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타격 큰 제약사, 지피(知彼)보다 지기(知己)'
양보혜기자
2022.01.25 12:10 댓글쓰기
[수첩] 손자는 '성공하고 싶다면 전략가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뛰어난 전략가가 되려면 전략을 구상하기에 앞서 기둥을 세울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기둥'은 계획을 의미한다. 계획은 가능한 모든 변수를 검토하고 고민하되 대담하고 간결해야 한다. 큰 기둥을 세우고 나면 그 사이에 공백은 실행 과정에서 메우면 된다. 
 
쉽게 말해 계획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실제 현장 상황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하며 해치워야 할 일을 구분해서 접근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손자의 지혜는 춘추전국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공명한다. 치열한 경영환경 속에 기업이 생존하려면 효율적인 계획이 필수다. 
 
요즘 국내 제약기업들은 '약가(藥價)'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신약을 개발해도 좋은 약가를 받기 어렵고, 기존 의약품은 사용량, 재평가 등으로 지속적인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약가는 매출과 직결된다. 문제는 의약품은 다른 재화와 달리 생산자가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구조를 가졌다는 점이다.
 
정부가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 제도를 통해 약가를 보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의약품이 건보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이익과 분배라는 모순된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어느 지점에서 약가가 정해진다.

약가는 심지어 고정된 것도 아니다. 사용량이 많아지거나 가격이 비싸면 지속적으로 인하된다. 즉, 처음 약가가 책정되는 순간부터 시판 후 전(全) 기간 동안 정책적 간섭을 받는다. 
 
이에 제약업계는 약가제도에 민감하고, 제도를 개선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한다. 약가는 기업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파트너인 정부도 약가에 있어 타협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건의료 정책에서 '재정 절감'은 중요한 과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다보니 매년 오르는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방안 중 하나로 약제비 축소가 도마 위에 오른다.
 
하지만 'K-바이오'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되면서 산업 육성도 지원해야 하니, 약가제도 개선을 둔 셈법은 더 복잡하다. 산업계, 학계, 정관계가 모두 뛰어들었음에도 중구난방식 문제제기만 되풀이 되고 있다. 

실제 약가제도 개선 관련 토론회를 참여하면 학계는 ICER값(환자 생존 개선에 드는 1년 비용) 개선, 제약업계는 국산 신약 약가 우대, 일부 제약사는 혁신형 제약기업 약가 우대 등의 요구사항을 마구 쏟아낸다.

모두 보수가 필요한 문제지만 막상 고쳐보려고 하면 아무 것도 손 댈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산업계의 약가제도 개선 노력이 성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자의 지혜를 빌려보자. 먼저 산발적인 약가제도 논의를 멈추고 큰 계획을 세우며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수행돼야 한다. 지금 제약업계에 가장 시급한 제도 및 정책이 무엇인지 검토해 보는 것이다. 
 
혁신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 사용량-연동 약가제도나 실거래가 제도 개선, 대체약제 선정 기준  등 관련 문제점을 총망라한 뒤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를 정하고 하나씩 해결책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큰 계획을 세운 뒤 실행과정에서 세부적인 전략을 마련하면 된다. '혁신 신약 약가 우대'가 당면 과제라면 혁신 신약의 개념을 명확히하고, 어떤 이슈부터 쟁점화할지 전략적으로 다가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송시영 연대의대 교수는 혁신신약 약가 우대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에서 패널들 발표를 듣던 중 "약가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혁신신약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First in Class(혁신 신약)과 Best in Class(계열 내 최고) 신약 개념을 혼재해서 사용하고 있다"며 "두 신약은 다른 종류이며, 적용되는 약가 제도나 지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 지적처럼 약가제도 이슈를 쟁점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산업계 내부에서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그 과제는 어떻게 풀어가는 게 효과적인지, 그리고 요구하기에 적절한 시점인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 보며 대응책을 펼치는 게 바람직하다.

약가제도를 둔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면 분석과 고찰에 기반한 전략이 필요하다. 상대 전략은 충분히 체감했다. 지금 제약산업계에 필요한 것은 지피(知彼)보다는 지기(知己)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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