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곁불, 그 위험천만함
장성구(경희대학교 명예교수)
2022.08.08 06:35 댓글쓰기

[특별기고] 남자로 살면서 가장 불행한 경우를 묻는다면 백인백색의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거세된 남자로 사는 것 만큼 불행한 삶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감히 이런 상황은 상상도 못했기에 ‘남자의 삶 속에 불행’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예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거세된 남자가 무슨 남자냐’라고 항변한다면 할 말이 없다. 남자로 태어났으니 남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조물주가 인간의 성을 ‘男’과 ‘女’로 구분한 원칙으로도 남자가 옳다.


어쨌든 남자로서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거세된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본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지만 부모들의 자의적 결정에 의한 희생이다. 


다시 말해 대역죄를 지어 형벌로서 거세를 당하는 궁형(宮刑)과는 거세의 동기가 확실히 다르다.


과거 중국에서는 대역 죄인이 참수와 궁형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참수를 당하지 않고 궁형을 당하는 경우는 구차하게 살아남았다고 온갖 손가락질을 당했다. 


그러나 궁형을 받고도 이를 꿋꿋하게 버텨내면서 사기(史記)라는 엄청난 역사서를 저술한 사마천(司馬遷)이 궁형의 치욕적인 삶 속에서도 이 세상에 크게 이바지한 대표적 인물이다.


우리나라도 과거 여러 왕조에 걸쳐 수 많은 내시(內侍)라는 환관(宦官)들이 어린 시절 부모 결정에 따라 거세를 당해 원치 않은 삶을 살았다. 


부모들이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가난을 벗어나고, 면천(천민 신분에서 평민이 되는 것)의 기회를 삼고자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내시는 경우에 따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 시대 군왕이 혼미하면 할수록 내시는 마치 군왕과 같은 권력을 휘둘렀다. 


군왕이 갖는 권력의 곁불을 늘 쬔 덕분이다. 대부분의 관료들이 내시들 앞에 설설 기었고 상선이라는 내시 중 최고 직책에 있던 환관은 처첩을 거느리고 정승처럼 살았다. 


재미있는 것은 내시의 처첩마저 권력을 휘둘렀다는 점이다.


중국 진나라의 왕(휘 政)이 중국을 통일하고 최초로 황제가 됐다고 해서 스스로 부친 이름이 진시황(秦始皇)이다. 그러나 진시황이 49세로 급사하자 진나라는 3년 만에 멸망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조고(趙高)라는 환관이 진시황제 신임을 등에 업고 권력의 중심에서 나라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제라는 전대미문의 권력 곁불이 조고에게서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다. 진시황제 사망 사실까지 숨기고 후사를 마음대로 결정했다. 사실상 진나라 2대 황제 역할을 했다.


이렇게 역사 속에는 아주 여러 왕조에 걸쳐 환관들이 권력과 부(富)의 중심에서 나라를 농락했던 일이 잦았다.


환관들이 권세를 부리면 대개는 무지막지했다. 이들은 권력을 대물림 할 후손이 없기 때문에 본인의 이득만을 위한 무자비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나라의 훗날을 걱정할 이유도 없고, 할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왕의 남자 아닌 남자였다. 어떤 면에서는 거세된 남자가 되면서까지 부와 권력을 얻는 꿈을 이룬 것인지 모르겠다.


인류 역사 속에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거세남이 돼야 했던 슬픈 사연을 갖은 남성들이 또 있다. 바로 카스트라토(castrato)이다.


16~18세기 유럽에서는 교회에서 여성들이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그러나 여성의 음역을 가진 남성 가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소년들을 어린 시절에 거세해 변성되지 않도록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이들을 ‘카스트라토’라고 한다. 이들은 여성들 보다 호흡이 길고 풍부해 성역(聲域)이 넓은 게 특징이다.


어느 음악역사학자의 말에 의하면 요즘 오페라에서 남장을 한 여자가 부르는 역할은 과거에는 카스트라토가 노래 부른 역이라고 했다.


안토니오 비발디가 작곡한 오페라에서 주역들은 주로 카스트라토 가수들을 위해 쓴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카스트라토 가수들의 전성기를 1650~1800년대로 볼 수 있는데, 이 때 이들의 몸값은 작곡가보다도 비쌌다. 요즘의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나 팝가수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몇몇 카스트라토 가수들이 부와 명예를 거머쥔 것을 보고 가난한 집에서 남자 어린이들을 경쟁적으로 거세했는데, 1년에 4000여 명에 이른다고 전해졌다.


