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다영 기자] 국회가 ‘응급의료에 관한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가해자 처벌 강화가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대한환자안전학회가 29일 성균관대학교 히포크라테스홀에서 개최한 2019년 신년 포럼에서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응급의학과 이형민 교수는 이 같이 주장했다.
이형민 교수[사진]는 응급실에서의 폭력은 환자와 의료진 간 입장 차이 때문에 빚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입장이 극명하게 다른 곳, 입장차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 응급실”이라며 “의료진은 정확하고 적절한 응급조치, 중증환자에 대한 우선 진료가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환자와 보호자는 가능한 완전한 치료와 본인 문제의 최우선 해결을 원한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회의 2018년 응급실 폭력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급의료인 97%가 폭언을 경험했다. 빈도는 월 1~2회에 달했다.
특히 63%는 연평균 1~2회의 폭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형민 교수는 “응급실 폭력에 대한 법률은 13년간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현장에서는 13년 전과 지금 안전도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며 “20여년 간 국내 5개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는데 가장 안전했던 곳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병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은 강화되고 있지만 현장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미국, 캐나다는 폭력에 대한 처벌 수준이 우리보다 낮지만 실제 적용되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 공무원에 대한 폭력과 의사에 대한 폭력이 동일하게 취급된다. 이를 눈 여겨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폭력 근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폭력대응 매뉴얼 중 ▲모욕죄 ▲건조물침입죄 ▲진료방해금지 가처분 신청 ▲손해배상청구적용에 대해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증거입증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안전이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라며 "해결책은 처벌 강화에만 치중돼 있다. 이는 만능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건 발생 후 빠른 안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해 경찰과의 협력 관계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형민 교수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폭력발생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출동 시 반드시 가해자가 격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진료현장에서 조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폭력적인 환자를 진료할 때 의료진을 보호 요청하고 퇴거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관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계, 의료계, 정부는 가해자 처벌 강화라는 단순한 해법을 넘어 장기적으로 의료기관 내 안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대한환자안전학회 이상일 부회장은 “의료기관 내 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는 환자, 피해자는 의사로 나눠 이분적인 구분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의사와 환자 모두 피해자가 된다. 따라서 단순히 떠오르는 단기 대책만을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제대로 된 조사 자료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적으로 정신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 뿐 아니라 잠재 위험까지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체계적인 국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박종혁 홍보이사는 “환자안전과 의료진 안전은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니다"라며 "동전의 양면 같은 이슈다. 제대로 치료받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 내에 폭력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어 “▲범사회적 기구 조직 ▲법안 개정 ▲안전관리기금 ▲청원경찰의무배치 ▲의료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 해소가 단계적으로 필요하다”며 “진료실 환경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오성일 사무관은 “응급실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분석을 위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이제껏 이 과정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의료진이 폭행당하는 경위를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신뢰구축이 가장 중요하다"며 "캠페인과 홍보 방안 마련은 물론 경찰, 재정당국 등 유관기관과 협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