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최근 정부가 조혈모세포 기증자 확대를 위한 캠페인 추진을 선언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찾아오는 기증 희망자조차 모집인원 목표가 달성됐다는 이유로 등록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6살 A어린이는 지난 2018년 4월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 진단을 받았다. 작년 6월부터 조혈모세포 이식을 준비했지만 부모와 조직적합항원이 50%에 그쳤고 100% 일치하는 기증자들도 기증을 거부했다.
지난해 11월 말 A는 악성 림프종 4기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를 보며 A군 부모가 조혈모세포 기증자를 직접 모집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고 다행히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기증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희망을 가졌던 부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가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모집 목표가 이미 달성됐다는 이유로 등록이 내년 2월이 돼야 완료된다는 문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내용으로 현재 1만여 명의 국민들이 청원에 공감을 표시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94년부터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이식을 받을 수 있도록 조혈모세포 기증 지원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현재 기증 희망자 등록은 보건복지부 위탁을 받은 대한적십자사,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생명나눔실천본부,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등 총 5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각 기관들은 기증희망자들을 모집한 후 검사기관에 조직적합성항원 검사를 의뢰하고 기증희망자들은 희망자 풀에 등록하는 방식이다.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이식대기자의 경우는 2012년 한해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2010년 2390명에서 2017년 4364명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신규 기증희망자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1만8000여 명 안팎에서 증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2018년 기준으로 누적 약 34만여 명이 기증 의사를 밝혔다.
기증희망자 있어도 매년 수백명 등록 미뤄져···예산 부족으로 모집인원 증원 힘든 실정
많은 기증자들이 등록돼 있지만 이식이 가능하려면 조직적합성항원형이 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비혈연관계인 경우 일치 확률이 2만분의 1로 매우 낮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기증 희망자가 적기에 등록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복지부와 등록기관들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의 기관이 매년 등록자 수가 목표치를 초과해 일부 희망자들 등록이 다음 해로 이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와 등록기관들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매년 모집이 마무리되는 시기는 평균적으로 11월경이지만 이르면 9월 말에 모집이 끝나는 해도 있다.
그럴 경우 예산 편성 등의 문제로 다음해 3월~4월경까지 약 5~6개월 가량은 신규등록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기증 희망자가 있음에도 환자는 반 년 정도를 아무런 대책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등록기관 중 하나인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의 경우 이월자가 2015년 513명, 2016년 75명, 2017년 20명, 2018년 318명, 2019년 233명이었으며 2014년에는 830명에 달했다.
다른 등록기관도 수치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매년 목표치를 초과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경우 2016년에 이월자 수가 300명, 2017년 264명, 2018년 24명, 2019년 534명이었고 또 다른 등록기관인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은 2015년 73명, 2016년 281명, 2017년 144명, 2018년 130명, 2019년 175명이었다.
한 기관에서만 매년 적게는 20여 명 많게는 수 백명의 희망자가 등록을 위해 다음해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매년 등록기관들이 모집 목표인원을 초과 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해당 사업에 책정하는 예산은 2015년 44억7600만원에서 2017년 42억8100만원, 2019년에는 42억7100만원으로 감소 추세다.
복지부는 기관들의 직전 연도 사업 수행에 대한 내외부 전문가 위원들의 서면심의 결과를 반영해 기관별 목표 모집인원을 배분하고 조직적합성항원 검사를 위한 예산을 책정한다.
이와 관련, 한 등록기관 관계자는 “조혈모세포 기증에는 사전관리비, 등록비용(검사비), 사후관리비가 들어가는데 등록을 많이 받기 위해 등록비 비중만 무조건 늘릴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정부에서 책정된 예산이 한정돼 있다보니 모집인원을 늘리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타 기관 관계자는 “예전에도 이런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정부에서 지침이 내려와 예산을 미리 배정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었던 적이 있다”며 “일시적인 대책보다는 근본적인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증희망자 많이 모을수록 불리한 웃픈 현실
등록기관 관계자들은 목표 인원을 과도하게 초과해 모집할 경우 평가에서 불리한 현행 평가 절차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기증희망자들을 많이 모았다고 해서 좋지 않은 평가를 준다면 기관들 입장에서는 목표인원을 맞추는 데만 급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한 등록기관 관계자는 “기관장의 강력한 의지로 최대한 많은 기증희망자를 모으려 하고 있지만 복지부의 사업 적절성 평가에서 과도한 모집을 지양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과도한 모집을 막는 것은 기증희망자 가운데 실제로는 기증 의사가 없는 허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분별한 등록이 검사비용 낭비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는 “기증을 희망해 희망자 풀에 등록돼 있음에도 추후에 연락을 하면 기증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고 등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록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증 거부 문제와는 별개로 2만분의 1 확률이라는 기적을 절박하게 찾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대책은 분명히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예산 확보 노력과 함께 기증희망자 등록이 끊김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현재보다 예산 배정 시기를 앞당기는 등의 방안 마련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는 목표 인원이라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분명 본말이 전도되는 측면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기증희망자 내실화와 함께 기관들이 목표 인원에 과도하게 연연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