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환자 보호자에 수술 동의 서명···'위자료 1500만원'
1심 판결 뒤집은 2심 '환자 본인에게 직접 안받아 자기결정권 침해 인정'
2019.01.02 12:12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다영 기자] 수술동의서에 성인 환자 대신 보호자가 서명하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끈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환자의 동생이 대신 수술동의서에 서명해 성인 환자에게는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환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의료진의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 위자료 1500만원을 선고했다. 이는 원고 패소를 결정한 1심 판결을 뒤집은 사례여서 의료계에서 주목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입원실에 환자가 있어 직접 설명을 들었을 것으로 보고 의료진의 의무 위반은 없다고 판단한 원심의 결정을 뒤집은 결정이라 이목이 집중된다.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7월 21일 A병원 정형외과를 내원해 진료를 받은 B씨는 "치료법으로 일리자로프 연장술을 고려할 수 있고 무릎 관절 운동범위 회복은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


A씨는 6세 떄 우측 무릎을 다치는 사고를 당한 적 있었다. 접골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넘어져 우측 대퇴부 골절상을 입었고 당시 치료 과정에서 골수염이 발생했다.


이후 18세, 21세 되던 해 2차례에 걸쳐 절개 및 배농술을 받았지만 대퇴부 골절, 골수염 등의 후유증으로 우측 대퇴부 단축, 우측 무릎 관절의 운동범위 제한, 요추 변형 등 후유증을 앓게 됐다.


다시 내원하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B씨는 두달 후 9월 22일 A병원을 내원해 대퇴골 연장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B씨는 2010년 1월 25일 A병원에서 일리자로프 외고정기를 이용한 대퇴골 연장수술을 받았다.


당시 B씨의 대퇴 길이는 우측이 좌측보다 3.2cm 짧은 상태였고 우측 무릎 관절의 운동범위는 0~90º로 제한됐다.
 

수술 후 B씨는 골수염이 재발했다. B씨는 A병원에서 항생제 치료 등을 받았고 골유합 미비 등을 이유로 2010년 9월 25일 외고정 장치 제거, 골수강내 금속정 고정 및 뼈이식 수술을 받았다.


무릎 관절의 강직으로 2012년 2월 17일에는 관절경 및 일부 개방적 유착박리수술을 받았다. 유착박리수술 후에도 우측 무릎 관절의 운동범위 제한이 개선되지 않아 같은 해 6월 8일 금속정 제거 및 대퇴사두근 성형 수술을 받았다.


B씨는 A병원 의료진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퇴골 연장수술에 대해 의료진이 환자 본인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B씨가 대퇴골 연장수술을 받기 전날인 2010년 1월 24일 A병원은 B씨 동생인 D씨로부터 '수술 마취 검사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다.
 

B씨 측은 "성인인 본인 대신 동생에게 서명을 받은 병원은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B씨는 "이 수술 시행에 앞서 A병원은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 부작용, 합병증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A병원은 불가피한 수술이 아님에도 이 수술에 대한 설명의무를 게을리 해서 원고에게 악결과를 발생시켰으므로 그로 인한 전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성인으로서 판단능력을 갖고 있는 원고를 제쳐두고 원고 동생에게만 이 사건 수술에 관한 설명을 했으므로 원고에 대한 설명의무 이행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제1심 법원은 B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담당 의사 E씨는 B씨가 입원한 당일 "골수염이 재발할 경우 재수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설명과 함께 이 사건 수술의 위험성, 합병증 등을 동의서에 직접 기재하면서 설명을 했는데 당시 입원실에 B씨가 있었기 때문에 설명을 직접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고 주장은 이유 없다"며 B씨 주장을 기각시켰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B씨는 항소심을 제기했고 고등법원은 원심과는 다르게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환자가 성인으로서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친족의 승낙으로 환자의 승낙을 갈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례들(대법원 1994. 11. 25. 선고 94다35671 판결, 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5다13843 판결)을 근거로 들어 의료진이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 병원 의료진은 2009년 7월 B씨가 처음 내원했을 때 대퇴골 연장술 후 우측 무릎 관절 운동범위 회복은 어렵다고 설명했고 부작용과 후유증을 알리는 수술동의서에 동생 D씨가 서명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위 사실만으로는 합병증과 부작용이 드물지 않고 수술 이후 적극적 물리치료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환자와 보호자의 상당한 노력이 요구되는 이 수술과 관련해 병원 의료진이 감염을 비롯해 부작용과 후유장해에 대해 설명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성인인 B씨가 직접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병원 의료진이 본인인 원고가 아니라 그 동생에게 감염을 포함한 수술로 인한 부작용이나 후유증 등을 설명했다는 것만으로는 B씨에 대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B씨가 동생과 함께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날인만 D씨가 하도록 했다거나 D씨로부터 의사의 설명 내용을 충실히 듣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B씨는 이 수술 시행 결정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음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할 것이므로 금전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며 "위 수술의 내용과 필요성, 발생한 후유증의 내용과 발생 경위 및 경과, 원고의 나이와 가족관계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면 위자료 액수는 1500만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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