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 게임 중독→정신질환 등록 임박
국내 적잖은 영향 미칠 듯, 업계 반발하고 의료계도 우려감 제기
2019.05.10 11:48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성은 기자] 게임 중독을 정신질환으로 보는 국제 질병 분류 개정안이 조만간 공개될 예정인 가운데 국내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정신의학계에서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5월 20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WHA에서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정신건강질환의 일종으로 등재하는 ICD-11 안건을 발의할 예정이다.
 
ICD-11은 임시 기준 없이 한 번 등재되면 바로 나오는 방식이기 때문에 향후 추가 논의가 어렵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국 상황도 이에 맞춰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WHO에서 게임 장애를 질병화하면 한국표준질병분류(KCD)에도 이를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한 국내외 게임업계는 ICD-11 안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해당 안건이 명확한 연구나 과학적 근거 없이 게임을 부정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전제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신의학계에서는 보건의료적인 관리를 체계화하려는 WHO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게임 업계와 마찬가지로 게임 자체가 중독 원인으로 오해받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질병코드 설정 근거나 명칭 등에도 의학적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의학계는 근본적으로 게임 자체를 중독 원인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이경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는 “과도한 몰입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게임 수명이 길어봐야 2~3년인 경우가 많은 만큼 전통적인 중독 증상과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ICD-11 안건 상정은 중독 조건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증상만에 집중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경민 교수도 질병과 증상 구분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질병을 분류할 때는 병의 발생 기전, 발병 원인 등이 명확해야 의학적 및 의료적으로 유용성을 가질 수 있다.
 
게임 과용은 질병 원인이 아닌 증상에 불과하므로 이를 질병코드화 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행위를 중심으로 질병을 분류하는 것은 실제 진단을 모호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ICD-11 안건에서 중요한 것이 ‘비디오 게임 과용’인데 이는 인터넷, SNS, 모바일 기기 등의 과용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다.
 
아울러 게임 과용 그 자체보다 이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기준으로 진단하는 방법 또한 실제 적용에 혼란을 가져온다.
 
이경민 교수는 "프로 게이머와 일반 학생의 경우를 달리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이들을 질병이라는 보편적 범주로 묶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적용 시 정신질환자로 오인한 부정적 낙인·과잉진료 등 우려
 
국내 의료 현실 및 제도 아래 예상되는 부작용으로 이경민 교수는 먼저 정상적 성장 과정에서 겪는 몰입 행동을 병적인 것으로 오인해서 정신질환자로 낙인 찍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문제 학생과의 갈등을 겪는 보호자나 교사들에게 질병이라는 보다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하며 약물 치료, 상담 등 고가 의료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경민 교수는 특히 “법안 시행 초기 비보험 항목으로 분류돼 수가 규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며 "불안증, 우울증 등보다 게임중독으로 코드를 부여하는 것이 보호자들의 거부감을 낮추고 의료인 수익에도 도움이 되기에 과잉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개별 환자에만 초점을 맞춰 약물, 심리, 행동치료 등을 행하는 것은 미봉책이 될 수 있다"면서 “보다 근본적 원인인 소외감, 과다 경쟁, 가정폭력 등의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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