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와 의료직역 '업무범위' 충돌
2022.11.04 19:15 댓글쓰기

지난달 말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몰린 인파로 참사가 발생, 300명이 넘는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참사 현장에는 무려 142대의 구급차가 투입됐다. 좁은 골목과 교통체증으로 현장 진입이 어려웠고, 갑작스런 사태에 극도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부상자와 사망자 이송 및 수용에는 수도권 전역 의료기관이 동원됐다. 안타까운 점은 너무 많은 희생자들이 CPR조차 받지 못하고 거리에 방치됐다는 사실이다.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과 의료진은 일반인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모두가 절박한 마음으로 도왔다.


부상자 한 명에게 한 시간 넘게 CPR을 한 시민, 홀로 수십 명에 달하는 부상자 상태를 살피고 CPR을 시행한 간호사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서도 우수한 의료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불과 2년 전만 해도 'K-방역'을 자랑했다.


비록 예기치 못한 참사였지만 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을지 되짚어 보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의료 측면에서 보면 최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응급구조사가 심정지자에게 약물을 투여할 수 있도록 업무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무조정실은 "응급구조사 역량 이내에 시행할 수 있는 업무범위를 확대해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현행법상 응급구조사의 응급처치 업무는 의사 지도 아래 인공호흡기를 이용한 호흡 유지 등 4종 업무, 의사의 구체적 지시 없이 가능한 구강 내 이물질 제거 등 10종 업무로 제한돼 있다.


이런 업무범위를 확대하는 게 골자다. 응급구조사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늘어나면 이태원 참사와 같이 분초를 다투는 위급 상황에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실 구급대원 업무범위 조정은 이미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의 업무만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의 반대가 거세다.


이미 응급처치 관련 정규교육을 받고 현장에 배치되고 있는 응급구조사를 제외하고 업무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번 사태처럼 급박한 환경에서 응급 대응 전문가들 중요성은 무엇보다 크다. 응급구조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의사가 아닌 응급구조사의 약물 투여 등 행위가 가능해질 경우, 의사 등 다른 직종의 거센 반대가 초래될 것이다.


이번에는 응급구조사 업무범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남용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예상된다.


이런 갑론을박이 처음은 아니다. 보건의료 종사자들 간 업무범위 논쟁은 해묵은 주제다. 관련 논제가 불거질 때마다 마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문제를 문제로만 남겨두는 상황이 계속돼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직역 간 눈치보기를 이유로 논의를 미룰 수는 없다. 수 많은 상급종합병원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서울 한복판에서 조차 이러한 비극이 발생했다.


더 많은 위험을 안은 지역, 의료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골든타임'은 허망한 희망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계기'라고 부르기엔 아직 조심스럽지만 업무영역 논의를 위한 어려운 첫걸음을 떼야 할 시기다.


적나라한 밥그릇 싸움과 단체 간 원색적 논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환자를 위한 결론이 나올 수 있기를, 소중한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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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11.15 12:56
    현장 위주로 지식을 쌓는 응급구조사가 많이 양성되고 광범위하게 쓰여야 재난상황에서 많은 도움이 될텐데 왜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항상 이해가 안되네요
  • 호호 11.04 23:57
    대형재난에서  응급구조사의 역량을  적절히 활용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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