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가 코 앞이다. 애초 '지방자치'란 주민에게 권한을 돌려줘 그 주인됨을 실현하는 정치다. 4년에 한 번씩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후보자들은 공복(公僕)이 되겠다고 약속하지만 선심성 공약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선이 되고 나면 후보자 시절의 약속은 사라지고 주객이 전도되는 일을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의료’라는 키워드가 담긴 공약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쏟아져 나왔다. 수 년 전 무상의료 공약이 그랬다. 무상의료가 마치 공짜로 주는 듯한 인상을 주긴 했으나 ‘공짜다’, ‘아니다’란 주장이 맞서면서 정책 실효성에 관한 논쟁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지금은 소강상태다.
먼저 이번 성남시장 선거에 나선 은수미 후보(더불어민주당)는 ‘18세 미만 어린이 병원비 완전 100만원 상한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입원, 외래, 약제비 등의 본인부담상한액을 100만원으로 설정하고 초과비용은 시가 부담하는 제도다.
그는 “‘성남판 은수미표 어린이 병원비 케어’로 정부 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제도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발표한 국민 제안 10대 공약 중 하나였다.
어김없이 분야별 병원 유치 및 설립에 대한 공약도 눈에 띈다.
경남도지사 김경수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소외된 지역의 공공의료 체계를 만들어가고 동시에 부산 및 경남권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유치에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원희룡 후보(무소속)는 서귀포의료원 부속 요양병원 건립 등 공약을, 문대림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서귀포의료원의 공공 의료 인프라 강화 등 공약을 내세웠다.
천안시장 구본영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인구 65만명의 천안에 어린이전문병원이 부재해 서울 등 타지역 어린이 전문병원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천안에 어린이전문병원을 유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한 박남춘 후보(더불어민주당) 역시 의료원 확충과 의료 취약층에 대한 방문진료 확대를, 유정복 후보(자유한국당)는 어린이전문병원 설립을 약속했다.
울산시장 선거에 나선 김기현 후보(자유한국당)는 공장이 많은 지역 특성에 맞춰 산업재해 노동자 치료에 특화된 국립 산재모병원의 설립을, 송철호 후보(더불어민주당)는 혁신형 공공병원을 울산에 유치하겠다고 주장했다.
송 후보는 혁신형 공공병원 계획이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서 비롯한 만큼 여당 후보인 자신이 이 병원 건립의 적임자라는 주장이다.
이 외에도 대전시장 선거에 나선 허태정(더불어민주당)·박성효(자유한국당)·남충희(바른미래당)·김윤기(정의당) 후보 등은 어린이재활병원을 설립하고 장애 어린이 및 부모를 위한 교육·복지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겠다는 의지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가장 중요한 재원 마련에 대한 방법이 하나 같이 빠져 있다. 그 동안 무수히 무상의료와 병원 설립에 대한 공약은 쏟아졌지만 결과물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예산 편성은 부처별, 지역별로 강력한 원심력이 작동하는 사안이다. 기존 사업을 축소하는 것에 대한 관료들의 반발도 치열하다. 예산 승인권을 가진 의회를 상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와 치밀한 준비 없이 예산 문제를 감당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물론 과거에도 실패했으니 앞으로도 실패할 거라고 말할 순 없다. 다만 현실 가능한 ‘계획표’ 없이 국가 예산 전체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어쨌든 예산은 각각의 쓸모가 분야별, 시기별로 정립돼 있다.
한정된 자원으로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고 병원을 설립하겠다는 약속은 단기간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설계의 정교함마저 부족한데 이를 ‘나는 할 수 있다’는 말로 메우는 건 표를 매혹하는 선심성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딱 좋다.
의료계 한 인사는 "어린이병원, 재활병원 설립 등 취지는 당연히 찬성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포퓰리즘적 태도를 보여야 많은 표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대 상황을 잘못 인식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으로 선심성 정책을 남발해선 안 된다"고 일침했다.
선거철은 피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각종 정책과 공약들이 선심성이나마 업그레이드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민심 잡기에 전력 질주하는 후보들의 행보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