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감춰져 있던 위탁 공동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규제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위탁 생동 품목 수 제한과 품목 완전 폐지가 골자다.
부분적인 제한은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줄곧 요구해 온 원제조사 1개에 위탁제조사 3개 이내로 줄이는 ‘1+3’ 안이 전격 수용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단계적으로 도입한 뒤 업체들이 적응을 완료한 4년 후 전면 폐지한다는 ‘빅피처(Big picture)’를 발표했다.
위탁 공동 생동시험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은 이견이 없다. 제네릭 의약품이 난립하게 됐다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이를 방증한다.
김승희 의원실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직접실시 생동성시험 인정품목은 2002년 191건에서 2017년 110건으로 42% 감소한 데 비해 위탁 생동 품목은 2002년 40건에서 2017년 515건으로 1188% 증가했다.
이번 조치의 방아쇠가 된 발암물질 함유 발사르탄 사태 전인 2018년 상반기 위탁실시와 직접실시 생동인정품목 비율은 각각 87%, 13%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쯤되면 위탁 생동에 대한 규제 필요성은 인정된다. 하지만 발사르탄 사태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 같은 문제제기와 해결책이 맞는지 의문이다.
발사르탄 사태는 원료의약품이 제조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불순물이 발생했고, 이 과정을 현행 제도 내에서 제대로 모니터링 못했으며 이에 따라 수습도 어려웠다.
그렇다면 왜 모니터링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까. 식약처와 전문가들은 제네릭이 난립해 품질에 관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업체들이 제출하는 자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발사르탄 원료로 만든 제네릭 고혈압약은 500개가 넘는다. 반면 영국은 2개사 5개 품목, 미국 3개사 10개 품목 등으로 집계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품목 수가 적은 영국, 미국 등도 중국 제지앙 화하이가 해당 사실을 밝히기 전까지 이런 발암물질이 포함됐는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제네릭은 물론 오리지널 의약품 역시 어떤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아 사용했느냐에 따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는 구조다.
즉, 제네릭 의약품 난립은 발사르탄 사태의 발생 원인이라기보다 이 사안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생긴 애로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 오리지널이나 제네릭 모두 시한폭탄인데 제네릭만 대표로 뭇매를 맞는 모습이다.
이는 '위탁 공동 생동시험 무제한 허가→제네릭 난립→의약품 품질 관리 허술→발사르탄 사태 재발'이라는 기계적인 인과관계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사르탄 사태 발생 원인은 앞서 말했듯 '원료의약품 관리 부실'에서 빚어졌다. 원료의약품 관리 부실을 원인에 두면 이 사건의 해결책은 완전 달라진다.
제네릭 난립과 위탁 공동 생동시험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이런 미시적 접근법이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오히려 보다 거시적이면서도 의약품 관리 및 허가에 관한 총체적인 시스템 정비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보건당국이 의약품 전주기 관리 방안도 내놓았다. 여기에는 원료약 불순물 안전관리, 제네릭의약품 경쟁력 제고, 의약품 허가심사 규제합리화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이 정책이 기존 제도와 얼마나 큰 차이점이 있는지, 문제라고 타박한 부분만 뜯어고친 사후약방문식 대책은 아닌지 진중한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