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서남권 '응급‧필수의료' 수호 35년
목포한국병원, 죽음 문턱서 살린 생명 부지기수…"병원 지속할 수 있을지 걱정"
2022.11.23 05:12 댓글쓰기

대한중소병원협회-데일리메디 공동기획

필수의료 책임지는 중소병원 발굴 프로젝트…⓵목포한국병원


국내 의료전달체계 중추 역할을 하는 중소병원들이 신음하고 있다. 의료인력난을 비롯해 급변하는 정책 변화에 고충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중소병원 위기는 대한민국 의료 위기’라는 경고가 무색할 정도다. 그동안 국민건강에 일조한 중소병원들의 역할은 간과된채 대형병원과 개원가 중심의 의료정책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수 십년 동안 묵묵하게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지켜내고 있는 중소병원들이 적잖다. 데일리메디는 대한중소병원협회와 함께 힘겨운 저수가 및 인력난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뚝심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 중소병원을 발굴, 조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익만을 좇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그 숭고한 고행을 알림으로써 중소병원의 중요성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보다 많은 중소병원들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울림의 시작이기를 고대한다. 그 의미 있는 첫 행선지는 ‘대한민국 응급의료 메카’로 칭송받는 목포한국병원이다.


응급의료는 숙명…“사람 살리는 병원”


목포한국병원의 태동은 ‘응급의료’에 기인한다. 대학병원은 고사하고 변변한 종합병원도 없던 전라도 서남부권은 그야말로 ‘의료 취약지’였다.


험난한 바닷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이 많은 탓에 외상환자 비율이 높았고,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섬마을 주민들은 응급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상황이었다.


외상과 응급을 아우를 수 있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4명이 의기투합해 1988년 목포한국병원을 개원했다.


79병상, 4개 진료과로 시작했지만 수요는 과히 폭발적이었다. 외상환자와 응급환자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개원 3년 만에 200병상 규모의 신축 건물로 이전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희망을 되찾은 환자들이 늘면서 자연스레 ‘사람 살리는 병원’이라는 입소문이 번졌고, 이후 30년 넘게 전남 서남부 지역 필수의료를 책임지고 있다.


그 동안 577병상으로 규모가 커졌음에도 무려 70병상 이상을 응급 중환자실로 운영하는 초심과 정체성을 여전히 유지 중이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일찍이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지정됐고, 2014년에는 권역외상센터에도 선정되면서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응급의료의 메카’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권역외상센터 대부분이 대학병원인 점을 감안하면 지방의 중소병원에게 ‘권역외상’이라는 중책이 부여된 것은 그 만큼 목포한국병원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그것도 전국에서 가장 먼저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됐고, 닥터헬기 역시 가장 먼저 운영을 시작할 정도로 주어진 역할과 기대가 상당했다.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목포한국병원은 닥터헬기 도입 10년 만에 2500명의 응급환자 이송 실적을 기록하며 도서지역민들의 골든타임을 사수했다.


현재 목포한국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16명이 24시간 상시 진료체계를 가동 중으로, 1일 평균 100명 이상의 응급환자들이 내원하고 있다.


목포한국병원 박인호 병원장은 “지난 35년 세월 지역의 응급의료 해소라는 지향점을 묵묵히 고수해 왔다”며 “그 고행을 지역민들이 신뢰해준 결과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돌이켜 보면 목포한국병원에 응급의료는 숙명이었다”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한 탓에 고되기는 했지만 수 많은 생명을 지켜낸 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지속되고 심화되는 의료진 인력난, 필수의료 붕괴 직전


개원 당시 대비 목포에도 많은 병원들이 들어섰고, 일부 병원은 응급의료도 가동하면서 전남 서남부 지역의 의료 인프라는 확연히 향상됐다.


