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유전상담, 제도적 지원 없으면 무용지물"
이정호 순천향대서울병원 교수
2025.04.29 12:09 댓글쓰기

희귀·유전질환의 진단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진단 이후 환자와 가족을 지원할 인력과 제도는 크게 부족하다. 특히 소아환자의 경우 진단 이후 치료와 관리를 위한 설명, 상담, 연계의 모든 책임이 진료 시간 안에 의사에게 집중되는 구조다.


"유전상담사제 도입·상담수가 인정 필요"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전상담사 제도’ 도입을 통해 상담 부담을 분담하고, 진단 이후의 의료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정호 순천향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최근 데일리메디와의 인터뷰에서 "5분, 10분 진료를 통해 복잡한 유전 상담을 하기는 어렵고, 더욱이 유전 상담이 매우 중요한데도 우리나라에는 관련 제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소아 희귀·유전질환을 조기 발견하는 체계가 비교적 잘 구축돼 있다. 순천향대서울병원이 지난 1985년 처음 선별검사를 도입한 이후 현재는 50여개 질환을 대상으로 대부분의 신생아가 검사를 받고 있다. 


다만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추가적인 유전자 검사와 상담으로 이어지는데, 이때부터 의료시스템의 구조적 공백이 드러난다.


이 교수는 "선별검사는 말 그대로 확진 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 소견이 나왔다고 바로 환자로 진단하는 것은 아니"라며 "재검사 및 추가 검사가 필요하고, 해당 분야 전문가 진료가 꼭 필요하다. 또한 대부분의 대사질환은 유전자 이상이 원인이기 때문에 가족상담도 필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가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상담을 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상담은 공감 능력을 비롯해 명확한 전달, 오해 없는 설명, 때로는 정서적 지지까지 요구되는 작업이지만, 이런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의사들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유전상담사, 해외는 30년 전 시작했지만 한국은 아직 제자리"


이 교수는 유전 상담이 제도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그는 "우리나라는 유전 상담수가가 없을 뿐 아니라 유전상담사라는 직업군도 의료법상 기준이 전혀 없다"며 "유전자 검사라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뒤에도 직군이나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아 제도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해외는 이보다 훨씬 앞서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대부분의 국가는 30~40년 전부터 유전상담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전상담사라는 직업군을 양성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학회 주도로 제도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대한의학유전학회가 유전상담사 제도를 운영 중으로, 현재까지 약 60여명이 자격 인증을 받았다. 관련 대학원 과정은 서울아산병원, 울산대병원, 이대병원, 아주대병원, 부산대병원 등 전국 주요 병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순천향대서울병원도 자체 역량 강화를 위해 간호인력을 유전상담사 교육 과정에 참여시키고 있다. 이 교수는 "우리 과에서도 간호인력이 대학원 과정을 통해 유전상담 교육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제도적 인정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봤다. 


그는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10분, 30분 상담을 하면 상담료가 인정되지만 소청과는 복잡한 희귀질환 환자를 30분 상담해도 진료비는 똑같다"며 "수가가 없다고 유전 상담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처럼 진료비가 적고 상담수가가 인정되지 않으면 많은 환자를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진료 시간이 짧은 구조에서 의사가 해석과 설명, 정서적 지원까지 모두 맡는 건 어렵다. 제도가 없으면 결국 환자가 설명받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 같은 상황에서 지금도 상담이 병원마다 진행된다. 해외처럼 수가도 인정 되고 유전 상담사라는 직업군도 인정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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