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걸은 '괴짜 의과학자'
제1회 임성기연구자상대상 수상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인산 박사
2022.03.14 06:07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바둑으로 치면 암은 프로 9단, 우리는 아마 1단이다. 게임이 될까? 다행히 우리에겐 대신 싸워줄 기사가 있다. 바로 면역 시스템이다. 면역 시스템이 암과 잘 싸우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면역항암의 근본 개념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메디컬융합연구본부 김인산 박사(63)는 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는 면역항암치료(cancer immunotherapy) 대가다. 의사 출신인 국내 융합의학연구 분야 대표 학자로 제1회 임성기연구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 박사는 면역항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엑소좀으로 연구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평생 남들이 가지 않는 길만 골라 걸어 '괴짜'라고 불렸던 그를 만나 1세대 의과학자로서의 연구 여정에 대해 들어봤다.[편집자주]



'꼬리에 꼬리를 물다' 세포외 기질, 수용체, 잇미 시그널, 면역항암 등

김인산 박사가 괴짜처럼 보인 것은 남다른 행보 때문이다. 1984년 경북의대 졸업 당시 동기들 중 혼자 기초의학을 선택했고, 2014년에는 대학 교수 자리를 박차고 정부출연연구기관 KIST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들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150명 정도 되는 의대 졸업생 중 혼자 기초의학자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 교수직을 그만 두고 연구원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등.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했다."

Q. 연구 분야를 소개하면
처음에는 병의 기전을 밝히는 데 관심이 있었다. 병이 왜 생기는지 알면 치료를 할 수 있고, 나아가 약도 개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연구 분야는 군의관, 미국 유학을 마친 후 결정했다. 당시 분자생물학이 각광을 받았는데, 세포연구가 주류였다. 하지만 세포보다 세포를 지탱해주는 '세포외 기질'에 더 흥미를 느꼈다. 세포외 기질은 세포가 만드는 물질로, 세포와 조직 사이 공간을 채워줌으로써 세포를 보호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암 치료 연구 분야에서 주목 받았다.

Q. 세포외 기질이 항암 분야에서 왜 주목받았나
암세포는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일례로 몸 속에 있는 구조가 불명확한 주변 조직을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로 삼는다. 따라서 주변 환경을 조절하지 않으면 암을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종양미세환경(tumor micro environment)'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암세포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환경조절이 연구 대상이 된 것이다. 면역항암 역시 암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숨어 있거나 변장을 한 암을 찾아내 대신 싸우도록 조정하는 치료다.  

Q. 연구 성과가 궁금
종양미세환경을 연구하던 중 암 세포와 세포 기질이 결합을 하는데, 이것을 매개하는 수용체가 세포에 있다는 것을 최초로 발견하게 됐다. 우리 몸에 있는 세포가 죽으면 거기서 염증을 유발하는 물질이 나온다. 염증이 생기지 못하도록 우리 몸은 어떤 세포가 죽을지 미리 알고 처리한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세포와 살아 있는 세포는 어떻게 구별할까. 알고 보니 죽어가는 세포가 친절하게 'eat me signal(날 먹어라)'을 보내고 있었다. 세포막에 있는 인지질은 원래 안에 있는데, 죽어가는 세포는 뒤집어서 밖으로 표출한다. 그것을 인식하는 수용체를 세계 최초로 내가 발견해냈다. BAI-1, TIM-4, Stabilin-2 등 세 가지 수용체에 대한 논문을 동시에 냈다. 이 논문들은 다른 논문에 많이 인용되며, 의미있는 연구로 평가받았다.

Q. 흥미롭다. 혹시 'Don't eat me' 시그널은 없는지
있다. 미국의 Irving Weissman 교수가 발견해냈다. 면역시스템은 피아를 구분해 자기를 보호하지만, 적이 몸에 들어오면 실수로 아군을 공격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공격하지 말라고 시그널을 보내는 단백질이 'CD47'이다. CD47이 있으면 탐색세포들이 잡아 먹지 않는다. 근데 암세포가 참 영리한 게 생존하기 위해 CD47을 정상세포보다 서너 배 더 자기 몸에서 발현시킨다. 이런 점에 착안해 그는 CD47을 막는 단일클론항체를 만들고, '포티세븐(47)'이란 회사도 차렸다. 이 회사는 길리어드사이언스에 5조원이 넘는 규모로 매각됐다. 

Q. CD47 관련 연구는 국내서도 관심이 높은데
저 역시 '돈잇미 시그널'을 막으면 항암치료에 쓰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CD47 블로킹을 위해 항체가 아닌 단백질을 이용하는 연구를 했다. CD47을 인식할 수 있는 원래의 단백질인 설피 알파(SIRP alpha)를 조각으로 분리해 거기에 페리틴(Ferritin)이란 단백질을 붙인다. 축구공처럼 생긴 페리틴 표면에 설피 알파 24개가 예쁘게 발현된다. 이 단백질이 돌아다니면서 CD47가 있으면 결합해 블로킹한다. CD47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 페리틴 기반 항암제는 랩지노맥스에 기술이전하는 성과도 냈다. 
 
