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간호법 통과 이후 진료지원인력(PA, Physician Assistant) 제도 법제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한동우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강남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가 PA 제도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며 "환자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한 "PA 법제화로 인해 전국 대학병원들은 전공의, 전문의가 줄고 'PA 중심 병원'으로 변화하면서 전공의 충원과 처우 개선 필요성은 점점 감소하고 전문의 채용도 갈수록 줄게 돼 장기적으로 의료 질(質)이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의학회는 13일 서울성모병원 플렌티컨벤션에서 열린 학술대회를 열고 '간호법 시행과 전공의 학습권'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오는 6월 21일부터 간호법이 시행됨에 따라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위임받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응급상황 발생 시 누가 책임지고 대응할 것인지 등 '규정 무(無)'
PA 간호사는 국가자격을 보유한 전문간호사와, 3년 이상 임상 경력을 보유하고 교육 이수 요건을 충족한 전담간호사를 말한다.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한 경력이 1년 이상인 자는 임상 경력이 3년 미만이라도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간호법으로 이들이 합법적으로 수행하게 되는 45개 업무는 ▲중증환자 검사를 위한 이송 모니터링 ▲비위관 및 배악관 삽입·교체·제거 ▲수술 부위 드레싱 ▲수술·시술 및 검사·치료 동의서·진단서 초안 작성 ▲수술 관련 침습적 지원·보조 ▲동맥혈 천자 ▲피부 봉합 ▲골수·복수 천자 ▲분만 과정 중 내진 ▲흉관 삽입 및 흉수천자 보조 ▲인공심폐기 및 인공심폐보조장비 준비 및 운영 등이 있다.
한 이사는 "복지부는 의료인력 부족을 해결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PA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교육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업무 범위도 모호하다. 진료 현장에서 많은 혼란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업무 범위가 45개에 달하는데 골수천자, 복수천자, 기관절개 등 고위험 술기들은 환자 상태에 따라 위험도가 커질 수 있어 상당히 우려된다. 실제로 숙력된 의료진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 이사는 "중증 환자를 이송하거나 모니터링하는 업무 역시 PA에게 위임하겠다고 하는데, 정부 방침에 대해 정의가 모호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누가 책임지고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복잡한 임상 현장에서의 업무를 PA 간호사에게 어떻게 교육을 시킨다는 것인지에 대한 것도 명확히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를 추진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PA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불분명…환자 안전 위협"
복지부는 앞서 지난달 21일 열린 공청회에서 PA 제도화에 대해 "방향성 정도만 결정하고 일단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이사는 "의료 행위는 10번 잘해도 한 번 잘못되면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구체화하기 어려우니 일단 먼저 해보라'는 식의 논리는 환자 안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직무유기와 같다"고 비판했다.
의료사고 책임소재에 대한 복지부 입장에도 우려를 드러냈다. 복지부는 "PA가 시행한 의료 행위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 소재를 건별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또, "자격이 부족한 간호사에게 진료지원 행위를 지시해 사고가 발생하면 의사 책임이 더 크고, 역량이 충분한 간호사에게 지시했는데 실수가 발생하면 간호사 책임이 더 크다"고 발표했다.
한 이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하위법령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에서 이러한 입장을 냈다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모호한 주장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PA가 사고를 내면 결국 일정 부분 의사가 책임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 떠안으려면 역량이 충분한 간호사인지 아닌지를 잘 파악해 업무를 위임해야 하는데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 이사는 복지부가 PA 교육을 간호협회나 산하 지부에서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대해 "의사의 업무를 간호사가 교육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환자 안전을 경시하는 것"이라고 일침했다.
전공의 수련 환경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전공의는 파트별로 로테이션을 돌며 다양한 수련을 받아야 하지만, PA는 고정된 교수진과 함께 일한다. 이로 인해 PA가 전공의보다 업무를 더 잘 파악하게 되고, 전공의가 오히려 PA의 눈치를 보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의료 미래를 책임질 전공의 교육 기회는 축소될 것"이라며 "앞으로 PA와 전공의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어떻게 전공의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이사는 PA 법제화로 인해 결국 전공의, 전문의가 줄고 'PA 중심 병원'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병원 입장에서는 PA 채용이 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전공의 충원과 처우 개선에 대한 필요성은 점점 감소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전문의 채용도 갈수록 줄게 될 것이고 결국은 PA 중심 병원으로의 전환돼 장기적으로 의료 질(質)이 전반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