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현장이 아닌 심사기준 위주로 진료를 봐야하는 모습을 비꼬아 ‘심평의학’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삭감이라는 무기로 의료기관을 옥죄는 것이 ‘질(質) 향상’과는 정반대의 노선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담겨있다.
과거에는 심평의학이 건강보험제도 내에서 의료기관을 관리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 방법이라고 판단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전면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 제 2소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건강보험 발전방향’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됐고 개선방안도 제시됐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사진]는 “심평원은 불명료한 심사기준과 무리한 삭감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삭감을 받은 의료기관이 이의신청을 하면 52%는 다시 삭감이 철회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단 삭감을 하고 추후 재조정을 하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다. 일관되지 않은 심사 결과, 투명하지 않은 심사 과정, 심사자 불분명 등 여러 요인이 악순환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 심평원 심사체계의 불분명한 형태를 탈피해야만 한다. 우선 청구명세서를 기반으로 진행했던 심사업무를 의무기록 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현행 보험심사팀과 간호사 중심으로 이뤄지는 심사체계를 의사가 좀 더 개입할 수 있는 상황으로 조정돼야 한다는 제안이다.
보다 구체화된 상시적 논의를 위해 ‘심사기준개선위원회(가칭)’ 설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학회 추천(5명), 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5명)으로 인력을 구성해 법령개정 및 심사기준 개선 플랫폼 등 현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척추수술 등 수술받지 않아도 될 환자들이 늘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한데, 검진이나 약, 입원기간 등 미시적 부분에 지나치게 엄격하게 심사하는 등 형평성에 어긋한 부분을 점검하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김 교수는 “심사심명제를 통해 투명한 심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비상근심사위원들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사체계 개편" 한 목소리
김윤 교수의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이 이어졌는데, 심사체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날 대한병원협회 서진수 보험부위원장은 “심사에서 삭감이 되더라도 여러 가지 정황이 있으면 수용을 하는데 제일 힘든것이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관성이고 과학적 근거”라고 언급했다.
이어 “의사는 의사대로 국민건강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쓸데없는 비용은 쓰이지 않도록 고민하고 있다. 의사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심사가 이뤄져햐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무기록 중심으로의 심사체계 전환은 장기적으로 갈 방향이지만, 지금 당장은 호환성, 비용 문제 등으로 쉽게 풀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렸다.
보건복지부도 심사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복지부 이재란 보험평가과장은 “건강보험 행정심판이 연 5만건이 넘게 들어온다. 앞으로도 이 수치는 더 커질 것이다. 대부분은 삭감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내용이다. 심사체계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 과장은 “사실 심평원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심사체계 변화를 꿈꾸고 있는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의신청이 더 늘고 심판청구도 더 증가할 것 같다. 보다 현실감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울산대학교 의대 이상일 교순는 “의료기관에 자율성을 많이 부여하는 형태로 전반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심사에 DRG를 적용해서 아웃라인을 벗어나는 항목에 대해서만 심사를 한다면 개선이 될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의료기관이 특정한 틀 안에서는 자율적으로 움직일수 있도록 하고 스스로 발전하게 한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상 DRG’를 활용한 심사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러 토론자들이 심사체계 개편을 요구했지만, 그렇지 않는 토론자도 있었다. 현재 심평원의 심사체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태현 교수는 “심평원은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수억, 수십억 건의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심사체계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굉장히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윤 교수가 심사실명제를 거론했는데, 반대하는 입장이다. 익명성의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집행기관 입장에서는 특정 인물에게 여러 민원이 쏟아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