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근빈 기자/수첩]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입장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철저하게 복지부가 그린 설계도를 옹호하는 논리만을 펼치고 있어 기관 본연의 역할에도 무게감이 실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4일 국정감사를 마친 양 기관은 국민건강권과 직결된 다양한 제도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주체다. 때문에 보다 객관적 지표와 근거를 제시해 올바른 방향으로 제도가 흘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바로 건보공단이 내놓은 1차 정례조사 결과인데 여기에는 경증질환자가 대형병원을 이용하면 비용을 더 내야한다는 국민들의 의견이 70%를 넘겼다.
앞서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 단기대책을 마련했다. 실질적으로 경증질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 패널티를 부과하는 게 관건이다.
문제는 갑작스런 단기대책 발표에 당황한 상급종합병원들은 복지부와 논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기로 했는데, 건보공단이 나서 경증질환자가 대형병원을 이용하면 더 큰 부담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설문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특히 설문조사 질문 자체가 ‘감기와 같은 경증질환으로 대학병원을 이용하는 사람이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 ‘감기와 같은 경증질환으로 대학병원이든 동네병원이든 동일한 비용을 부담하는 게 바람직하다’ 등으로 구성돼 원하는 답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건보공단 측은 “질병 경중에 관계없이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장성 강화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설문조사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심평원 행보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기관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정책동향을 통해 정책적으로 본인부담률을 조정하면 경증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약제비 차등제 분석 보고서다. 약제비 차등제는 지난 2011년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 일환으로 시행됐으며 52개 경증질환 환자가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외래진료를 받을 경우 약제비 본인부담률을 인상하는 정책이다.
그 결과 52개 경증질환으로 대형병원을 찾은 실환자수는 2011년 617만6000명에서 2017년 579만7000명으로 정책 시행 전 대비 6.1% 감소했다. 대형병원 내원일수도 1926만4000일에서 1621만8000일로 15.8% 줄었다.
의료이용 유형별로 구분했을 때 경증질환으로 대형병원만 이용한 환자는 전체 대형병원 경증질환 외래환자의 15.6%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환자는 하위종별 의료기관을 함께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평원 측은 “약제비 차등제 정책 효과는 대형병원 경증질환 외래 이용 감소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정책대상인 대형병원에서 처방된 약국 약제비 규모 측면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양 기관은 복지부가 꺼내든 의료전달체계 단기대책의 실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논리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근본적으로 의료전달체계 문제는 전반적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즉, 본인부담을 올려야 한다는 설문조사나 비슷한 계열의 정책 효과만으로 근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도하게 정부 정책 방향성을 옹호하기 위한 모습은 긍정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문재인케어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임에도 이를 끝까지 부인하는 양 기관의 모습에서부터 경증질환자-대형병원 패널티 구조의 근거를 생산하는 것은 복지부 산하 연구소 기능에 머문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정감사를 마친 현 시점 극명하게 드러난 상황이다. 실제로 양 기관이 주력하는 사업에 대한 얘기는 많이 나오지 않았고 문재인케어와 관련된 입장만 확인받은 형태로 끝났기 때문이다.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 제도로의 변화를 위해, 문케어 브레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써 올바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 보다는 또 다른 복지부의 소통창구로 활용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시급한 과제는 건강보험 재정낭비 요인을 줄이는 양 기관의 역할과 함께 면밀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 건강 데이터를 확보한 특수성을 갖고 있으므로 객관화된 정보와 이를 토대로 근거를 창출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