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의료인의 의료기관 중복 개설을 금지하는 '1인 1개소법'을 위반한 병원에 대한 요양급여환수처분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의료계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앞서 의료인의 중복 개설을 실질적으로 저지하기 위해선 요양급여 환수처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이같은 판결 추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등법원 4행정부(재판장 이승영)는 자신의 명의를 빌려준 뒤 치과의원을 개설하게 했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받은 치과의사들이 청구한 복수의 취소청구 사건에서 원고 손을 들어줬다.
치과의사 A씨는 지난 2014~2016년 사이 또 다른 치과의사에게 명의를 빌려줘 의원을 개설 및 운영케 했다.
A씨에게 명의를 빌린 그는 다른 여러 명의 치과의사 명의를 빌려 복수의 치과의원을 개설하고 실질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이에 건보공단은 A씨가 의료법 제4조2항·8항 및 의료법 33조8항에 따른 의료기관 개설기준을 위반,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요양기관이 될 수 없음에도 요양급여를 청구해 지급받았다며 2억7000여만원을 환수했다.
또 다른 치과의사 B씨는 지난 2014~2016년 사이 자신의 명의를 다른 치과의사에게 빌려줬다. B씨 명의를 빌린 치과의사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치과의원을 개설 및 운영했다.
건보공단은 B씨에 대해서도 의료법 33조8항에 따른 의료기관 개설기준 위반을 적용, 1억1900여만원의 요양급여비용을 환수 처분했다.
치과의사 A,B씨는 이에 "의료법 33조8항 위반은 국민건강보험법 57조1항이 규정하는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원에 취소 청구를 냈다.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법은 그 입법목적을 달리하고 있어, 의료법 위반 사실만으로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청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은 국민 건강증진에 대해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고, 의료법은 의료인들 자격을 규정하고 의료기관 설립 절차나 의료행위를 제공하는 방식을 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입법목적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 의료인의 이중 개설과 비의료인의 이중 개설 위법성 경중에도 차이를 둬야 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의료법 33조2항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자가 의료인 면허를 대여받아 개설 및 운영하는 행위는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33조 8항 위반과는 불법성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의료인의 이중개설을 제한하는 형사처벌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짚었다.
재판부는 "의료법 33조8항 위반에 대해 현행법은 형사처벌 및 면허자격정지 대상으로 삼고 제재를 가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제재 수단이 있음에도 동일한 행위를 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비용 환수 처분의 근거로 삼는 것은 33조 8항 위반 효과를 지나치게 확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중복으로 개설 및 운영했더라도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의료행위가 제공되고 정당한 요양급여가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면, 원칙적으로 그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제도 취지나 법(法) 균형에 부합한다"며 "두 건의 환수처분 사유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