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환자가 관리해야 하는 항목으로 혈당과 식단을 넘어 환자의 마음가짐, 즉 안정상태가 주목받고 있다. 당뇨병은 평생 관리해야 하고 특히 음식 섭취 등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많은 정신과적 장애를 초래한다.
당뇨병 의료진들 역시 우울증으로 인한 당뇨환자의 내원 증가를 체감한다. 실제 일반인의 2~3배에 달하는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우울증 가능성을 입증한 많은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하버드의대 브리검 여성병원 Nicolas Bolo 박사팀은 최근 혈당이 높을 경우 우울증 발병기전 중 하나인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의 활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제2형 당뇨병 환자가 우울장애를 겪게 되는 요인으로는 먼저 병 관리가 어려운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합병증을 꼽을 수 있다.
식사를 항시 조절하고 혈당을 재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눈, 콩팥 등에 합병증이 생기게 되면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환자 혼자서 일상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김대중 대한당뇨병학회 홍보이사(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는 “당뇨 합병증이 발병하게 되면 환자는 의존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투석치료를 받는 신장합병증 환자는 일주일에 3번씩 내원해야 하지만 혼자서 병원을 다닐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 부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없다. 질병관리본부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당뇨를 비롯한 각종 만성질환 발병률이 높다. 그만큼 평생 필요한 당뇨 치료와 관리에 부담을 느낄 환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경제적 부담으로 6개월 정도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가 다시 내원하는 환자도 있다. 이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가족 간 불화 등을 일으키고, 당뇨환자의 우울증이란 결과로 나타난다.
주위 시선과 소외감 시달리는 ‘제1형 당뇨 환자’
인슐린주사 투여와 하루에도 수차례 혈당관리를 해야 하는 제1형 당뇨병 환자들은 학교 혹은 직장에서 주변인의 시선에 시달려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김미영 환자단체연합회 제1형 당뇨병환우회 대표는 “소아 당뇨 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부분은 주변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저학년 학생의 경우 다른 친구들과 함께 대우받지 못하면서 보호받고 열외로 취급되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교에 다니는 소아 당뇨 환자는 수업 도중에 혈당을 확인하고 주사를 맞아야 하며, 체육시간에는 뛰어놀고 싶어도 선생님의 제지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급상황 시 선생님이나 학교, 친구들이 도와줄 수도 없기에 부모님이 학교에 상주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또래 친구들과 그 부모들이 제1형 당뇨는 커녕 제2형 당뇨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은 환자에게 예기치 않은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한다.
김미영 대표는 “또래 아이들은 친구의 다른 점에 대해 이해하기보다는 신기해하고 짖궂은 말을 건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연속혈당측정기를 소아 환자에게 마약을 투여한다고 놀리는 식이다”고 말했다.
“당뇨병도 전염되는 것 아니냐”며 학교 측에 우려를 표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소아 환자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의 병을 치부처럼 여기고 숨기게 된다.
당뇨병을 앓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일반인보다 약 1.4배 높다고 알려졌지만, 당뇨병 자체가 우울증을 발생시킨다고 볼 수 있는 직접적인 기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정 교수는 “최근 연구들을 종합하면 제2형 당뇨를 유발한 생활습관이 우울증 발병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만 밝혀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류인균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석좌교수는 당뇨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우울증상과 인지기능 저하와 관련된 뇌(腦)의 생화학적 기전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고혈당으로 인한 뇌의 대사물질 변화가 일어나 우울증상 및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진다는 연구다.
당뇨 환자의 우울증 치료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일반 우울증 환자와 동일하다. 하지만 혈당이 조절되고 당뇨병이 개선된다고 해서 우울증까지 함께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만성질환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기도 한 낮은 복약순응도는 당뇨 환자의 당뇨와 우울증 치료에서도 나타난다.
당뇨환자 상담 교육수가 필요
김재현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약을 처방해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당뇨뿐만 아니라 당뇨와 동반되는 우울증에 있어서도 교육 및 상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울증 발병 후 이루어지는 정신과 연계 치료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이를 방지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김재현 교수는 “짧은 진료시간 안에 교육까지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며 “건강보험시스템에서 당뇨 환자의 우울증 관련 교육에 대한 수가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불어 간호사, 영양사 등으로 구성된 당뇨 교육팀을 만들어 개인의 질병 진행 시기마다 맞춤 정보를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일상에서 개인의 생활 패턴에 맞춘 음식 선택 및 조리, 운동 방법을 가르쳐 줄 지역사회 내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동으로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을 투입해 편의를 제공하고 저혈당 위험을 줄여주는 연속혈당측정기에 대해 특별히 홍보 및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미영 대표는 “최근 건보공단과 제1형 당뇨병 환자 간담회에서 연속혈당측정기 보험급여 적용을 시행했지만 예상보다 기기 사용량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연속혈당측정기에 의료진도 널리 알지 못하는 만큼 공단에서 홍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학교 및 직장을 비롯한 주변의 인식 개선이다. 같은 반, 혹은 사무실 동료들과 선생님들도 당뇨 환자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 그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긴급 상황 발생시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김재현 교수는 “특히 소아 당뇨 환자의 학교에서 소수 학생의 사안으로 치부하지 말고 선생님은 물론 동료 학생들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