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으로 체외순환사 업무를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인력) 간호사가 수행하게 되면서, 간호사 면허가 없는 의료기사·의공학 전공자 출신 체외순환사들이 사실상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보건복지부가 간호법 시행 이전까지 자격을 획득하고 병원에서 활동 중인 경우에는 비(非)간호사 체외순환사도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전문 분야로 육성해야 할 체외순환을 체계적인 교육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PA 간호사 업무로 분류하면서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 '간호법 제정에 따른 진료지원업무 제도화 방안 공청회'에서 진료지원업무 행위목록 고시(안)을 담은 진료지원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을 공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간호법에 따라 PA 간호사는 의사 일반적 지도와 위임에 근거해 전공의 등 의사가 수행해 온 45가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PA 간호사가 수행하게 되는 체외순환 행위에는 ▲인공심폐기 및 인공심폐보조장비 준비 및 운영 ▲체외순환 보조장비 운영 준비 및 관리 ▲체외순환 관련 기기 정비 및 부품 등 관리 ▲각종 장기이식 장기보존액 관류 및 체외순환 운영 등이 포함됐다.
특히, 시행규칙 시행일 전까지 체외순환사 자격을 획득하고 병원에서 활동 중인 비(非)간호사 체외순환사도 활동이 가능해지면서 기존 체외순환사들 활동에는 지장이 없게 됐다.
앞서 대한체외순환사협회는 "간호법 제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환자 곁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며 "정부도, 간호협회도 우리 목소리에 단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현실을 반영한 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이에 복지부가 기존 체외순환사 자격을 인정키로 하면서 논란을 수그러들었지만 체외순환이 PA 간호사 업무로 정해진 데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체외순환사들 "전문적이고 엄격한 인증 체계 존재, PA 짧은 교육만으로 수행 불가"
체외순환사는 심장수술 등에서 심폐기를 조작해 심장과 폐 기능을 일시적으로 대신하는 의료 전문인력이다. 심장이 멈춰 있는 동안 환자 생명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며 심장외과 수술의 필수인력으로 꼽힌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의료 선진국은 모두 체외순환사 제도를 갖추고 있다. 국가별로 일정한 교육을 받은 간호사나 의료기사를 대상으로 엄격한 선발 과정을 진행해 체외순환사 자격을 부여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내 '체외순환학교'를 통해 자체 육성하고 있으며, 1200시간 실습과 이론 교육 후 자격시험을 거쳐 전문성을 확보해 왔다.
또한, 기본적인 임상 경력 외에도 최소 150례 이상 실제 체외순환 운영 경험을 갖춰야 하며, 3년마다 지속적인 재교육과 함께 연평균 30례 이상 임상 경력을 유지해야만 자격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한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체외순환 업무를 단순 전담간호사 업무로 분류하면서 체계적인 공학 교육도, 흉부외과 전문 교육도 빠진 200시간 약식 교육만으로 대체하게 됐다.
이에 대한체외순환사협회는 "전문적이고 엄격한 인증 체계가 존재하는 업무를 일반 전담간호사에게 짧은 교육만으로 맡기는 것이 타당한 결정이냐"며 "환자 생명과 직결된 고도의 전문 업무를 임기응변식의 간략한 교육 과정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과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흉부외과학회는 "흉부외과 전문교육을 제외한 간호협회 교육은 전문 과정뿐 아니라 관련 단순 의공학 분야조차도 제도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며 "200시간 약식 교육이 유일한 의무 규정이다. 수십 년간 체외순환의 길을 개척하고 수행해 온 의료기사 인력은 간호법상 의료지원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인증된 체외순환 업무를 하는 간호인력 역시, 기사업무 금지 조항으로 인해 불법 논쟁과 법적 한계에 내몰려 체외순환사 명맥은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은 공청회에서 "간협이 보편 교육을 하고, 흉부외과에서 체외순환 진료지원 교육을 하고 공동으로 인증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었는데, 결론적으로 복지부가 인증하고 적극적인 보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증과 교육하려면 정당성이 필요한데 의사들이 간호학을 인증할 수 없고, 간호사도 의학을 인증·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복지부가 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