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실리도 아쉬운 '규제샌드박스'
한해진 기자
2019.03.05 05:42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요즘 의료산업계를 살펴보면 마치 ‘규제 개선’이 유행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의료기기 분야 규제 혁신 필요성을 천명한 이후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거의 모든 관련 부처가 규제 개선안을 내놓고 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규제샌드박스'가 등장했다. 기존 규제와는 관련 없이 사업 허가 혹은 제품 임상시험 등을 일시적으로 가능하게 해 준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첫 대상으로는 손목시계형(웨어러블)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 서비스가 선택됐다. 의료계에서는 ‘원격진료의 전초가 될 것’이라며 우려했고, 시민단체는 의료민영화의 물꼬를 텄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웨어러블 심전도 장비가 앞으로 의료현장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이 같은 걱정은 다소 과장됐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서 심전도를 간단히 측정할 수 있는 장비가 주목받았던 것은 기존의 검사비용이 10만원 대로 매우 비쌌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1만 원 내외의 가격으로 심전도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웨어러블 장비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지만 부정맥 등 심장질환자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정기적인 심전도 확인은 꼭 필요한 기능이 아니다.
 
또한 웨어러블 장비로 심전도 측정시 정확도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국 예방서비스테스크포스(USPSTF)에서도 지난해 웨어러블 기기들의 정확도 평가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규제샌드박스가 웨어러블 장비를 선택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해외에서 자유롭게 활용되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우리나라에만 오면 임상시험 조차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심지어 선진국보다 먼저 개발한 국내 벤처기업의 장비들이 사업화 출구를 찾지 못해 방치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효과 검증 시험 차원이라고 해도 웨어러블 기기가 의료적 목적으로 환자에게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일보 전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히려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채택되지 못한 게 아쉽다. 웨어러블 장비뿐만 아니라 세계 혹은 국내 최초 타이틀을 가진 수 많은 제품들이 규제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어왔다.

차라리 규제샌드박스 위원회가 본격적인 원격진료 서비스 검증 시험을 일시적으로 허가했다면 어떨까. 기대 반 우려 반 속에서 적어도 원격진료의 유용성 여부를 입증할 기회는 얻었을 것이다.

규제샌드박스 1호는 명분도 실리도 아쉽다.
 
얼마 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선진국에서도 하고 있는 원격진료를 우리나라에서 못할 이유가 없다”며 “기술 문제보다 이해관계자 갈등 조정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규제 개선을 논의할 때 기술 효과성보다 찬반 여론을 중재하는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정부의 규제 개선 움직임이 때로 소극적으로 바뀌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규제 개선 흐름 자체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다. 규제 완화가 어렵다고 하지만 한 번 없앤 규제를 다시 되돌리는 것도 그만큼 어렵다.

실제 정부는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하던 인공지능(AI) 의료기기와 의료데이터 클라우드 저장 허가 등 많은 개선을 이뤄왔고 이제 원격 모니터링까지 가능한 환경을 구축했다.
 
때문에 의료계는 규제 개선 정책에 좀 더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한 기술이 아니면 허용될 수 없다고 배척해서는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술들의 효용성을 입증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기술 안전성과 유효성 입증의 중요성을 간과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아무런 대안과 대책 없이 '묻지마 반대'식으로 팔짱을 낀 채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처하지 않으면 광속화로 급변하는 미래를 맞이할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시장에서 외면될 수도 있는 위기가 현실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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