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외상센터 배경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화제를 모으며, 원작자인 이낙준 작가 역시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의료대란과 전공의 이탈 등으로 의학드라마 방영이 쉽지 않았던 시기,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병원 이야기를 세상에 내놨고, 재미 속에 담긴 의료현장 민낯은 시청자들 마음을 움직였다. 판타지히어로 드라마지만 설득력 있는 의료환경을 그려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비인후과 전문의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이비인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웹소설 작가를 병행하다가 현재 전업 작가,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의료현장과 의학정보를 알리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편집자주]
"군의관 시절 소설에 재미 느껴 전업 작가로 등단"
'중증외상센터'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며 TV 프로그램, 특강, 포럼 등에 참석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갑자기 불러주는 곳들이 많아 기쁘게,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만큼 의료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이지만, 처음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의외로 특별하지 않았다.
이 작가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다보니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고, 의대에 진학하게 됐다. 의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막연히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전까지 본 의사라고 해봐야 동네의원 선생님들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어릴 때 소아청소년과에서 본 단편적인 기억 뿐이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의대 진학 후 수련을 거치면서 적성에 잘 맞음을 깨달았다.
그는 "원래 재활의학과를 지망했었는데, 응급실 인턴 시절 생각보다 활동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수술도 할 수 있고 내과적인 치료도 할 수 있는 이비인후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군의관으로 복무하게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게 인생을 바꿔놨다.
이낙준 작가는 "원래도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고, 당장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이 계속 생겨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군의관 시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활용해 글을 써봤는데 재밌었고, 기대했던 것보다 재능이 있다는 생각에 꾸준히 집필을 이어갔다.
웹소설이 웹툰화도 되고 드라마 계약도 되다 보니 전업 작가로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인턴, 레지던트, 군의관 모두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지만 봉직의 시절에는 그런 느낌이 줄었다. 전문의 취득 후 잠깐의 외도는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전업을 택했다"고 말했다.
"병원 배경 소설, 삭감 부당함과 소외 당하는 진료과 등 널리 알리고 싶었다"
전업 작가가 된 이후에도 의료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였다. 그는 작품 속 배경으로 병원을 주로 택하는데,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의료환경을 잘 그려냈다는 평(評)을 받는다.
이 작가는 "시청자들이 의료진 노고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삭감의 부당함도 알리고 싶었고, 소외 당하는 진료과가 있다는 사실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원내 매출 순위에서 장례식장, 식당, 주차장이 1, 2, 3위를 차지 한다는 게 의료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병원 근무 당시 있었던 경험들도 꼼꼼히 기록해 작품에 녹여냈다.
인턴, 레지던트 시절 생활툰이 인기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언젠가 병원생활을 웹툰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에피소드를 외장하드에 아카이빙 했다.
이제 그때 저장했던 에피소드는 이미 다 소모한 지 오래지만 처음 작품 활동을 할 때는 크게 도움이 됐다.
의정갈등으로 의학 드라마 방영이 꺼려지던 시기, 중증외상센터 드라마가 방영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믿음도 한 몫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개인적 관계에서는 늘 감사를 받아왔고, 사회적 갈등과 별개로 사람들은 여전히 의사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 작가의 작품 중 처음으로 드라마화가 된 건 '중증외상센터'다.
"의정갈등 속 방송,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당시 의정 갈등으로 의학드라마 방영이 쉽지 않았는데, '중증외상센터' 방영 후 대중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고, 다른 의학드라마도 잇따라 공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가는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크다"고 털어놨다.
"이번 갈등을 통해 의사집단이 얼마나 사회에서 고립돼 있고, 소통에 미숙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에 능한 인사들을 영입하거나 최소한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중증외상센터'에 이어 그의 또 다른 작품 '포스트 펜데믹'이 드라마화를 확정했다.
'포스트 펜데믹'은 코로나19가 종식되고 WHO가 엔데믹 전환을 선언한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의 좀비물이 좀비 사태로 인해 세상이 멸망한 이후를 다룬다면 이 작품은 좀비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과정을 보다 중점적으로 다룬다.
2부에서는 물론 멸망한 세계를 다루긴 하지만, 이 작가 나름대로 좀 더 설득력 있는 좀비물을 써보려고 노력했다.
"유튜브에서 의료정책 언급, 부담 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이 작가는 웹소설 작가 외에도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도 운영하고 있다.
이비인후과, 정신건강의학과, 내과 전문의 3인으로 구성된 의학 상식들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로, 현재 구독자 137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닥터프렌즈' 역시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던 이 작가가 의사 친구들에게 제안하며 시작됐다.
그는 "솔직히 제 첫 소설은 빈말로도 잘썼다고 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을 다루는 파트에서는 많은 관심을 받는데 '아, 사람들이 생각보다 의학에 대한 니즈(Needs)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글이 아닌 영상으로 풀 수 있다면 '이건 꽤 먹힐 거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닥터프렌즈'를 통해 이 작가는 의학 정보뿐만 아니라 의료정책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다.
목소리를 내는 게 사실 부담이 되긴 하다. 저희 판단에는 그나마' 닥터프렌즈가' 대중에게 호감도 있는 의사들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자칫 이것이 무너질 경우 추후에 더 안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정책 방향성이나 결정 과정 등이 적어도 현장에 있는 의료진과는 대단히 유리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할 수 없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이 작가는 의료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생산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건강 보험료 감소가 가장 큰 당면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절대 지금과 같은 규모의 의료서비스는 제공할 수 없고, 제공받을 수 없다는 것을 국민 모두 알아야 하는데 이것에 대해 얘기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저출산에 의한 충격파를 대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해결책이 뚝 떨어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논의를 할 시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향후에도 콘텐츠를 통해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그는 "현재로서는 진료 복귀보다는 콘텐츠 제작에 더욱 힘을 쏟고 싶다. 소설도 더 쓰고 재밌는 영상도 만들고 다른 형태의 콘텐츠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끝으로 전공의 파업 이후 진로 고민이 깊어진 의대생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작가는 "배수의 진을 치고 아예 밖으로 나가기 보다 부업 개념으로 접근하다가 소위 말하는 각이 섰을 때 다른 길로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며 "열린 태도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