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도입 등 마취 환경 불합리성 개선 필요”
구승우 교수(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2022.06.07 05:50 댓글쓰기

[기획 下]2021년 서울아산병원에서는 2만2000건의 암수술이 이뤄졌다. 국내 최다 수치다. 하루에만 70~80명의 암환자가 수술을 받았다. 이 정도 규모 수술 건수 기저에는 수많은 의료진의 노력과 협업, 희생이 자리한다. 어느 한사람 역할 빠짐없이 중요하다. 이들 중에도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영웅'이 있다. 바로 마취전문의다. 마취전문의는 보통 '환자를 만나지 않는 의사'다. 대부분의 큰 수술은 마취를 동반하지만, 시술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가 마주하는 시간은 극히 짧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환자 및 보호자들은 마취의사 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일선 의료현장에서 마취전문의 존재감은 사뭇 다르다. 마취는 환자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고난이도 의료행위로, 숙련된 전문인력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병원에서 큰 수술 일정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사안 중 하나가 마취의사 일정 또는 시간표다. 흔히 대학을 포함 대형병원에선 '마취통증의학과 학술대회 기간에는 수술 잡기가 힘들다'라는 농담 섞인 진담이 나올 정도로 이들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하다. 서울아산병원 마취과 의사들은 국내 최다 수술과 최고 수술을 뒷받침하며 수술 의사는 물론 환자와 보호자의 든든한 버팀목인 수술실 뒤 숨은 영웅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환자 생명 보존을 위해 분투하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병원 중에서 가장 많은 수술이 이뤄지는 기관이다. 특히 암수술 등 고난도 수술이 적잖다. 그만큼 마취팀은 24시간 분주하고 항상 긴장감이 팽배하다.   


일반적으로 대학병원에선 마취전문의와 전공의가 한 팀을 이뤄 여러 수술방을 관리한다. 병원에선 수술방을 ‘로젯(rosette)’이라고 부르는데, 서울아산병원은 4~5개 로젯을 엮어 소그룹 단위로 관리한다.


TV 의학드라마에서도 ‘로젯’이란 용어가 언급되곤 한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하얀거탑’의 대표 OST 제목이 ‘B-rosette’이다.


‘로젯’이란 명칭은 장미꽃 잎 모양으로 펼쳐진 수술방 구조에서 연유됐다. 중증질환에 대한 처치가 이뤄지는 대형병원의 ‘꽃’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맞아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난 구승우 교수(마취통증의학과)[사진]는 서울아산병원 수술방 중 ‘H-rosette’에서 이비인후과 수술을 전담하고 있다. 대학병원의 ‘꽃’인 수술방을 뒷받침하는 19년 차 전문의 구승우 교수의 하루는 늘 숨가쁘다. 


“수술 많은 서울아산병원 고된 일정, 의료진 소통으로 극복”

“안전한 수술환경 조성 위해 정확한 자문 제공토록 최선”


Q. 서울아산병원은 수술이 워낙 많아 수술일정 조율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마취과 의국의 업무계획은 이렇게 수립된다. 먼저 수술 며칠 전 타과 의뢰(consult)가 된 환자 상태를 파악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타과 의뢰'란 마취나 수술 시 위험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에 대해 수술과에서 마취과 담당교수에게 미리 의뢰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뢰를 받은 마취과 교수는 마취 전 필요한 추가검사나 사전 치료, 처치 등에 필요한 자문을 한다. 이러한 사전 준비를 마친 뒤, 수술 전날에는 수술과에서 전산상으로 올려놓은 다음날 수술 스케줄을 확인한다. 그리고 하루에 잡힌 수술 건수가 적절한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너무 많은 수술이 예정돼 있어 하루에 소화하기 벅차다고 판단되면 마지막에 올려놓은 수술은 '불가'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과거에는 이 과정에서 수술을 하는 진료과와 다툼이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공의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으로 제한되는 등 의료진이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법적으로 보장되면서 과도하게 수술 스케줄을 잡는 일은 없어졌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수술과와 마취과 간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다. 


Q. 마취 과정에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수술 당일에는 마취 시작 10~20분 전에 각 로젯 마취팀들이 모여 환자 상태를 리뷰한다. 첫 마취는 아침 8시에 시작된다. 마취 개시는 전문의나 전공의가 혼자하는 경우도 있고, 위험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의 경우에는 전공의는 물론 전문의가 함께 투입된다. 환자 전신상태를 파악해 부족한 부분은 추가검사나 치료를 통해 수술 전 상태를 개선할 수 있도록 수술과에 권고한다. 위험성이 있으나 개선 여지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를 인지하고 수술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약물이나 기구들을 미리 준비해 놓는다. 아울러 환자가 갖고 있는 위험도에 대해 수술과 의사는 물론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업무를 한다.


Q. 실제 마취가 이뤄지는 과정은

-마취 과정은 비행기 운행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비행기가 이륙과 착륙을 할 때 제일 위험하듯 마취 또한 시작과 깨우는 과정에서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때 주의를 요한다. 기본적으로 인공호흡을 위해 기관 삽관을 하며 수술 중 수액을 공급하기 위해 혈관에 라인을 삽입한다. 간단한 수술의 경우 마취 전에 미리 확보된 정맥혈관라인 하나로 모든 약물과 수액 투여가 가능하다. 반면 복잡하고 큰 수술의 경우 추가로 동맥라인과 중심정맥라인 등을 확보할 수도 있다. 전신마취는 이렇게 확보된 기관 삽관 튜브나 혈관을 통해 마취제, 수액, 기타 필요한 약물을 투여하면서 적절한 활력징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또한 마취 중에는 급성 출혈, 혈전, 약물 부작용 등의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환자 상태를 계속 감시한다.


