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치매' 용어를 변경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견 해소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보건복지부와 환자단체는 찬성하지만 환자를 치료하는 주체인 보건의료계는 혼선을 야기한다는 우려를 표명했고, 지자체도 실익이 적다는 입장을 내며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같은 취지 법안이 7차례나 나왔지만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된 가운데, 22대 국회에서는 2건의 법안이 현재 보건복지위원회 심사를 거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에 이어 올해 1월 더불어민주당은 치매 용어를 각각 '인지증', '인지저하증'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치매관리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공통적으로 부정적 의미를 가진 '어리석을 치(痴)'와 '어리석을 매(呆)' 용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환자들의 불필요한 고통을 덜고, 조기 진단과 치료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다.
해외에서는 2001년 대만 '실지증', 2004년 일본 '인지증', 2010년 홍콩 '뇌퇴화증', 2013년 미국 '주요신경인지장애' 등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번 개정안들을 두고 정부·환자단체와 전문가들은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치매 용어는 부정적 인식과 사회적 편견을 유발하므로 적정 용어로 변경해야 한다"며 찬성했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조기 진단과 적극 치료를 유도할 수 있다"며 동의했다.
"중증도 구분 모호해지거나 다른 질환명과 충돌할 수 있어"
그간 국회·정부 명칭 개정 시도가 있을 때마다 전문가 단체들은 신중한 입장을 표했다. 실제 대만, 일본, 홍콩, 미국 등 치매 명칭을 바꾼 해외 사례를 보면 정부가 주도한 일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학계가 개정을 주도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학용어로 쓰는 치매 대신 대체단어로 변경하면 중증도 구분이 모호해지는 등 환자 조기발견과 적극 치료에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용어 변경에 앞서 근거 중심, 의학적 평가가 선행돼야 하고, 의협을 비롯한 치매 질환 전문가 단체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치매학회는 "행정용어에 한해 용어를 변경하는 것은 동의한다"고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치매 한자어 구성을 보면 인지기능 저하, 다동배회, 편집망상, 요실금 등의 증상을 함축하고 있어 본질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인지증의 경우 치매관리 주요 문제인 BPSD(행동심리증상) 의미를 충분히 포함하지 못해 치매 외 인지장애와 구분이 어려워 다른 질환명과 충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용어를 바꾸면 관련 기관·시설 명칭, 질병분류표 진단명 변경 등은 필연적이다. 이에 지자체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시는 "그간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치매관리사업으로 치매 용어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점차 희석되고 있어 인식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충남 천안시는 "치매 용어 변경보다는 질병 자체에 대한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며 "치매 인식개선은 용어 변경보다 현장 서비스 질 제고, 치매정보 교육 등이 더 효과적인 점을 고려해 예산을 들여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제안하는 대체용어도 전문가 단체 간 다르다. 의협은 '신경인지장애' 또는 '뇌인지장애' 등을 대체 용어로 제시한 바 있다.
대한치매학회는 '인지증'이 일본에서 쓰이는 용어로 국민 정서상 거부감이 있다는 이유로 '인지병'을, 대한간호협회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인지저하증'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