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승원기자. 수첩] 대한의사협회가 대정부 협상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의협이 제안한 진찰료 30% 인상과 처방료 부활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불가 방침을 밝히자 정부와의 모든 대화 창구를 닫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물리력을 동원한 대정부 투쟁으로 국면을 전환하는 데 있어 우리가 사전에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기 때문에 당위성과 명분은 이미 확보돼 있다”고 강조했다. 할 만큼 했다는 얘기다.
의협은 진찰료 30% 인상과 처방료 부활이 정부가 약속한 수가정상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하며 “적정수가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는데, 복지부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협 박종혁 대변인도 “정부가 신뢰를 보이지 않았다”며 협상 중단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을 보면 의협은 정부의 ‘신뢰’를 ‘진찰료 30% 인상안 수용’으로만 해석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박능후 복지부장관은 전문기자협의회와의 신년 간담회에서 “진찰료 인상 및 처방료 부활은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고, 약제비 등 추가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단순한 진찰료 인상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그보다 환자에게 필요한 교육‧상담 제공, 내실 있는 만성질환 관리 등 진찰의 실질적인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의원급 교육·상담 확대, 만성질환관리 제도 개선과 병행한 수가인상 논의가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이 말은 곧 정부는 의협의 진찰료 30% 인상안이라는 방법론에 대해 수용 불가 방침을 밝힌 것이지, 수가정상화라는 방향성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 9월 27일 최대집 의협회장과 복지부 권덕철 차관의 의정 대화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의협이 공개한 당시 합의안에는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을 의정 간 충분히 논의해 단계적 추진 ▲저수가 문제에 공감하고 상호 진정성을 바탕으로 적정수가 논의 ▲일차의료 기능 강화를 위해 교육상담·심층진찰 확대, 의뢰-회송 사업 활성화 등 의료계 의견 수렴 등이 포함돼 있다.
이중 의협은 적정수가와 관련한 두 번째 항목에서 정부가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정부는 세 번째 항목에서의 각종 사업이 적정수가에 대한 논의와 연관이 있다는 입장이다.
적정수가에 대한 해석이 갈릴 수는 있지만 의협이 “진찰료 30%를 인상해 주지 않는 것은 적정수가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무작정 정부를 비판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협상 중단은 의협에도 큰 손해다. 당장 故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을 계기로 구성된 안전진료 TF회의는 의협 없이 회의를 개최했다. 심사기준 개편 협의체는 물론 5월 수가협상도 불투명하게 됐다.
최대집 회장은 총력전을 선언하며 “정권에 치명상을 입히거나 의료계가 철저히 패배하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자신이 지난해 9월 투쟁에서 협상으로 전환하며 했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그는 “집단행동 최고 수위는 총파업인데 이 경우 의료계뿐만 아니라 국민과 정부 모두 피해자가 된다”며 협상으로의 전환 배경을 밝혔다.
투쟁가를 자처하며 13만 의사들의 수장에 당선된 최대집 회장이 어렵게 협상으로 전환한 명분은 정부의 진정성이었다. 그런 최 회장이 다시 투쟁으로 재전환하며 밝힌 명분은 정부와의 신뢰가 깨졌다는 것이다.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를 상대로 의료계 혼자 '협상'과 '투쟁'을 번복하는 모습은 내외부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입장 번복이 잦을 수록 명분에 힘이 실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대집 회장이 내세운 명분에 약발이 먹히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