Q. 마취 후 환자관리는 어떻게 이뤄지나

-수술이 별 문제없이 종료됐다면 마취와 근육 이완을 회복시켜 기관 삽관된 튜브를 제거하고 자발호흡이 적절한지 확인 후 수술장에서 회복실로 이동하게 된다. 회복실에서는 다시 자발호흡이나 혈압 여부 등을 확인한 후 완전히 회복됐다고 판단될 때 퇴원을 하거나 병실로 이동하게 된다. 마취 후 관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통증 관리다. 요즘은 자가통증 조절장치(PCA, patient controlled analgesia)가 발달돼 있어 환자 본인이 아플 때 버튼을 누르면 진통제가 투여되는 장치를 수술 후 사용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수술 후 자가통증 조절장치만 전담으로 관리하는 부서를 두고 이를 철저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마취행위는 준비부터 수술 후 관리까지 마취 의사의 치열한 노력이 수반된다. 일각에선 마취통증의학과가 ‘편한 전문과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뒤에서 누구보다 바삐 뛰는 이들이 바로 마취 의사다. 


구승우 교수는 이 같은 일상의 장단점을 묻는 질문에 “결혼할 때 ‘천생연분은 만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마취통증의학과를 선택한 게 나에게 천생연분이 되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취전문의를 선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군의관 신검 탈락 후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전문과목을 선택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서울아산 같은 수술이 많은 대형병원에서 마취의사 생활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여년 간 마취과에 몸담은 구 교수가 꼽은 마취의 장점은 무엇일까.


“마취의사 노력 묻히는 건 단점이지만 전의료 집중하는 건 장점”

“모든 진료과마다 고충 있는데 ‘다름’ 영역 존중 필요

수술 의사들이 믿고 조언 구하는 신뢰받는 마취의사 지향


Q. 마취의 업무 장점과 단점은

-단점은 주치의로서 환자를 직접 전담하는 게 아니라 수술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들과 공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노력이 묻힐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역으로 주치의가 아닌 게 장점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이러한 장점이 더 부각돼 예전에 비해 마취통증의학과 인기도 매우 높아졌다. 구체적인 장점을 말하자면 환자를 주치의로 대하면 병을 치료하는 부분 이외에 환자의 심리적이거나 개인적인 성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업무는 오히려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더 큰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마취통증의학과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다.

진로와 관련해서 얘기하자면 이러한 스트레스를 감안해도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 통증클리닉을 담당해서 환자를 직접 대면 치료할 수도 있다. 이처럼 환자와 대면하는 것, 혹은 대면하지 않는 의술을 모두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취통증학과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외에도 부수적인 부분이지만 환자를 대면하는 과에 비해 출근 복장도 좀 자유로운 편이다. 


그는 “마취의이기 때문에 다른과 전문의에 비해 업무상 고충이 더 많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마취의가 가진 업무상 특성은 장점과 단점이 아닌 ‘다름’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책적으로는 건의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환자안전을 위해 필요한 고언이라는 측면에서 말을 이어갔다.


Q. 국내 마취제도 개선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예전 ‘특진제도’처럼 마취전문의가 시행하는 마취에 대해서는 차별적 수가 책정이 필요하다. 현행 수가체계에서는 외과의사들이 마취간호사를 고용해 수술하면서 마취도 자기 이름으로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똑같은 마취료를 지불하고 있다. 바람직한 의료환경 조성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불합리는 개선돼야 한다. 현 상황에서 마취전문의가 마취할 때 마취수가를 올려주면 가장 좋겠지만 보험재정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차선으론 마취전문의 실명제 같은 것을 도입해 마취전문의가 마취를 시행하지 않는 경우는 마취료를 지금보다 적게 지급하거나, 지급을 하지 않고 그 재원으로 마취전문의가 마취를 시행하는 쪽으로 수가를 보전해 줄 수 있겠다.


인터뷰를 마치며 구 교수는 동료들과 마취전문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각각 한 마디를 남겼다. 의료현장 ‘뒷편’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에게는 격려를, 마취의 업무가 낯선 미래 마취의들에게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충고였다.


그는 먼저 동료 의사들을 향해서는 “행복은 편안함과 스트레스 없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편안함이 지속되면 권태라는 새로운 고통이 찾아오는데 이는 즐거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복이란 ‘자기가 좋아서 몰입할 수 있는 일’과 원만한 인간관계에 있다. 마취통증의학과는 행복을 찾고 지키는데 가장 좋은 조건을 제공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각자 자부심을 갖고 수술과 의사들이 믿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믿음직한 마취과 의사가 된다면 인생 행복의 반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계속해서 전공의들에게는 “전공의 과정은 배우는 과정이다. 배우는 동안은 편견을 버리고 무엇이든 따라서 열심히 해 보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대한 선택이 폭이 넓은 곳에서 최신지견을 접하고 많은 동료들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인 대학병원에 대한 선택을 한번쯤 더 고려해 보기를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의대생들에게는 "마취통증의학과를 선택하는 것도 훌륭한 결정이 될 수 있겠지만 어떠한 과를 선택하는 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기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면 된다. 무슨 과를 선택할 것인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말고 가서 잘하는데 에너지를 쓰는 게 현명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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