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떠난 젊은의사 "차기 정부에 바란다"
이한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前 대한전공의협의회 정책이사)
2025.06.02 05:33 댓글쓰기

[특별기고] 저는 지난해 전문의가 된 후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반진료와 방문진료를 병행하며, 요양원 계약의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통증과 미용의원이 성행하는 시대에 상대적으로 관심받지 못하는 영역을 선택한 것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대한 개인적 신념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개인 보람과 사명감으로 전문의 업무 가능할지 의문"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언제까지 개인 보람과 사명감만으로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체계적 지원도, 명확한 비전도 없는 상황에서 선배들은 어떻게 이 길을 걸어왔을까. 이런 의문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 젊은 의료진들이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실입니다.


의료대란이 시작된 지 벌써 1년 4개월입니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자리를 떠났지만 병원은 여전히 돌아갑니다.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정보 시스템과 근무체계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불가능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동시에 과로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 소식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변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한편으로, 정작 이런 희생이 왜 계속 반복돼야 하는지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근무환경이 정말 불가피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관습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며칠 뒤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됩니다. 2000명 의대정원 증원을 밀어붙이며 의료계와 정면충돌했던 전(全) 정권이 탄핵되고, 이제 새로운 정부가 이 문제를 떠안게 됐습니다. 


의료현장은 의사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구조


의료현장은 참 복잡합니다. 의사 혼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간호사, 약사, 의료기사, 행정직원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공급자-지불자-수혜자 간 복잡한 이해관계 및 질병군간 형평성, 시설의 위계, 의뢰와 회송 체계가 얽혀 있습니다.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제공되는 의료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건강행동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복잡한 구조이지만, 정책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해관계자의 입장과 기저의 욕망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공중보건의사 문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1개월 군사훈련기간을 복무기간에 산입해달라는 요구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지도 어언 7년이 지났습니다.


신규 공보의 지원자가 2009년 대비 75%나 줄어든 상황에서도 복무기간은 여전히 현역병 두 배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시다시피 공보의가 소멸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제시한 보건부 신설이나 의료정책 의사결정체계 혁신 같은 정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는 의사만을 위한 내용이 아닙니다. 모두의 욕망을 충실히 이해하면서 전체 시스템이 지속 가능토록 하자는 제안입니다.


저신뢰 사회에서 시장참여자들이 각자 스스로만 믿고 치열하게 살아온 덕에 여기까지 발전했지만 불신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실질보다 명목을, 기능보다 구성을 중시하는 공공부문에 대한 불신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하면 과연 공공에 해답이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의정갈등 후 많은 대화의 장(場) 마련, 그런데 진짜 대화가 가능할까


지난 1년여 간 정말 많은 협의체가 만들어졌습니다. 대부분 질문도 이미 정해져 있고 답변도 뻔히 예측되는 자리였죠. 심지어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전공의협의회 같은 당사자들 없이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를 포함해 많은 젊은 의료진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 회의적이 됐습니다. 조직 내에서 강한 의견을 내면 어떤 불이익이 따라오는지, 위계가 확고한 의료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비용이 얼마나 큰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각자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며 현실에 적응하는 쪽을 택하게 됐습니다. 다가오는 차기 정권은 과연 다를까요?


"이렇게 하겠다"는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진짜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요. 형식적 절차가 아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대화할 의지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차기 정권에서는 단기 성과 대신 지속가능 해법 모색되길 희망


정치적 전환기는 사실 기회이기도 합니다. 중장기적 계획 하에 정책이 점진적으로 집행돼 왔다면 아마 이를 기회로 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계획이 없었거나 상당히 부실했다는 것이 드러난 지금, 이 순간을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가능한 시점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의 시발점이 될는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요. 


모든 이해당사자의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일차의료와 지역의료, 필수의료는 모두 연결된 문제입니다.


특히 의료 근간을 흔드는 간호법이나 직역 단독법 같은 이슈가 터지면서 문제 해결보다는 갈등의 심화가 예상되는 지금, 어느 한 요소만을 건드려서는 난맥상이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청년세대 미래 포기를 보여주는 출산율 0.72명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젊은 청년 의사들이 필수-중증-응급의료의 공급 중단 선언을 멈출 수 있도록 제대로 지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습니다. 의대생이 강의실에 돌아오고, 전공의가 병동에서 제대로 배우고, 장기간 수련 받은 전문의가 본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점입니다.


더불어 모든 국민에게 모든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겠다는 따뜻하고 비현실적인 약속을 중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지속불가능한 현재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젊은 세대와 국민 모두를 위한 진정한 개혁을 시작할 것인지를 말이죠.


청년이 살아야 국가가 살 듯, 청년 의료인의 미래가 곧 국민 의료의 미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차기 정권에는 일방적 통보 대신 진정한 대화를, 단기적 성과 대신 지속가능한 해법을 기대합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