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감독받던 의료기사들 ‘반란’···업무영역 ‘갈등’
방사선사·안경사·물리치료사, 초음파·타각적 굴절검사·단독개원 ‘대립’
2018.08.03 11:45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백성주기자]의료분야 업무 영역을 두고 의사와 의료기사들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저수가와 함께 경기침체 장기화, 배출되는 전문인력 증가 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현행법에 따라 의사업무의 보조적 역할 및 지도 감독을 받아야 하는 의료기사들이 의사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맞서 진료권 침해와 국민 건강을 우려한 의사들의 거부감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그러자 일부 기사 단체에선 “밥그릇만 챙기려는 이기적인 의사들”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최근 의사들과 방사선사들의 갈등은 기존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는 방사선사들이 일상적으로 담당하던 업무가 급여화 과정에서 배제될 위기에 처하면서 표면화 됐다.

보건복지부의 초음파 보장성 강화 방침이 발단이다. 복지부는 초음파 검사를 급여화하고, 향후 문제점에 대해 모니터링 해나가겠다는 내용의 요양급여 고시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한 대한방사선사협회가 들고 일어났다. 고시에 초음파 진단검사의 급여는 의사가 시행할 경우로 국한시킨 게 화근이었다.

방사선사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했다. 협회는 “동일한 의료기술 행위에 대해 특정집단에만 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올해 하반기 하복부 초음파에 이어 2021년까지 단계적 으로 모든 초음파 검사에 대해 보험 적용이 확대될 계획이어서 방사선사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결국 대규모 집회까지 가졌다.

의료계는 이러한 방사선사들을 비판했다. 초음파 진단행위는 엄연한 의료행위로, 이를 의사가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방사선사 업무는 초음파기기 취급이지 진단이 아니”라며 “의사 행위를 보조하기 위함인데 ‘방사선사의 단독 초음파 진단행위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최종 복지부 고시에서 실시인력은 원칙적으로 의사가 하되, 의사가 방사선사와 동일 공간에서 방사선사의 촬영 영상을 동시에 보면서 실시간 지도와 진단을 하는 경우엔 인정키로 하는 수준에서 접점을 찾았다.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이 같은 내용의 상복부초음파 급여화를 시행 중이다. 아울러 향후 2년간 초음파 검사의 적정성을 의학계와 공동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보완대책을 마련해나갈 예정이다.

수년째 논란 안경사 단독법···쟁점은 ‘타각적 굴점검사’ 허용

의료기사 업무범위에 대한 개정과 ‘안경사 단독법’ 등에 관련된 사안은 몇 년 전부터 갈등과 논란이 지속돼 왔다.

지난 2014년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중 안경사 규정을 확대해 제정한 ‘안경사 단독법’이 입법 발의되면서 안과 의사들과 안경사들의 직역 간 마찰이 시작됐다.

‘안경사법’은 의료기사로 포괄 관리되고 있는 안경사 직능을 분리하고, 안경사가 ‘타각적 굴절검사’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타각적 굴절검사는 굴절 이상 뿐 아니라 백내장, 녹내장, 황반변성, 망막박리 등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질병을 포함해 다양한 안과 질환을 알아보는 방법이다.

특히 안경사들은 현행법이 의사 지시나 감독 없이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안경사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경사협회는 “안경사는 독립적으로 시력검사, 안경의 조제 및 판매, 콘택트렌즈 판매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의료기사법은 이러한 업무적 특성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타각적 굴절검사는 인체에 해가 없고, 객관적인 데이터 제공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안과의사회, 대한의사협회, 대한개원의협의회는 물론 대한병원협회에서까지 안경사 단독법 제정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의협은 또 “안경사법 제정으로 인해 의료법 및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을 기반으로 하는 의료체계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국민건강과 관련된 사항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 하다”면서 “안경사만 별도 법률로 관할하도록 할 경우 다른 의료기사나 이익단체들도 단독법을 만들겠다고 요구하는 등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리치료사협회 역시 물리치료사가 단독 개원(가칭 ‘물리 치료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며 관련법 개정을 지속적 으로 요구해 왔다.

현행법에서는 의사의 지도 아래 물리치료 행위를 수행토록 한다. 물리치료사들이 개인 물리치료 시설을 차리는 일은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물리치료사 양성 전문 교육기관이 있고, 국가 고시를 통한 물리치료사 면허증도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의사의 지도를 받게 하는 것은 악법이라는 주장이다.

의료기사단체 “모든 분야를 가지려고 하는 의사들” 비판

OECD 회원국 34개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영업권을 허용하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물리치료학과 대학교 교육연한은 최소 3년에서 최대 9년으로 OECD 회원국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 2006년 김선미 의원은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발의 했다. 개정안은 의료기사가 복지관이나 가정에서 ‘의사의 처방 또는 의뢰’로 물리치료 업무기 이뤄지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물리치료(운동치료, 도수치료, 전기치료, 스포츠 재활 등)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집중적인 비수술적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의사 처방 및 재진료까지 가지 않고 적정 진료비만 지출해 건강보험 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개원가 정형외과 및 재활의학과 병·의원과 의사 단체는 “특정 직군에 대한 단독법이 의료계 전체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는 ‘의료기사 제도’는 원칙적으로 의료인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 중 그 행위로 인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또는 공중 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적은 특정 부분에 관해 면허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물리치료사는 허용된 업무범위 내에서 의사 지도하에 제한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정책에 반영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醫 “국민생명 직결, 의료 근간 흔들어”

의료기사들의 단독법 제정시도에 대해 의료계에선 단순한 직역 갈등이 아니라 의료체계 근간을 흔들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라고 단정하고 있다.

계류 중인 개정안들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국민 건강을 해치고, 의료사고나 분쟁 발생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법은 의료인 뿐 아니라 의료기관 및 의료 행위를 규정하여 국민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특정 직능에 대해 단독법안을 신설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법의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 건강과 안녕을 도외시하고 직역별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으로 극심한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단독법 제정은 국민 건강보다는 직역 이익을 신경 쓰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의료기사 단체들은 해당 업무에선 오히려 의사들보다 전문적인 교육에 따른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방사선사협회, 안경사협회, 물리치료사협회 등은 “대다수 의료기사들은 각 대학에서 업무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갖추고 있다”면서 “현실상 직접 담당하기 어려운 분야까지 의사들의 영역으로 가지면서 내주지 않으려는게 문제”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논쟁의 핵심은 업무범위 확대 또는 축소” 라며 “각 직역간 협의나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해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의료계 한 인사는 “의료는 자유시장과 규제완화를 주창하는 자유시장경제주의적 관점에서만 바라봐선 안 된다. 국내 의료제도의 역사적 특성과 현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인사는 “의료법에서 굳이 의료인만이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할 수 있다는 제한을 둔 이유는 그만큼 생명을 다루는 일이 어렵고도 높은 윤리의식과 의무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특정 기술이 있다고 해서 법적인 규제나 철저한 관리감독 없이 환자의 신체를 다루도록 방치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련의 분쟁은 의사와 의료기사를 동반자 및 협업이 아닌 경쟁자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 한 인사는 “경기침체에 따른 의료기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팽배해졌다”며 “묵인하거나 허용됐던 업무가 영역 침해라는 예민한 상황으로 비화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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