌다. 


“매일 퇴근도 하다니 팔자도 좋구나. 나는 일주일에 하루만 쉬는 날이 있는걸···. 너희도 나처럼 퇴근을 못하면 바깥 날씨가 더운지 시원한지도 모를거야.”


그렇게 갈길 잃은 피해의식은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내가 인턴으로 근무하던 응급실은 공단 근처에 있었다. 자연히 현장 노동자들이 부상으로 오는 일이 잦았다. 그날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손을 다쳐서 왔다. 사실 다쳤다는 것은 너무 얌전한 표현이다. 


남자의 한쪽 손은 온통 피칠갑에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응급실엔 하루종일 다친 사람들이 오지만 상당히 심하게 다친 사람이었다. 응급실 근무가 처음이었다면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계절은 이미 늦여름이었고 인턴이 된 지 불과 수개월 만에 나는 피떡이 된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지던 차였다. 초진 기록을 하러 차트를 들고 가서 말을 건넸다. 


“환자분, 여기 손을 어떻게 다치신 거예요?”


남자는 성의있게 자세히 설명했지만 나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작업용 장치 이름이나 작동 원리를 건성으로 대강 넘겨듣고 차트에 간단히 휘갈겼다. ‘기계에 손 낌’. 


일단 상처부위를 깨끗이 하기 위해 식염수를 넓은 대야에 준비했다. 나는 식염수 병뚜껑을 따며 졸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그 환자의 손을 반쯤 갈아버린 무심한 기계만큼이나 나는 무신경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참 좋은 직장서 일하시네요.”


처치실 의자에 기대 앉은 환자가 나에게 대뜸 말했다. 진료와 상관이 없는 대화이긴 했지만 환자는 충분히 정중했기에 친절하게 응대해도 됐을 법 한데, 밤새 당직 근무에 시달리며 있는 대로 날카로워진 나는 그 한마디에도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저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려나, 경계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식염수를 콸콸 붓는 일만 반복하고 있었다.


좋은 직장이란 게 무슨 뜻이지? 설마 지금 내가 허연 가운을 입고 젠 체하는, 돈 많이 버는 의사라 부럽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어휴, 상상만 해도 천번만번 사양하고 싶은 피곤한 대화다. 


대학병원 응급실은 당시 나의 기준에서 좋은 직장에 한참 못 미쳤다. 잠은 커녕 엉덩이를 언제 마지막으로 붙여봤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인턴 월급은 최저 시급에도 한참 미치지 않았고 나는 이곳의 최하위 계급으로 노비처럼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이었다. 


"의사는 환자 통해 배운다. 어려운 상황 환자들 보고 접하면서 상대 이해하는 마음 생겨"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뭐가 좋겠다는 거야. 왈칵 신경질이 치밀어 오른 나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는 혼자서 술술 말을 이었다. 


“여기 응급실 말입니다, 에어컨이 잘 나오잖아요. 지금 밖에 무진장 덥거든요.”


나는 순간 놀라서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봤다. 나의 모든 예상은 와장창 빗나갔다. 이 환자,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건가?


“이렇게 시원한 직장이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오늘 날이 굉장히 더운데 작업장 냉방이 엉망인 바람에 지금 우리 팀은요 엄청 고생 중입니다.”


그는 나의 하얀 가운이나 학벌, 연봉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로소 눈을 마주쳐 바라본 환자는 약간의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아이고 에어컨 바람 쐬니까 이제 좀 살겠네요.”


그는 반쯤 말라붙은 이마의 땀을 너덜너덜하지 않은 쪽 손의 소매로 쓱 훔쳤다. 당장 죽겠다고 비명을 질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크게 다친 남자는 오히려 살 것 같다며 만족하고 있었다. 


더운 날씨 탓에 자기 동료들이 고생한다며 타인을 걱정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조카뻘 되는 사회 초년생이 자신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흔히들 의사는 환자를 통해 배운다고 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쌓는 경험과 지식 가치를 일컫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그 환자가 나에게 보여준 것은 조금 결이 다른 것이었다.


질병 경과가 아니고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였다. 불필요한 피해의식이나 편견을 갖고 마음의 벽을 쌓는 대신 진정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가짐이었다.


내가 고생스러우니 너도 당해보라는 심보가 아니고 나의 어려움을 당신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넓은 마음가짐이었다. 판이하게 다른 직종이나 연령대, 성별에도 편견을 갖지 않는 태도였다. 


나의 졸렬함은 그에 비하면 한없이 부끄러웠다. 스스로 입장만 강조하고 반대로 타인 고충은 이해하려고 애써보지 않았다. 


몇 년 전 의사 파업에서도 드러나듯 의사와 시민사회 간에는 여전히 갈등이 만연하다. 각각의 집단이 좀처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대립각을 세워오고 있다. 환자와 의사 관계로 따지자면 ‘라뽀’가 손상된 상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본다면 세상 사람들은 공통점이 더 많다. 깊은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호 간 노력이, 갈등보다 깊은 이해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관련기사
댓글 19
답변 글쓰기
0 / 2000
  • 거참 05.10 18:25
    밑의 글 쓰신 aa님

    의료계 종사하시는 분이 문해력은 떨어지시네요

    인턴 때 생활을 회상하시는 글이잖아요

    타산지석으로 가르침을 주시네요
  • 답답 11.24 20:24
    aa님 문해력이 떨어지신 것 맞습니다.  아니면 색안경쓰고 보고 계신 건지도요.

    보통 색안경을 쓰고 보면 문해력이 떨어집니다.

    윗 글의 의도를 그토록 곡해하시다니...........



