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이 적재, 적소, 적시에 진료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의료개혁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정작 필수의료 분야에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기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필수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병원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보상을 강화한다는 게 정부 지향점이지만 엉성한 설계로 해당 병원들이 대상에 포함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앞서 보건복지부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포괄 2차 종합병원 육성과 필수기능 특화 역량 강화를 골자로 한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발표했다.
3년 간 2조3000억원을 투입해 필수의료 제공 등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고 건전한 의료전달체계를 확보해 나간다는 취지였다.
포괄 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은 24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되면서 상반기 중 참여기관을 선정하고, 하반기부터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지원금은 연간 7000억원 규모다.
문제는 필수특화 기능 강화 사업이다. 정부는 병원을 규모화, 포괄화하지 않더라도 필수진료에 특화된 역량을 갖추고, 24시간 진료 등을 수행하는 경우 지원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세부 분야로는 필수의료이면서 절대적 인프라가 부족한 화상, 소아, 분만, 수지접합 등이다. 하지만 당초 대상으로 지목됐던 뇌혈관 분야가 제외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뇌혈관 분야는 이미 ‘심뇌혈관질환 진료협력 네트워크 시범사업’이 시행되고 있는 만큼 중복지원은 불가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현재 전국에는 △에스포항병원 △명지성모병원 △대구굿모닝병원 △청주효성병원 등 4개 뇌혈관 전문병원이 운영 중이다.
이들 병원은 전문의를 중심으로 뇌혈관 질환 분야에 높은 전문성과 차별화된 진료를 제공하며, 촌각을 다투는 뇌혈관 질환 중증 응급환자들의 ‘골든타임’을 사수해 왔다.
특히 의정사태에서 뇌혈관 전문병원들 활약은 도드라졌다. 이들 병원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발생한 상급종합병원 의료공백을 든든하게 메우며 의료대란을 막아냈다.
최근 2년간 뇌혈관 전문병원 수술 통계에서도 그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다. 뇌혈관 전문병원 수술환자 수는 2023년 대비 2024년에 36.8%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에스포항병원은 2023년 688건에서 2024년 928건으로 34.9% 증가했고, 대구굿모닝병원은 682건에서 981건으로 43.8% 늘었다.
명지성모병원은 552건에서 774건으로 40.2% 증가했고, 청주 효성병원은 453건에서 567건으로 25.2% 순증했다.
의정 갈등 영향이 본격화된 2024년 4월 이후 통계에서는 36.8%보다 더 높은 43.3% 수술 및 시술 환자 증가율을 기록하며 더욱 높은 증가 폭을 보였다.
"지역뿐만 아니라 권역 내 환자까지 수용하며 지역 필수의료 중추적 역할 수행"
이들 병원은 의정사태에서 지역뿐만 아니라 권역 내 환자까지 수용하며 지역 필수의료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만큼 이번 2차 의료개혁을 통한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부가 ‘심뇌혈관질환 진료협력 네트워크 시범사업’ 참여를 이유로 필수특화 기능 강화 사업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크게 동요하고 있다.
지원금 규모만 놓고 보더라도 병원들은 허탈할 수 밖에 없다.
실제 네트워크 사업 지원금 규모는 연간 10억9000만원으로 권역센터는 최대 3억9400만원, 참여 응급의료기관은 최대 2억3100만원을 받는다.
더욱이 해당 지원금은 의료진에 직접 지급토록 하고 있어 병원 입장에서는 24시간 진료체계 가동에 수반되는 운영비 지원이 전무하다.
"필수특화 기능 강화 사업은 연간 1000억 지원금 예고, 역차별" 제기
반면 필수특화 기능 강화 사업의 경우 연간 1000억원의 지원금이 예고돼 있는 만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병원들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필수특화 기능 강화 사업이 아닌 포괄 2차 종합병원 육성 사업 참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 병원 대부분이 종합병원이기는 하지만 뇌혈관 중심으로 진료가 이뤄지다 보니 정부가 제시한 수술‧시술 종류 350개 이상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에스포항병원 김문철 대표병원장은 “극심한 혼란 속에서 지난 1년간 필수의료 뇌혈관 질환의 최전방에서 환자 생명을 지켰지만 이번 정책은 그 사명과 헌신을 짓밟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최고도 필수의료 영역인 뇌혈관 분야가 필수특화 기능 강화 사업에 제외된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명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화된 필수진료를 담당하는 2차병원 지원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며 “제도의 설계 미숙에 따른 고충을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