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시대 병원 공간 '뉴노멀'
이태상 간삼건축 병원설계팀 PM/상무
2022.02.24 12:00 댓글쓰기
[기고]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작년에 다시 읽게 된 시대의 기록 같은 이 소설은 지금과 많이 닮아있다. 
 
이야기는 발병-확산-봉쇄-대항-극복 순서로 담담히 전개된다. 위와 같이 인류 역사는 전염병뿐 아니라 전쟁, 기아, 경제적 위기 등의 커다란 사건들을 극복하면서 생존했고, 발전해왔다. 
 
그 때마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성과 예방에 대한 방법을 강구하곤 했다. 지금의 팬데믹이 현재진행형이어서 새로운 기준을 논의한다는 게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스나 메르스를 겪으면서 축적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쯤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해볼 수 있을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축가 입장에서 병원건축의 공간 변화를 예측해보는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그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메르스 이후 개정된 의료법과 의료기관 평가기준은 많은 전문가들의 관찰과 연구결과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병원을 계획할 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기준이 되는 숫자가 변경됐다는 점이다. 물론 새로운 음압병실에 대한 병상규모별 설치기준도 새로운 숙제로 주어졌다. 
 
병상 간격 변경과 4인실 이하로 제한된 병실은 설계시 불문율처럼 지켜왔던 기둥간 간격이나 면적배분에 대한 변경을 의미했다. 
 
원내 감염원의 추적을 통해 환자간 거리를 넓히고 밀도를 줄여야 감염을 줄 일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제시된 기준은 많은 유효성을 가짐에도 현재에서 입원시설에 한정했다는 것과 병의 확산정도와 지속기간에 따른 단계별 대응의 한계를 생각하며 지금의 펜데믹 이후에 예측 가능한 병원건축 변화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가장 우선되는 변화는 감염질환의 주기적 발생에 대응하기 위해 환자를 위한 여유 공간을 병원 내에서 신축이나 증축할 때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환자를 위해 제공되는 대기공간은 거리두기지침에 따라 원래 대비 인원의 절반 밖에 수용할 수 없다. 
 
일부 효율을 희생하더라도 안전한 공간이 돼야 한다. 외래환자의 기본적인 숫자를 줄이던지 공용공간에 대한 더 많은 할애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무턱대고 면적을 늘리는 자는 게 아니다. 
 
외래시간 조정을 통해 혼잡도를 분산하는 일차적인 조치를 취해 이 시기를 넘길 수는 있겠지만 신종 감염병 재출현이 우려되는 상황에 더 넓은 공간의 확보는 고정변수가 돼야 한다.
 
병원의 첫 관문인 로비는 새롭게 만들어진 프로세스에 따라 일련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 게 기본이 된지 오래다. 
 
감염병 유행단계에 따른 공간의 유연성을 내부공간의 한계 때문에 외부공간에서 찾는 것도 가능하다. 
 
내부공간은 상당한 건축비를 투자해야 하고 높이에 대한 한계, 복잡한 공조시스템 구축, 그리고 유연성 등을 감안하면 외부에 적정한 야드를 확보하는 방법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입원환자와 외래환자의 공간 분리다. 
 
국내 병원의 전형적 형태는 지하에 되도록 많은 주차장을 설치하고 지하 1~2층부터 수술부까지 적층되는 진료 및 검사공간이 복잡하게 얽힌 형태다. 
 
부지가 협소한 탓도 있지만 수직적 동선연결을 통해 효율성은 최고다. 하지만 환자 간의 교차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입원하고 있는 환자와 건강이 염려돼 내방한 어쩌면 건강할지도 모르는 일반환자의 면역력 차이가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코호트 격리까지 경험한 우리는 외래와 입원의 분리를 꾀할 시점이다. 리스크 관리의 목적뿐 아니라 의료서비스 질의 향상도 도모할 수 있다. 
 
병원 확장을 기획할 때 외래센터 별도 공간을 마련하고 기존의 외래 공간은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확장, 검사공간 확장을 통해 의료 서비스 고도화를 실현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밖의 것, 즉 건강, 완결함,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中

다음으로 예상되는 변화는 원내에 설치되는 편의시설 인식 전환이다. 병원의 대형화와 맞물려 카페, 편의점, 푸드코트 등 편의시설을 접근이 쉬운 곳에 배치하는 것은 이미 공식화됐다. 
 
하지만 감염병 확산 이후 일반적인 건축공간에서도 집객형 서비스를 위한 공간은 축소되고 있는 추세다. 
 
식음시설은 환자, 보호자, 의료진이 같이 이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추세를 거슬리지는 못할 것이다. 
 
안전을 위해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환자편의 공간을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감염관리 관점에서의 필수적인 편의시설 리스트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시점으로 언택트와 디지털 사회에 변화에 대응하는 병원건축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화상수업이나 재택근무와 함께한 새로운 세대 출현으로 그들이 경험한 편리함을 기반에 둔 효용성은 변화를 가속시키는 요소이며 신사업 전략으로 발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색했던 화상회의 툴은 현재에 너무 친근해졌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질 많은 이벤트가 줌의 화면 속에서 이루어지며 로블록스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마인크래프트에서 만든 자신의 집으로 친구를 초대한다. 신인류 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업무시설은 전통적인 사무실 공간이 상실된 대신 디지털혁신에 기반한 사물인터넷(IOT),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등 가상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다. 
 
도심의 커다란 빌딩 안의 밀집된 공간은 분산되고 소규모된 허브역할의 스마트오피스로 전환하고 있다. 
 
병원이라는 공간도 이러한 물결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디지털로 무장한 소비자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별진료소 등에서 의료진과 직접접촉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으며 접촉 없는 면회공간도 만들어 냈으며, 원격진료의 초기단계도 경험했다. 
 
전통적인 환자-의료진 관계를 넘어선 의료서비스에 따라 병원 공간도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병원이나 모처에 커다란 데이터센터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환자 접근성이 좋은 곳에 프라이빗한 진료공간을 분산하는 병원의 모습과 본격적인 원격의료 미래상으로 연결된다.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 한다. 연속된 감염병 출현으로 우리의 삶은 많이 변화했다. 
 
매머드하고 초밀접된 공간에서 최대의 효율을 찾고자 했던 한국의 병원건축 단면에 대해 고민해볼 시점이다. 
 
물론 안전하고 변수에 대응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사회적인 비용도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는 메르스의 교훈으로 만들어진 투자를 발판삼아 코로나 대응의 유효함을 경험했다. 
 
빌 게이츠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미사일이 아니라 미생물이라 했다. 그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과 환자를 위한 병원공간의 변화는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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