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웃음 간직한 채 잘 자라 주길…
건국대학교병원 이비인후-두경부외과 김창희 교수
2012.07.08 16:34 댓글쓰기

건국대학교병원 이비인후-두경부외과 김창희 교수

오늘은 민교가 MRI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들으러 오는 날이다. 민교는 몇 달 전 급성중이염으로 외래진료실을 찾은 환아다. 당시엔 중이염 외에 이렇다 할 합병증이 없어, 항생제와 소염제 등을 처방 받고 귀가했었다. 그런데 2-3일 후 심한 고열로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입원 후 다시 만난 민교는 염증이 있는 귀의 청력감소 뿐만 아니라, 심한 통증과 경미한 어지럼증까지 호소하고 있었다. 고막을 들여다보니 상황은 며칠 전 외래진료실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악화되어 있었다. 급성중이염의 합병증이 생긴 것 같았다.

 

보통 급성중이염이 생기면 반 이상에서 삼출성중이염(급성 염증 소견은 없이 중이강 내에 액체가 저류되어 있는 상태)으로 이행하지만, 항생제 치료 중에도 드물게 합병증이 생기기도 한다.

 

민교의 경우 중이의 염증이 유양동을 지나 두개 내로 진행된 상태였다. 뇌를 순환했던 혈액이 모이는 큰 정맥인 S상 정맥동이 유양돌기에 안쪽으로 진행하는데, 여기에 염증이 파급될 경우 혈전정맥염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두개 내 합병증이 발생할 경우 정맥동이 막혀 뇌의 부종이 생기는 등 심한 신경학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민교는 혈전이 S상 정맥동을 지나 경정맥까지 꽉채우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응급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민교의 상태에 대해 보호자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수술을 준비했다. 유양동삭개술을 시행하고 중이강을 매우고 있던 염증조직을 제거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인 민교는 아주 명랑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병의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이나 치료에 임하는 순응도를 보았을 때, 같은 초등학교 2학년인 필자의 아들과 같은 나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처음 외래진료실에서 보았을 때나, 수술장에 들어가기 직전에나, 수술이 끝나고 입원 치료를 받을 때나 항상 긍정적이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정맥동 내의 혈전은 수술적으로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 후에도 장기간항생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입원해 정맥항생제를 3주간 더 맞았고, 퇴원 후에도 한 달 이상 항생제를 복용했다. 다행히 고막소견은 수술 직후부터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정맥동내 혈전은 약물치료에 잘 반응하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민교가 정맥동혈전이 다 없어졌는지 확인하러 오는 날이다. 며칠 전  MRI 촬영을 하고, 사실 어제 그 결과를 확인했기 때문에 얼른 환자를 만나 설명해주고 싶다. 혈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쁜 소식보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 것이니까…

 

나를 찾아오는 모든 환자들의 병을 고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데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은 이 세상 모든 의사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모든 환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육체적, 정신적 도움을 주고 싶어도 나의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또는 주변의 여건들이 여의치 않거나, 때로는 사소한 오해에 의해 이런 바램들이 전달되지 않을 때는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같은 병명으로 진찰소견이나 검사소견이 비슷한 환자들이라도 어떤 환자는 합병증이 생겨 더 고생하고, 어떤 환자는 하루 만에 좋아지기도 한다. 발병 시기도 비슷하고 청력감소도 같으며 어지럼증도 없는 환자들에게 같은 약물과 수술적 방법으로 치료를 해도 어떤 환자는 말끔히 치유가 되고, 어떤 환자는 치료에 반응이 없거나 심지어 나빠지기까지 한다.

 

아직 환자를 대하고 병을 치료하한 경험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의학이 발달해 좋은 약이 나오고 환상적인 수술법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인사대천명' 이라고 했듯이 환자의 치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서야 비로소 소위 말하는 '운' 이라는 것을 바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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