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병원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도입된 ‘1인 1개소법’을 두고 의료법인들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1인 1개소법은 지난 2012년 8월 시행된 ‘의료법 제33조 8항’으로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값 임플란트’로 알려진 유디치과 등 기업형 네트워크병원의 과다한 영리추구나 부적절한 의료행위를 막기 위해 18대 국회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킨 법안이다.
네트워크병원은 공동구매 및 직원교육 실시 등으로 인한 의료비 절감 효과 등의 장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불필요한 진료 유발 및 과잉 검사, 비의료인의 상담, 셰도우 닥터 등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지목된 바 있다.
그러나 막상 법안을 시행하자 네트워크병원, 사무장병원뿐만 아니라 의료법인까지 불똥이 튀었다.
1인 1개소법은 의료인의 의료기관 중복 개설뿐만 아니라 운영 역시 이중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함에 따라 의료법인 이사로 겸임해 있는 개인의료기관 개설자들이 퇴출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다수의 의료법인들은 이사진에 의료기관 운영과 관련된 컨설팅 등의 도움을 받고자 개인의료기관을 개설한 동료 의사들을 상당수 참여시키고 왔는데 당장 경영방침을 바꿔야하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의료법인들은 해당 법령에 대한 보완을 요구했지만 법제처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라는 법 조항에 따라 의료법인 역시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또한 법제처는 의료인이 자신의 면허를 바탕으로 개설된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의료행위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1인 1개소 개설 원칙을 규정하고 의료법인이 의료업을 할 때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의료법 시행령 제20조에도 부합하다고 해석했다.
의료법인 “병원 운영에 의사 배제하고 누굴 앉히나” 반발
결국 위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의료법인들은 운영에 능숙한 의사들을 법인에서 배제시키고 새로운 인물을 앉히기 위해 가족 또는 지인들을 동원하고 있는 상태다.
A 의료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개설자는 “현장에서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모 의료법인은 관할 시청에서 이사장 명의를 바꿔야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궁여지책으로 의료와 관련된 업무를 전혀 해 본 적도 없는 부인을 이사장 자리에 앉혀놨다”고 전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가족이나 지인들을 법인 운영에 참여시키니 업무파악도 안 되고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며 “개인병원을 운영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전문가인 의사들을 배제하고 의료법인 운영을 비전문가에게만 맡겨놓으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정작 법안의 배경이 된 네트워크병원들이 대대적으로 운영구조 개편에 나선 반면 의료법인들은 해당 법안 대응에 나서지 못하며 범법자가 되거나 법인 운영에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네트워크치과와 갈등을 빚어온 치협을 비롯한 의료계 단체들이 1인 1개소법에 찬성하고 나서면서 궁지에 몰린 의료법인들은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9월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은 의료인이 자신의 의료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기관 개설 참여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의료계 반발을 샀다.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는 공동 성명을 통해 “불법 사무장병원은 의료법인이나 비영리법인을 설립해 합법적인 의료기관 개설로 위장하는 형태로 진화되고 있다"며 "개정안은 불법 의료기관을 활성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역시 병원의 기업화, 대형화는 영리 추구가 목적이라며 1인 1개소법에 힘을 싣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의료재단연합회 관계자는 “사실 의협, 치협 등 의료계 단체 입장에서는 의료법인의 상황 보다는 네트워크병원과 사무장병원에 대한 걱정이 큰 것 같다”며 “의료법인들 입장에서는 우리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 답답하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법인들은 영리, 상업과는 관련이 없는 구조로 관할 지방자체단체로부터 관리감시를 받는 성실한 기관들이다”라며 “의료법인을 네트워크병원과 동일선상에 놓고 불법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B 의료법인 운영자 역시 “왜 의료법인까지 불필요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지금 의료법인을 개설한 의사들은 모두 후회하고 있다. 책임만 과중하지 권리는 없다”고 토로했다.
“의료인만 차별하는 기본권 침해 요인도 있어”
이 같은 논란 속 1인 1개소법의 향방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판가름 날 예정이다.
최근 1인 1개소법을 위반한 혐의로 형사재판대에 선 비뇨기과의원 의사가 지방법원에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받아들여져 현재 헌법재판소에 회부돼 심리 중에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5개 보건의약인단체는 1인 1개소법을 사수하고자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공동 대응에 나선 상태다. 일부 네트워크 형태의 신종 사무장병원들에게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1인 1개소법은 비의료인에게는 아무 제약이 없는 반면 의료인에게만 의료기관 중복개설 및 운영을 제한함으로서 역차별을 가하는 기본권 침해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논란의 시발점이 된 유디치과 역시 해당 법안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준비하고 있으며 지난해 국민건강공단과의 소송에서 패한 튼튼병원 역시 “의료인에게 단일 의료기관을 설립토록 제한하는 것은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해 위헌소지가 다문하다”고 주장했지만 행정법원에서 기각돼 위헌법률심판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1인 1개소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의료법인들 역시 기본권 침해 측면에서 문제점을 공감하고 있다. 해당법안은 일반인이 아닌 오직 의료인에게만 적용돼 의료인이 역차별을 받는 다는 관점에서다.
법률적으로 의료인은 2개 이상의 의료기관 운영할 수 없지만, 비의료인이 이사장인 경우 복수 의료법인을 운영하거나 다수의 자법인을 운영해도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
연합회 관계자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법인에서 의료인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기현상이 발생한다”며 “이는 결국 의료법인의 공정한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아가 1인 1개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인은 내년 총선 등 선거에서도 참정권을 제한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의료기관을 산하에 둔 학교법인의 이사나 국공립병원이 있는 자치단체장으로 당선될 경우 해당 의료기관 운영에 참여하게 됨에 따라 1인 1개소법을 위반하는 꼴이 된다.
이 같이 의료법인 운영진에 의사 배제, 의료인의 기본권 침해 등의 논란을 사고 있는 1인 1개소법에 대해 연합회는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합회는 “수십, 수백개의 의료기관을 타인의 명의로 개설하며 극단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일부 탈법적인 의료기관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의료법인을 이와 같은 선상에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