그럼에도 목포한국병원에는 여전히 외상환자와 응급환자들이 즐비하다. 이미 기존 시설은 포화상태인 만큼 응급의료 확대를 오래 전부터 고민 중이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 명의 환자를 더 살릴 수만 있다면 시설이나 장비는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얼마든지 투자할 각오가 돼 있지만 문제는 ‘인력’이다.


응급의료 현장에 최첨단 시설과 장비를 갖춘다고 하더라도 정작 이를 운용할 인력이 없어 애를 태운게 벌써 수 년째다.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 힘들고 고된 전문과목은 당연하거니와 최근에는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환자는 물론 의사들까지 수도권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지방, 그것도 전라도 최남단인 목포에서의 의사 채용은 지상 과제가 돼 버린지 오래다.


간호사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간호등급제, 간호간병서비스 등 제도 변화에 따라 대형병원들이 간호인력을 빨아들이면서 지방에는 ‘간호사 씨가 말랐다’는 원장들의 탄식만 가득하다.


특히 최근에는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기사들까지 인력난이 전이되고 있어 근심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박인호 병원장은 “지방 중소병원들의 인력난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며 “인력만 확보된다면 더 많은 응급환자를 살릴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한 현실에 가슴만 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대로 가면 숙명과도 같은 응급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며 “단순한 인력난 호소가 아닌 필수의료 붕괴 경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암이나 여러 중증질환의 경우 환자들이 더 좋은 치료를 받고 싶은 마음에 수도권을 찾을 수 있고, 이미 그러한 문화가 고착화 되고 있음은 받아 들였다.


다만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응급상황 만큼은 지역 거점병원에서 해결해야 하고, 지금까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앞으로는 인력이 없어 골든타임 사수가 불가할 것을 우려했다.


박인호 병원장은 “응급의료를 기반으로 성장한 목포한국병원이 응급의료 포기를 고민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은 절박함 외에 달리 표현이 불가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1년 내내 채용공고를 해도 접수되는 원서가 없다”며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지역 필수의료 붕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 등 의대 신설에 쏟는 열정, 절반만 지역의료 투자하라


목포한국병원의 우려는 ‘지속 가능성’에 맞춰져 있었다. 작금의 인력난 상황에서 연장선을 그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치권에서 지속되고 있는 목포 지역 의과대학 신설 추진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역력했다.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의사 양성체계를 감안하면 당장 응급의료 현장에 투입할 인력이 태부족인 상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인호 병원장 역시 “지금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즉각적인 가용인력”이라며 “의과대학을 통한 의사인력 배출을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의과대학 설립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과 인력이 필요하다”며 “그 노력과 투자를 기존 병원에 할애하면 지역의 필수의료 수행에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다 못한 박인호 병원장은 최근 대한중소병원협회 지역병원살리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기로 했다.


지방 중소병원 하소연으로는 한계가 역력한 만큼 중앙 무대에서 정치권과 제도권을 향해 지역병원들의 어려움을 각인시키고 보다 실질적인 정책을 도출해 내겠다는 각오다.


박인호 병원장은 “수도권과 지방 상황이 다른 만큼 특별위원회는 각각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며 “수도권은 의료전달체계, 지방은 의료인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방병원의 경우 당장의 의료인력난 해소를 위해 공중보건의사가 배치를 건의할 계획”이라며 “필수의료 사수를 위한 야간, 주말, 수가 가산도 핵심 의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상적인 경영환경을 묻는 질문에 기승전 ‘수가’가 아닌 기승전 ‘인력’이라고 답했다.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면 지역 거점병원들이 충분히 제역할 수행이 가능하고, 더불어 필수의료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궁극적으로 환자는 원할 때 원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병원은 언제든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박인호 병원장은 “목포한국병원이 향후 10년, 20년, 30년을 버텨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존속하는 한 응급의료를 놓지는 않겠지만 장담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에서 응급의료를 유지해 나가고자 한다”며 “지역 거점병원들이 생존이 아닌 환자를 위해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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