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한국 의료, 현장 목소리 청취·반영 절실"
서동준 기자
2025.06.19 14:42 댓글쓰기

[수첩] 6월 조기대선을 앞두고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역대 대통령들 영상이 자주 노출됐다. 취임 연설, 국민과의 대화, 토론회 등 시대를 대표하는 장면들이 짧은 클립으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은 건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김대중 당선인의 모습이었다. 외환위기로 국가 전체가 흔들리던 시기 김 당선인은 국민과 마주 앉아 생방송으로 대화를 나눴다.


질문은 사전 각본없이 현장에서 자유롭게 나온 가운데 한 시민이 "IMF로 나라가 어려운데, 대통령이 되면 월급을 삭감하거나 일부 반납하실 생각은 없냐"라고 물었다.


김 당선인은 살짝 웃으며 답했다.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으면 여기 안 나오는 건데…." 장내에 웃음이 퍼졌지만, 그 장면은 소통의 방식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리해고제 도입과 실업 대책, 외환위기 극복 같은 굵직한 현안 가운데서도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 질문을 직접 듣고 즉석에서 답했다는 점은 정치가 국민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경계 없이 이어진 대통령 당선인과 국민 간의 대화, 정제된 언어가 아닌 현장 언어로 오간 그날의 말들은 대통령이 '지시하는 사람'이기 전에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그런 정치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작금의 한국 의료는 유례없는 혼란 속에 있다. 병원에는 수련 중인 전공의가 없고, 의대 강의실엔 3개 학년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이 현실화됐다. 전국에서 8300명이 넘는 의대생이 유급됐으며 복귀한 전공의는 전체 정원의 5% 수준에 머물렀다. 


새 정부가 이 전장에 뛰어든 지금, 가장 시급한 개혁 과제는 법령이나 제도 설계가 아니라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전임 정부는 '의사 수 늘리기'라는 목표에 몰두한 나머지, 정책 대상자와의 소통을 외면했다.


정원 3058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학생과 교수, 병원 등 교육·수련의 주체들은 언론을 통해 사후적으로 상황을 전달받았다. 그 결과 교육과 진료는 흔들렸고, 제도의 실효성은 의심받았다.


실제 지난 5월 진행된 전공의 추가모집도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복귀율은 5.9%에 그쳤고, 수도권과 인기과에 편중된 반면 필수 진료과는 여전히 처참했다. 의료현장은 초과 근무로 버티고 있다.


의대 교육도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세 학년이 한 강의실에서 동시에 수업을 듣는 상황에서 교수들은 교육의 깊이를 유지하기 어렵고, 학생들은 형식적 출석 위주로 학기를 채우고 있다.


"이 상태로는 제대로 된 의사를 길러낼 수 없다"는 교수의 토로는 단순한 우려가 아닌 현장의 절박한 진단이다.


문제는 단순한 소통 부족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배제다. 학생과 교수, 병원은 모두 정책 형성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지 못했고, 복귀 이후에도 행정지침이 학사 운영을 주도했다.


교육부, 복지부, 대통령실 간에도 조율이 부족했고 이로 인해 정부 전반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듣는 정치'다. 전임 정부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지, 아니면 의료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식으로 바꿀지는 이제 새 정부 몫이다.


실질적 대화 창구를 여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공청회, 간담회, 협의체 등 제도적 장치는 차고도 넘친다. 문제는 활용 의지다. 작은 출발이지만 그 한 걸음이 의료 정상화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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