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기자/수첩] 참 질긴 녀석이다. 섭씨 60도에서 1시간을 둬도 여전히 복제된다. 늦여름을 보내고 있는 남반구도 혼돈 상태임을 감안하면 막강한 생존력이다.
백신이든 치료제든 어느 하나는 있어야 하지만 둘 다 개발이 더디다. 세계적으로 140개 넘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 중이고, 11개는 임상시험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앞으로 상용화까지 최소 1년 이상이 걸린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특히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 속도 보다 바이러스 변이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 심히 우려스럽다.
그동안 4300종 넘는 돌연변이가 발견됐고, 그 중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270배 더 많이 증식하는 변종까지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자꾸 변종이 발생하면 효과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천신만고 끝에 치료제가 나와도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얘기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주말 의미심장한 주장이 제기됐다. ‘코로나19 종식을 포기해야 한다’는 다소 파격적인 제언이었다.
그것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신종 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판단이라 울림이 더욱 컸다. 해당 위원회는 코로나19 사태 직후 국가가 꾸린 감염병 전문기구다.
중앙임상위원회 오명돈 위원장(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코로나19는 메르스와 달리 단기간에 사태 종료가 어렵다”며 사실상 종식 불가를 선언했다.
때문에 코로나19 대응의 최종 목표가 방역을 통한 바이러스 박멸이 아닌 치료를 통한 인명피해 최소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감염자를 찾아내 확진시 접촉자를 파악하고 격리하는 작금의 패러다임에서 일상의 감염을 인정하고, 치료에 집중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코로나19를 독감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접촉자 추적과 격리를 근간으로 하는 현재의 방역으로는 코로나19의 완연한 격퇴가 불가함을 인정한 것이다.
사실 ‘코로나19 종식 불가론’은 이미 의학계에서 심심찮게 거론돼 왔다. 무면역, 무증상, 무백신 등 ‘3무(無)’만으로도 전문가들은 종식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기’, ‘독감 바이러스 추가’ 등 표현은 달랐지만 맥(脈)은 동일했다.
하지만 정부는 ‘종식 불가론’에 동조하지 않았다. 아니 동조할 수 없었다. 전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가 종식될 수 없다는 얘기를 섣불리 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에 접어들었고,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은 물론 거리두기에 동참했던 국민들도 지치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에 비상벨이 울리면서 정부 역시 근심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한 때 일상으로의 복귀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산발적 집단감염에 발목이 잡혔다.
정부로서는 ‘코로나19 종식 불가론’ 카드를 만지작 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그러나 그동안의 방역 프레임 속에서 정부 스스로 종식 불가를 선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주말 중앙임상위원회의 파격 선언을 같은 맥락에서 분석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화두는 던저졌다. 향후 전개될 정부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질 수 밖에 없다.
배경 탐구는 묻어두더라도 ‘종식 불가’ 선언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중차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질병에 백신이나 치료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800여개인데 세계보건기구(WHO)가 예방 효과를 인정한 백신은 25개 뿐이다.
인플루엔자 독감 백신도 개발 착수에서 탄생까지 반세기 넘게 걸렸다. 에이즈 퇴치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지만 아직 백신은 없다.
코로나19 치사율은 3% 미만으로 10% 안팎인 사스보다 한참 낮다. 치사율이 90%에 육박하는 에볼라와는 견주기 민망한 수준이다.
전체 인구 대비 감염률 역시 0.2% 안팎이다. 4~5%인 독감 보다도 훨씬 못미친다. 물론 고령자나 기저질환자에게는 위험한 질병이지만 이는 비단 코로나19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모르면 두렵고, 두려우면 낙인 찍는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감염’ 그 자체보다 ‘감염의 공포’가 우리를 옥죘다.
이제는 깔끔하게 인정해야 한다. 확진와 격리, 동선공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코로나19와 더불어 사는 삶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