Q. 연구 여정이 면역항암 치료제 개발 과정처럼 보인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 세포외 기질을 연구하며 세포와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보다가 BAI-1, TIM-4, Stabilin-2와 같은 수용체를 발견했다. 그 과정에서 eat me 시그널과 don't eat me 시그널도 알게 됐고, 이것이 면역항암에 적용할 수 있겠다고 여겨 KIST에서 연구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구가 이어졌다. 

바이오벤처로 시작된 인생 3막…CSO, 엑소좀 시장 개척 

올해 63세에 접어든 김인산 박사는 인생 3막을 열었다. 의대 교수, 출연연 연구원에 이어 벤처 창업에 도전한 것이다. 2020년 11월 이원용, 남기훈 박사와 함께 시프트바이오를 설립했다. 시프트바이오는 신약 개발에 올인하는 벤처들과는 다른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CSO(Contract Science Organization) 사업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면서 엑소좀을 활용한 신약을 개발한다. 

Q. 벤처 창업가에 도전했다
정년이 다가오면서 고민을 했다. 은퇴를 해서 편하게 지낼까 등등…. 하지만 좀더 연구를 하고 싶었다. 창업이 그 해결책이었다. 그런데 신약 개발을 하는 벤처들을 보면 투자금을 받아 모두 신약개발에 쓴다. 매출이 나올 수가 없는 구조다. 우리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CSO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리가 가진 플랫폼 테클놀로지나 연구 노하우를 활용해 제약사나 바이오벤처의 연구를 수행해주는 것이다. 연구설계부터 실험까지 가능하고, 컨설팅도 해준다. 이미 3개 회사와 계약을 맺고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Q. 신약 개발 분야도 궁금하다
엑소좀 분야를 연구한다. 신약 개발은 케미칼에서 단백질, 세포치료제로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백질과 세포 사이에 중간 단계는 없을까. 단백질보단 복잡하고 세포보단 단순한, 그것을 우리는 세포 내 소기관(organelle)라고 부른다. 엑소좀은 organelle에 속한다. 엑소좀은 완벽한 막 구조를 가진 소포로, 만들어지면 세포가 내뱉아 수확을 하면 된다. 세포로 하여금 엑소좀을 만들게 한 후 우리가 수확해 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Q. 벤처 창업이 늘지만, 성공하기 쉽지 않다
신약 개발이 쉽지 않다. 시간과 자본이 많이 들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한다. 투자자들도 출구전략을 원한다. 처음에는 신약 개발을 목표로 뛰어들었던 사람들이 나중에 돈 벌겠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모습을 본다. 물론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본질이 바뀌는 것은 문제다. 예컨대 신약을 개발하다가 잘 안 되면 과제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물질을 찾아야 하지만, 돈이 들어오면 잘 안 될 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간다. 한 단계 한 단계 억지로 넘어갈 수는 있으니까. 설사 마지막에 문제가 터지더라도 중간에 상장을 해 투자자들은 출구전략에 성공한다. 자본의 논리가 너무 강화되면 이런 왜곡된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연구하는 창업가도 있다. 인내해야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성공 스토리가 나올 수 있지만 쉽지 않다. 

Q. 상장 없이 성장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선 바이오벤처를 쭉 키워 상장해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방법을 조금 바꿔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임상 1, 2, 3상을 갈 때마다 그 회사 스스로 출구전략을 만들 필요가 있다. 임상에서 좋은 성과를 내 기술력을 인정 받으면, 대형 제약사들이 M&A를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 경우 투자도 유치할 수 있고, 개발 과제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 

Q. 대기업들이 바이오 시장에 뛰어들면서 M&A 수요가 많다
그렇다. 천랩의 경우 CJ가 인수해 'CJ바이오사이언스'로 사명을 바꾸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바이오벤처 성장 사례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1세대 의과학자, 의사 출신 연구자 성공 모델 필요"

의과학자 양성이 화두다. 하지만, 여전히 기초의학은 임상의학에 밀리고 있다. "좋은 의과학자를 배출하려면 성공적인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김인산 박사는 강조했다.

Q. 의과학자 육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은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초의학을 하면 상대적으로 임상의학을 하는 의사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기초의학을 해서 연구업적을 쌓고, 그것을 기반으로 신약 개발을 하는 회사도 차리며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성공 모델이 필요하다. 요즘 많은 의사들이 바이오벤처 창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노력하고 있으니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의과학자를 꿈꾸는 후배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 독서를 권한다. 시간을 내서 소설책, 철학책, 불경 등 다양한 인문학 책을 읽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이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어떻게 공감하는지, 인간은 탐욕스러우면서도 정의로운 복잡한 존재인지 이해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사물을 보는 통찰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과학도 이해하기 어렵다. 예컨대 불경의 '마하반야 바라밀'은 '큰 지혜를 통해 저 높은 깨달음의 언덕으로 간다'는 의미를 가졌다. 과학이 바로 그것이다. 연구를 해서 지혜를 얻어 통찰력을 가져야 비로소 시야가 넓어진다. 과학적 난제들은 이런 자유로운 사고와 통찰력이 결합할 때 비로소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연구자들이 늘어난다면 우리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