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나무 아닌 숲 보는 계기 됐으면"
임수민 기자
2022.08.23 19:24 댓글쓰기

[수첩] 최근 필수의료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고조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에 없던 이목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시설과 인력 등 모든 면에서 국내 최대 규모이자 세계 최고 수준인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지만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타병원으로 전원 후 숨진 사고는 대한민국 필수의료 체계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해당 간호사는 당시 ‘뇌동맥류결찰술(Aneurysm clipping)’을 받았어야 하는데, 공교롭게 수술이 가능한 의사 2명 모두 자리를 비워 다른 병원으로 전원됐고, 불행하게도 숨을 거뒀다.


의료계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을 두고 의료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중증 환자 치료 시스템의 안타까운 실상이라고 평가했다.


대한신경외과학회 등은 "예견된 참사"라며 "필수의료 인프라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러한 참사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의학계에 따르면 국내서 뇌동맥류 개두술이 가능한 뇌혈관외과 의사는 약 150명이다. 전국 관련 수련병원이 88개인 점을 감안하면 한 병원에 2명씩 잡아도 부족한 수치다.


이마저도 젊은 연령층으로 내려갈수록 줄어드는 실정이다. 실제 신경외과 전공의와 전임의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 뇌혈관외과 세부전공 전임의 1년 차는 16명, 2년 차는 12명 뿐이다.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는 고된 업무와 의료사고 위험, 저수가 등 의료계의 여러 고질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이번 일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최근 대한의사협회 및 대한신경외과학회, 대한신경과학회, 대한응급의학회 등 관련 학회들과 간담회를 갖고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에서 지적해온 부분과 현장 의견을 수렴해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추후 다른 사례 발생시 신속 대응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프라가 붕괴되고 다양한 지원이 시급한 진료과는 신경외과 뿐만이 아니다. '필수의료'라는 단어와 더 가까운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등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율은 2019년 80%에서 2021년 34.4%, 2022년 27.5%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저출산에 코로나19까지 겹쳐 개원가 어려움이 커졌고, 저출산으로 인한 ‘전망이 없는 과’라는 인식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소아 응급환자들의 치료 사각지대가 전국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산부인과도 3년 연속 전공의 지원율이 75%에 못미쳐 대도시가 아니면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필수의료로 대변되는 일명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와 흉부외과 분야에서도 언제든 제2, 3의 서울아산병원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그동안에도 많은 반복적 주장이 제기됐지만 이번 젊은 간호사의 안타까운 사망사고가 단순한 신경외과 의사 정원 확대나 처우 개선에 그치지 않고, 이미 붕괴가 시작된 국내 필수의료 체계를 거시적으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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