    그리고 아가야 라는 말씀은 너무 예의가 없으시네요.
  • aa 05.15 12:19
    저렇게 썼다고 인턴을 '현재'로 인식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과거 일을 일반시제로 표현하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대화할 때도 그렇게 많이 얘기하죠.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인턴 일이 빡세고 박봉이라 너무 힘들'었'다고?" 라고 해야만 과거로 해석되신다면 본인 이해력를 탓하시고 책 좀 읽으세요.

    그리고 제 글의 핵심은 인턴에 대한게 아닙니다. 원글자의 핵심도 인턴이 아니고요. 핵심도 아닌 지엽적인 내용에 대해서 그것도 심지어 본인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저한테 비꼬고 계신데, 비꼬는 것도 제대로 비꼬셔야 깨갱할텐데 전혀 타격감 없습니다.

    요즘 수준 안되는 사람들이 사회비판하고 정책비판하고 사람들 욕하고 마녀사냥하고 유튜브질하는 행태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는데 여기 한 분 계셨네요.
  • aa 05.10 09:48
    아가야 인턴은 의사가 아니잖니. 전문의는 돼야 최소한 의사라고 할 수 있다는 건 너도 동의하지 않니? 그나마 전공의 과정도 선진국에 비하면 엄청 미흡한 거 다 안단다. 인턴 일이 빡세고 박봉이라 너무 힘들다고? 맞아 특히 응급실 인턴이 힘들긴 하지. 하지만 세상에는 힘든 일 묵묵히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단다. 그게 자기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야. 그래도 인턴은 과가 바뀌고, 응급의학과 전공의라 해도 4년만 지나면 지옥이 끝난다는 걸 알지만 힘든 하루를 기약없이 반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단다. "이곳의 최하위 계급, 노비"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걸 보니 평소에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구나. 당시 니가 생각한 좋은 직장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의 직장이겠다. 직업의 종류를 떠나서 말이야.

    세상 사람들은 공통점이 많다고 했지? 너의 맥락에 미루어보면 인간의 보편의식에 내재된 중도가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너도 글에 썼듯이 의사 집단이 폐쇄적이지? 의사집단이 그 중도를 벗어난 거야. 그리고 그건 일반인이 몰아붙인게 아니라 스스로 만든거지. 이기적인 고소득 기득권의 성. 아직도 열심히 사는 의사가 많다고 말하고 싶니? 맞아. 열심히 사는 의사도 있지. 고소득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의사 말고, 공공재로서의 의료 본질에 충실하게 임하는 의사가 몇이나 되니? 아주 당당하게 '의료가 왜 공공재입니까' 라는 의사도 코 앞에서 직접 보았단다. 건강한 정신과 마음으로 열심히 사는 의사도 있지만 그 비율이 다른 직종에 비해 높을까? 말그대로 '편견보다 많다'지 객관적으로 많은건 아니잖니. 아직도 이기적인 고소득 기득권층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가 안된다면 20년만 더 의료계에 남아 있어 보렴. 개인병원보다는 대형 의료 시스템에 몸담고 있으면 더 분명하게 느껴질거야. 20년 전에 비해 주변의 사람들이 그 '이기적인 고소득 기득권층'으로 많이 변해있다는 걸. 처음부터 그렇게 되려는 사람은 많지 않아. 하지만 삶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지. 20년 후에도 지금처럼 억울한 생각이 들고 의료인과 비의료인이 함께 잘 지내봅시다 라는 말이 당당하게 나온다면 그때는 정말 귀 쫑긋 세우고 경청하마.

    참고로 본인도 의료계통 종사자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댓글 다는 것은 아니니 그렇게 몰아갈 생각은 하지 말거라.
  • 05.10 02:52
    글에 대한 내용이 아니고 자신의 입장만 얘기하는 댓글들이 여기 많네요 좀 더 글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해요 의사가 환자를 통해 세상을 배우기도 한다는걸 이 글을 통해 처음 알았어요 이 글을 쓰신 의사선생님은 좋은 의사선생님 같아요 따스한 마음과 이해라는 자산을 나눠주신 환자분도 존경스러워요
  • ㅇㅇ 05.10 00:17
    참 아름다운 내용인데 마지막 몇 문장 때문에 글의 전체 내용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다.



    마지막 문장을 통해 결국 이 글쓴이가 하고 싶은 말은 의사가 파업을 하고 의사법 개정에 반대를 하는 것에 시민사회가 이해해 줘야 한다고 읽힌다.



    이번 의사법 개정의 핵심은 범법행위를 저지른 의사들이 면허를 박탈하는 법인데 여기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자신들이 현재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거나 혹은 할 예정이란 말인가.



    의사의 현재 처우가 고생스럽다면 그걸 개선하는 방안을 요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의예과생도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주고, 법으로 휴계시간과 휴일을 보장하여 침범할 수 잆도록 하며, 적절한 노동시간을 위해 의사 인원을 늘려 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범법행위를 저지른 위험한 의사를 시민사회가 이해해줘야 한다고 요구할게 아닌 것 같다.
  • 1234 05.09 22:53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치료 받으신 그분이 지금은 시원한 곳에서 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0097 05.09 21:2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오늘 저한테 필요한 글이였어요
  • 0509 05.09 21:02
    싱숭생숭 뭉클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냐옹애옹 05.09 20:45
    이열 끝까지 않읽으면 큰일날뻔한

    좋은이야기네요

    자고로 인간이란 동물은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교육 과 사회적 경험으로 배우는듯 합니다

    저또한 그리 마음이 넓어져야 할터인데

    현실은 옹졸하니 부끄럽네요 ㅎㅎ
  • 2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