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채용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의정사태 여파로 구인난을 호소하던 중소병원들 목소리는 자취를 감춘 반면 귀하신 몸 대접을 받던 간호사들이 구직난을 호소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이 경영난 가중으로 1년 가까이 간호사 채용문을 걸어 잠그면서 종합병원과 중소병원으로 지원자가 몰리는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실제 수도권 소재 한 종합병원이 최근 신규 간호사 40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내자 800명 넘게 지원하며 2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또 서울 소재 공공병원에는 80명을 뽑는 자리에 1000명 가까이 지원하며 달라진 간호사 채용시장의 모습을 실감케 했다.
사실 의정사태 직전까지 중소병원들은 간호인력 수급이 최대 난제였다. 대부분의 병원들이 365일 상시 채용을 가동했지만 지원자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까웠다.
더욱이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호인력 수급이 수월하다는 인식이 강했던 수도권 중소병원들도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속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입 간호사까지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채용하는 병원들까지 생겼다. 고액 수수료를 감수하고라도 병원 운영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의정사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의정 갈등 여파로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이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하며 신규 채용을 포기하면서 간호사 채용 시장은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통상 상급종합병원들은 간호대학 졸업 예정자 등을 대상으로 1년 전부터 이듬해에 필요한 간호사를 채용해 왔다. 합격자들은 간호국시 통과 후 3월부터 의료현장에 투입되는 방식이었다.
합격 이후 의료현장에 배치되기까지 대기 발령 상태인 ‘웨이팅 간호사’들이 즐비했지만 이번 의료대란 사태 이후 각 대학병원들이 대기 간호사 발령을 무기한 연기했다.
40명 모집에 800명 지원…중소병원 ‘어리둥절’
구직난 심화로 내년 간호대 입학정원 ‘동결’
채용시장이 위축되면서 취업을 앞두고 있던 간호대학 예비 졸업생들의 시름도 커지는 모습이다.
보통 2월 간호사 국가시험 합격자 발표 이후 3~5월 사이에 신규 간호사 채용공고가 봇물을 이뤘지만 의정사태가 2년째로 접어들면서 취업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취업을 목전에 둔 간호학과 학생들은 의정사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곳곳에 원서를 접수하며 구직 활동에 나서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급종합병원에서 신규 간호사로 채용한 인력은 2901명에 그쳤다. 2023년(1만3211명), 전년도(8906명) 보다 70~80%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의정사태 이후 대부분 병원이 신규 채용을 포기했고, 여기에 더해 상급종병 구조전환 사업을 통해 일반병상이 3620개나 줄면서 재직 간호사들 마저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간호사 구직난이 심화되면서 매년 증원됐던 간호대학 입학정원에도 제동이 걸렸다.
간호대학 입학정원은 2021년 2만1443명, 2022년 2만2030명, 2023년 2만2860명, 2024년 2만3883명, 2025년 2만4883명 등 지속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정부는 의정갈등으로 인한 상급종합병원 신규 간호사 채용 감소 등을 고려해 2026년도 정원은 2만4883명으로 동결키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정갈등 이후 간호사 채용시장에 많은 변화 요인이 작용하면서 구직난이 심화되고 있다는 각계 의견을 감안해 내년도 간호대 입학정원을 동결키로 했다”고 말했다.
중소병원들 입장에서는 간호인력 가뭄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만 무턱대고 채용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의정사태 이후 증가한 진료량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고, 간호인력 대거 채용에 따른 인건비 증가도 부담이다.
한 중소병원 원장은 “간호사 채용공고에 너무 많은 지원자가 몰려 당혹스러웠다”며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많은 인력을 확보하고 싶지만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들이 PA 간호사를 늘리고 있지만 신규 채용이 아닌 기존 간호사에서 선발하다 보니 신규 간호사들의 상급종합병원 진입이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