강제로 거세당한 이들은 7살 경부터 훈련을 시작한다. 작곡, 즉흥연주, 호흡조절 등을 10년 이상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남성이라 폐활량이 크고 거세 후 혹독한 훈련을 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35소절 이상도 숨을 쉬지 않고 여자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이 당시 상류층 취향이었던 숨 막히는 기교와 이를 다시 반복하는 아름다움 trill(떨리는 목소리)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최고의 카스트라토 성악가인 파리넬리는 F음까지 거뜬히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상류층이라는 권력을 이용한 거세남자들의 새로운 사회적 발돋움이다.


여성 가수를 거부한 교회의 무모한 권위적 사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고자 한 거세자들, 이러한 상황이 하나의 귀착점을 찾은 게 카스트라토였던 것이다.


거세한 남자 가수라는 카스트라토 또한 내시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곁불을 이용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향한 뜀박질이었던 것이다. 


성대와 정관을 절단당한 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반려동물은 이미 그때부터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필자가 군의관 스스로가 집에서 양쪽 고환을 제거했던 환자가 생각난다. 이 젊은 병사는 성적 충동 때문에 종교생활에 집중할 수 없어 그렇게 했다고 얘기했다. 


그의 행동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풀지 못했다. 


사람들의 권력지향적 움직임은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움직이듯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행동 같아 보인다. 


이제는 과거의 장소가 된 청와대는 수 십년 간 우리나라 권력의 심장부 역할을 했다.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이름은 바뀌었어도 글자 그대로 영욕이 함께 물들은 곳이다. 


누가 어떤 색깔의 그림을 그렸는지가 그대로 역사에 그림자 돼 남아 있는 곳이다.


최고 권력자는 그곳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는 수 년이 지나면 자기가 그곳을 떠나야 된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생활한 듯하다. 


이를 반증하듯 대통령이 물러나고 나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드러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청와대가 국민들 품속에 보금자리를 틀고 난 요즘 세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 중에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말이 세상의 중심어가 되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여러 명의 수석비서관이 있고 그 이외에 기억 못하는 무슨, 무슨 공무원들이 있는 곳이 청와대다. 행정관 역시 그런 많은 직책 중 하나다. 


지난 어떤 정부 때 후배 한 사람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들어가서 근무한 일이 있다. 그때는 대학 교수가 갑자기 무슨 행정관을 하나 의구심을 가졌었다. 


요즘 언론 발표를 보니 그 친구가 그렇게 권력의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요즘 회자되는 행정관들이 월권을 떡 먹듯 한 것인지 판단이 안 선다.


청와대 행정관 직책은 3급 부이사관, 4급 서기관, 5급 사무관이 주로 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를 보니 참 어이가 없다. 일개 행정관이 군(軍) 참모총장을 불러내 조사를 하고, 경찰 총수는 물론 각 군 장군들 진급도 좌지우지했다는 것이다. 요즘 보도되는 내용이 거짓이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혼미해서 나타난 일인지, 아니면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신다는 권력의 곁불이 쬐기만 해도 화광이 충천해서 생긴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곁불이라도 오래, 자주, 강하게 쬐면 얼굴이 타들어가서 스스로도 자기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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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돈 08.10 07:52
    곁불을 쬐다보면 자기가 가진 이상을 가지려는 욕심이 생기나 봅니다.. 자기 얼굴이 타들어가는 것도 모르게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마리1984 08.10 07:49
    의학, 문학, 음악, 역사까지의 각각 다른 영역을 깊은 내공에 의한 절묘한 배합으로 잘 버무려 맛깔스런 명품 비빔밥을 먹는듯한 편안하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더구나 카스트라토라는 음악의 슬픈역사까지 곁불로 확실히 정리되는 덤까지~^

    계속 좋은글 부탁드리며 성원합니다????
  • ㅋㅋㅋ 08.08 07:42
    주류언론은 믿는 인간도 있네..

    하기야 자기도 낯이 없겠지... 찍어는 줬는데 욕하기는 뭐하고 .. 양심도 없나? 전직 교수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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