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지난 2023년 시행된 가운데, 의료진이 수술 장면 촬영 가능 여부를 환자·보호자에게 ‘직접’ 설명토록 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간 의료기관이 안내문 부착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안내하느라 환자·보호자가 이를 모른 채 수술이 진행되는 일을 방지한다는 취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을 이달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했다.
개정안은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의 수술을 하는 경우, 의료기관장·의료인이 ‘수술 촬영이 가능하다’고 환자·보호자에게 사전에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장 의원은 “사전고지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 않아 환자·보호자가 촬영을 미리 요청해야 한다는 걸 알지 못해 촬영을 요청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현행법의 공백을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23년 10월 70대 환자의 허리디스크 수술 사망 사건, 같은 해 12월 8세 환자의 안과 수술 사망 사건 등이 있었다.
모두 환자·보호자가 미리 촬영을 신청하지 않아 촬영본이 없었다. 해당 의료기관들은 수술실 CCTV 촬영가능 사실에 대해 구두 또는 서면 고지 없이 안내문만 부착해놓고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수술실 CCTV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에 공감하며 이번 개정안에 찬성했다.
보건복지부는 “대리수술·성범죄 등 불법행위를 예방하고 의료분쟁 발생 시 적정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며 “환자가 몰라서 요청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법률로 고지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수 분, 수 초 단위로 생명 오가는데···현실과 맞지 않고 공포심 재생산”
수술실 CCTV 의무화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병원협회(병협) 입장에서 이번 개정안은 의료기관을 추가로 옥죄는 조치다.
의협은 “의료기관 내부에 수술장면 촬영 가능 사실을 안내문 등으로 이미 고지하고 있다”며 “더 광범위한 고지 의무를 규정하고 위반 시 처벌까지 하는 건 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고 우려했다.
또 “상태가 위독하거나 위험도가 높은 수술의 경우 수 분, 수 초 단위로 환자의 생명이 오간다”며 “환자·보호자에게 의료진이 직접 촬영가능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게 의료현장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병협은 “수술의사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이번 의무까지 강제한다면 의료계가 우려한 의료인과 환자 간 신뢰관계 훼손, 불필요한 분쟁 증가 등 부작용이 심화된다”며 “외과계 고난이도 의료영력 발전을 저해하고 전문의 수급 문제를 가중시킬 수 있다”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 역시 “의료진이 환자에게 수술 전 촬영요청을 권유하면 불필요한 공포심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다”며 반대를 표했다.
반면 환자단체는 찬성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CCTV 설치는 의무여도 촬영은 환자·보호자의 신청을 전제로 하고 사전고지 의무도 없다”며 “환자·보호자의 알 권리와 수술실 내부에서의 환자 안전·인권 보호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다른 법과의 충돌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응급환자 수술과 관련해 현행 응급의료법에서 정한 거부사유에 해당하면 환자의 요청이 있더라도 의료기관은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복지위 전문위원실은 “장종태 의원 개정안은 고지 의무 예외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문언적으로만 해석하면, 의료기관이 촬영거부 사유에 해당해도 ‘수술장면 촬영이 가능하다’고 알리고, 환자·보호자는 촬영을 요청하고, 의료기관이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