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세상 떠난 두 노동자의 공통점
김현주 교수(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2019.08.24 06:35 댓글쓰기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듣는 순간 가슴에서 무거운 것이 툭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작년 연말에 대장암 환자가 불쑥 직업병 상담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가 예약만 잡고 돌아갔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노무사와 함께 찾아온 그 50대 남자는 반도체 및 LCD 제조공정에서 사용한 폐세정제를 재활용하기 위해 정제하는 작업을 했다.
 
그는 스무 명 남짓 일하는 작은 공장에서 15년 동안 일했다. 제출된 각종 서류들을 검토해보니 약 9년은 교대근무를 했고, 공휴일과 주말에도 일했다. 12년간 연차 유급휴가는 하루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정제 전후의 화학물질이 담긴 커다란 용기들과 이를 연결하는 배관이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 작업장에서 일했다. 정제한 폐세정제의 일부는 발암물질이 검출된 적이 있는 반도체 산업의 대표적인 유해 공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고인은 커다란 용기 안에 들어가 청소를 할 때 먼지가 심하고 냄새가 독해서 방독면 필터를 하루에도 여러 번 교체하며 작업했다고 한다. 긴 호스를 이용해서 화학물질을 드럼통에 담는 작업을 할 때는 유기화합물을 몸에 뒤집어쓰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배관과 용기를 잘 이어주기 위해 석면 가스켓을 사용했고, 낡은 배관의 보온재를 교체하는 작업도 했다.
 
반도체산업 종사 ‘사외협력업체’ 노동자들 비극
 
대장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석면, 벤젠 등에 노출될 수 있는 작업환경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장기간의 교대근무도 질병 발생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고, 휴무일 없이 일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근거로 밝혀진 것은 없다. 환자는 회사 측으로부터 물질안전보건자료도, 작업환경 측정 결과도 제공받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전문가 역학조사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두 번이나 했지만 거절당했다. 질병판정위원회는 그의 산재 신청을 불승인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간염을 앓은 것도 아니고 음주를 하는 것도 아닌데 서른 살에 간암으로 사망한 남자가 떠올랐다.
 
고인은 국내 굴지의 반도체 회사에서 사용한 부품을 세정해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업체에서 약 6년간 일했다.
 
그곳에서는 워낙 약품 냄새가 독해서 1년 이상 일하는 사람이 없었다. 고인만이 그 공정에서 수년간 묵묵히 열심히 일했다.
 
동료 노동자의 진술서에는 냄새가 너무나 고약해 방독면 필터를 하루에 열 번까지 갈아 끼우면서 작업했다고 적혀 있었다.
 
나중에 그 회사의 작업환경 측정 자료를 확인할 기회가 있었는데 상당한 고농도 간 독성 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결과가 나왔다.
 
고인이 사용했던 물질은 간암을 유발하는 물질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간암의 70~80%는 만성적인 간의 염증에 의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고인의 건강검진 결과에서 간기능 이상 소견이 지속적으로 나타났으며, 만성적인 독성 간염에 의해 발생한 간암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두 노동자의 암 사망에는 공통점이 있다. 반도체 산업의 협력업체인 중소 규모 영세사업장을 오래 다녔다. 무척이나 열심히 일했다. 
 
방독 마스크의 필터를 여러 번 교체해도 냄새를 피할 수 없는 화학물질에 노출되었다.
 
그들은 직업병 여부를 전문가에게 제대로 판단받을 기회가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산재보상보험법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석탄화력발전소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김용균씨 사망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었다. 
 
유해·위험 작업에 대해서는 도급 승인을 하도록 규정했다. 그렇게라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건만 현재 입법 예고된 하위 법령은 세상에 알려진 몇몇 사건에 관련된 작업만 도급 승인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이런 땜질식 처방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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