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원, 수익성 아닌 공익성 지향해야'
문정주 前 국립중앙의료원 공공의료센터장
2021.07.26 09:20 댓글쓰기
벌써 여러 해 전 신축공사가 한창이던 공공병원 관계자에게 ‘병원이 완성되면 중증질환 진료 수준을 높일 수 있게 입원진료와 응급의료에 주력하고 대신에 외래진료를 축소하면 어떨지’ 물었다.

그 후 몇 달에 걸쳐 이 질문에 대해 병원 안팎의 반응을 전해 들었는데 찬성도 반대도 있었다.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수익 비중 큰 외래진료 줄이면 경영에 직격탄” 
"외래진료 축소는 의료 접근성 보장 역행”
 
첫 번째 반대 이유에 따르면 의료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공공병원은 외래진료를 늘려야 한다.

‘병원이 마음만 먹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여전한 우리나라에서는 공공병원조차도 의료수익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전문과별 의사가 몇 명 되지 않는 현실에서 외래진료를 늘리면 그만큼 입원환자, 응급환자에게 기울일 시간이 적어진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높은 수준의 입원진료, 최선의 응급의료를 해주기 바라는 시민의 기대를 병원 스스로 거스르는, 자기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된다.
 
두 번째 반대 이유에 따르면 시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병원은 외래진료를 늘려야 한다. 신축 병원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큰 것을 생각할 때 이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공공병원에 부여된 책임, 즉 지역 의료 안전망을 튼튼히 해야 할 책임이다. 안전망은 혼자가 아닌 다수가 만들어야 하니 여러 의료기관 협력이 필수다.

공공병원이 시민의 접근성을 명분으로 ‘조금만 아픈’ 환자까지 도맡아 진료하면 경증질환 진료를 주로 하는 개원가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그럴 경우 협력관계는 물론 의료 안전망에 대한 공공병원 책임도 다하기 어렵다.
 
그 공공병원은 여러 해를 준비해 어렵사리 신축공사를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미처 준공도 하기 전에 의료 수익, 경쟁 관계 등 시장의 압박이 병원을 옥죄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는 시장에서 거래되며 수익 논리에 지배된다. 시장은 의료를 상품처럼 대하며 의료기관이 쌓는 수익과 의료적 성과를 동일시하고 공공성을 하찮게 여긴다.

의료시장에서 주도권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민간병원에 있고 극소수에 불과한 공공병원은 영향력이 미미하다.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를 천명하지만 실상은 적은 예산으로 어렵사리 정책 명맥을 이어나갈 뿐이다.
 
위축된 우리나라 공공의료에 기운을 불어넣고 발전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정답이 있을 리 없는 이 질문에 한 가지 답은 ‘상상력’이다.

이는 공공의료의 현재가 몹시 미약하기 때문이고, 그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과 대책이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상을 도와줄 재료, 다채로운 그림을 그리게 할 재료는 다른 나라의 의료제도다. 낯선 제도를 관찰하며 국가 간 차이를 짚어보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할 때 상상력이 자극된다.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

나라마다 제도의 원칙과 기준, 작동 원리, 시행 체계 등이 다르다. 특히 흥미로운 나라가 의료에 대한 시장의 영향력을 강하게 통제하는, 다시 말해 우리와 ‘전혀 다른’ 제도를 운영하는 곳이다.

바로 국영의료를 운용하는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다. 
 
그 중 이탈리아 국영의료에 관해 간단히 소개한다. 이탈리아는 건강이 인간의 기본권이라 보는 헌법에 기초해 1978년에 거대 양당인 기민당과 공산당이 손잡고 '국영의료법'을 통과시켰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통해 무상의료를 제공한다. 중앙정부는 제도의 틀만 관리하고, 20개 주가 운용의 중심이 된다. 권역별 보건의료본부가 공중보건사업, 일차의료, 병원 운영 등 사업 전반을 담당한다.

국가 의료체계가 ‘공공의료’인 셈이다. 이탈리아 국영의료의 핵심은 일차의료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가정의를 선택해 등록하고 가정의는 등록한 환자에게 질병 진단, 치료, 재활, 예방, 상담과 왕진을 무료로 제공한다.

일차의료를 확대하는 정책에 따라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사회복지사, 상담심리사 등 다양한 인력이 팀을 이뤄 참여한다.
 
공공병원이 이탈리아 전체 병상 중 80%를 공급한다. 그 중 가장 많은 유형이 권역 보건의료본부 직영 병원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에밀리아로마냐주에 있는 볼로냐 권역을 참고해보자. 이곳 본부는 9개 병원을 직영해 87만명 인구에게 입원, 수술, 분만, 응급의료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중앙에 있는 볼로냐시에 큰 병원과 암 전문병원, 그 밖의 다른 도시에 중간 규모의 병원, 나머지 농촌/산간 곳곳에 6개의 작은 병원이 있다. 본부의 병원 의료국에는 의사 1300여 명이 소속돼 직영병원 전체에서 진료한다.

의사들이 병원 간 칸막이 없이 내부망으로 연결되므로 어느 병원에서든 환자는 응급의료, 심혈관질환, 뇌졸중, 어린이 진료 등에 수준 높은 의료를 받을 수 있다.

직영병원 전체를 본부가 통합 조직으로 관리하므로 병원별 운영진이나 관리 체계가 없고 병원에 드는 모든 경비는 본부 예산에서 직접 지출된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탈리아에서 병원은 시민건강을 지키는 사회적 공동 기반이다. 이와 관련 특히 공공병원 관리에서 우리와 이탈리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공공병원이 개별 사업체로 관리되는 반면 이탈리아에서 공공병원은 권역 본부에 포함돼 통합 관리된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원에 대한 감독관청의 관심이 주로 병원 단위의 실적에 있는 반면 이탈리아는 ‘권역 또는 주 전체에서 병원의료가 얼마나 적절하고 수준 높게 공급되는지’에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유럽에서도 영국, 이탈리아를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했다. 유럽에서 대유행이 벌어진 게 공공의료 부실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유럽의 실패는 의료가 아닌 마스크 쓰기와 집합금지 등에 관해 시민을 설득하지 못했던 방역의 실패였다. 오히려 유럽에서 의료는 감염병 대유행의 재난을 수습하는 데 큰 힘을 보였다.

이탈리아 국영의료는 모든 의료시설을 비상 가동해 엄청난 숫자로 발생하는 환자를 치료했고, 모든 의료인이 소속이나 전문 과목에 구분 없이 비상 근무체제에 들어갔다.

백신접종 또한 가정의 등 일차의료 인력이 담당해 접종율을 빠르게 높였다. 재난의 시대에 요구되는 의료가 상업적 민영의료가 아닌 공공의료임을 유럽이 입증하고 있다.
 
전 세계가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 등 지구적 재난을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과 같은 위기가 앞으로 반복해 일어나리라는 것은 상식이 됐다.

이에 대응해 변화가 불가피하며 의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변화가 추구할 방향은 재난과 위기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공동 안전망, 공생과 공존을 위한 공공성 강화다. 같이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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