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5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데 이어 8월 대통령 담화문 발표, 경제부총리 공공기관 간담회 등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전력해 왔다.
하지만 대상기관 개별 노동조합과 상위노조의 반발이 강경했다. 정년연장 기본취지와 어긋나게 임금피크제로 인해 임금삭감이 이뤄져 근로자 희생만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일부기관이 협상을 마치며 지난해 7월말 12곳에 머물렀던 도입기관은 8월 100개, 10월 289개 기관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의사, 간호사 등 특수직이 대부분인 국립대병원의 반발이 커서 막판까지 진통이 계속됐다. 데일리메디가 의약계 전반의 임금피크제 도입 상황을 점검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등 단체협약 거쳐 2016년 도입 예정
전국 14개 국립대병원 중 구랍 12월 1일까지 11개 병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결정했거나 강행처리 중이다. 그러나 도입 과정에서 서면이사회를 열어 날치기하는 등 온갖 불법과 탈법을 일삼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릉원주대학교치과병원은 전국 13개 국립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키로 했다. 병원은 지난 7월부터 근로자를 대상으로 수차례에 걸친 임금피크제 설명 및 협의를 거쳐 10월 19일 단체협약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대상은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전 직원이다. 만 58세부터 2년동안 적용한다. 임금 감액률은 1년차 때 15%(만 58세), 2년차 때 20%(만 59세)로 합의했다. 병원은 향후 단체협약체결과 관련규정을 정비한 후 이사회의 의결을 거쳤다. 내년 초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제주대학교병원도 직원의 고용안정 및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키로 결정했다.
적용은 2016년부터이고 대상은 의사직을 제외한 전직원이다. 적용기간은 정년(만 60세) 이전 3년으로 1년차 15%, 2년차 15%, 3년차 25%를 감액키로 했다.
병원 관계자는 “제도 도입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이끌어 나갈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신규인력의 고용을 늘리기 위한 상생 노력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엔 전남대학교병원이 보건의료산업노조 전남대학교병원지부와 2015년 임금단체협상안을 타결했다. 파업을 목전에 두고 벌어진 마라톤 협상에서 노사는 입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했다.
노사가 잠정 합의한 내용은 △임금 총액 1.9% 인상 △육아휴직 2년 △5년 이상 비정규직(무기계약직) 단계적(올해, 내년 상반기, 하반기) 정규직화 △비정규직 임금 인상 △1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관련 보상 등이다.
수도권 지역에선 분당서울대병원이 직원 고용안정 및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 2016년 초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임금피크제에 대해 전직원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설명회를 개최하고, 부서 순회 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전직원의 임금피크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후 노사 간 수차례 집중교섭과 협의를 거쳐 지난 10월24일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노사합의에 이르렀다. 임금피크제 대상은 전 직원이다. 적용기간은 정년(만 60세) 이전 2년으로 하며, 임금피크제의 기간별 지급률은 1차년도 임금대비 80%(만 59세), 2차년도 임금대비 70%(만 60세)로 합의했다.
병원 관계자는 “앞으로 임금피크제 운영과 관련한 세부사항은 노사합의로 정하기로 했다”면서 “단체협약체결과 관련규정을 정비해 향후 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내년 초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과열 경쟁 제약계도 ‘임금피크제’ 도입 불가피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이 과열되고 다국적 제약사들의 국내시장 잠식이 가속화 되고 있는 제약업계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피크제를 조기에 도입한 제약사는 유한양행과 신풍제약 등 모두 11곳이다. 동국제약·동아쏘시오그룹·녹십자·한미약품 등 주요 제약회사들도 도입을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년부터 세제혜택 등이 적용되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동국제약은 내·외부 환경 분석과 컨설팅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다.
동국제약은 11월30일 한국제약협회가 주최한 임금피크제 도입전략과 사례분석 세미나를 통해 임금피크제 설계안을 공유했다.
현재 동국제약은 임금피크제 설계 단계까지 진행했고 이후 도입 및 실행을 위한 지원 컨설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설계안에 따르면 임금 조정시기는 55세(현 정년)이며, 임금조정기간은 5년(56세~60세)까지 연봉총액을 대상으로 임금조정률은 73.8%로 1년차 90%, 2년차 81%, 3년차 73%, 4년차 66%, 5년차 59%로 조정한다.
임금피크제 적용 시 퇴직금 정산은 DB→DC형으로 하고 복리후생은 유지하고 승급이나 베이스업은 반영하지 않는다.
이렇게 적용한다면 인건비는 5년간 6억5577만원을 절감할 수 있고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자는 3년간 정부지원금을 1669만원 수급받음으로써 실제 임금조정률은 1년차부터 90%→90%→89.5%→66%→59% 였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대부분의 제약사가 평균 55세부터 조정을 시작했고 임금 조정기간은 3.4년으로 임금대비 연평균 21%가 줄었다.
서울대병원 등 노사 반목 ‘심화’
서울대병원은 지난 10월 29일 임시 이사회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취업규칙 변경을 의결했다. 변경안에는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59세에는 20%, 60세에는 30%씩 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임금피크제 도입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기 때문에 근로자 직원 과반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사회가 이를 무시한 채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11월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업규칙 변경과 관련한 단체협약 제31조에 따라 병원은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해 조합 의견을 들어야 한다”면서 “조합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할 경우에는 조합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대병원 측은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에 따라 59세와 60세 직원을 대상으로 도입하는 것이므로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라며 강행 의사를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법률 검토 결과, 정년이 연장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어도 직원 의견은 물어봐야 하기 때문에 투표를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북대병원도 이사회를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병원 측이 직원들을 1대1 면담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안에 대해 찬성 서명을 하도록 강제해 논란을 빚고 있다. 결국 노조는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병원장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 같은 논란과 반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립대병원의 경우 임금피크제가 도입된다 해도 사실상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정진후 의원(정의당)은 13개 국립대병원이 교육부에 제출한 ‘2016년도 임금피크제 관련 별도정원 요청서’를 분석한 결과,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지 않을 경우 2016년 총 정년퇴직 예정자는 196명으로 국립대병원 전체 정원 2만6090명의 0.75%에 불과했다.
국립대병원의 경우 강원대병원(57세), 서울대병원(58세), 서울대치과병원(58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년이 59~60세이기에 정년이 60세로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정년연장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6년 퇴직예정자는 서울대병원이 58명으로 정원대비 1%에 불과했고, 부산대치과병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 의원에 따르면 12개 국립대병원에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총 356명의 추가 신규채용을 요청했다. 이는 연평균 71명으로 전체 채용규모의 0.27%에 불과하다.
정 의원은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 청년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처럼 선전하지만 국립대병원의 경우 고된 노동조건 등으로 이직률이 높아 근속연수가 짧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며 “무조건 임금피크제가 선인 것처럼 모든 공공기관에 강제할 게 아니라 청년고용의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태는 모습이다. 아울러 지속적인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공공운수노조와 전국공공연구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망치고 공공성을 파괴하는 임금피크제 강요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정책을 정해진 기간까지 따르지 않으면 국민의 노동기본권마자 무시하고 임금을 일방적으로 깎겠다는 반(反)헌법적 지침”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지를 무시하고 또다시 잘못을 반복한다면 국립대병원 노사관계는 더 큰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